쓰네, 아니 쓰이네.
친구는 소주 한 병을 물컵에 따라 마시고는 방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나는 친구에게 선풍기를 돌려 주고는 그 집을 나섰습니다. 나오며 걱정이 되는 건 틀어 준 선풍기에 감기에 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
아파트 꼭대기에서 본 저기 아래의 공간은 아득히 멀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많이 늦어 강변에는 사람이 몇 없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집에 걸어 돌아오는 길에 그 사람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은 떠오르지만, 그 사람은 나를 단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을 생각을 하니 조금 억울하고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음이 쓰인다는 것은 이런 일인가 봅니다.
우습지만 말장난을 덧붙이자면, 돈이 별로 없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은 있지만 돈 쓰기가 어려웠던 20살의 첫 학기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그 사람과 맛있는 저녁, 좋은 영화, 같이 읽을 책, 비슷한 주량의 술에 쓸 수 있는 조금의 돈은 있지만 마음은 쓰지 못 하는 각자의 여름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외로움은 그 형체를 다 달리 하여서 그 외로움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 보아야 합니다. 먼 발치에서 힐끗 거리며 그 사람의 외로움을 살피다가 그 외로움들을 잘 보살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내가 주변에서 보아온 인연의 가지들은 적어도 한 사람만큼은 다른 한 사람을 꽤 오랜 시간 생각해 왔다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5시간을 생각하고 그 사람의 하루를 상상하다가 하나의 문자를 보내보고, 50시간을 생각하며 이틀을 끙끙 앓다가 전화를 해 보고 싶은 그런 밤들을 혼자 지나고 나면 나의 외로움도 살핌을 받고 보살핌을 받고 싶어 지기도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모두가 어른스러움을 강요받고 있지만 적어도 사람의 마음 앞에 있어서는 아이 같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나는 나의 치사함과 유치함에 대해 조금이나마 변명을 늘어 놓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쓰이면 이상한 일이 되어버리니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처럼 당신을 생각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이 행복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기록하여 두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