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에 쏟아질 맥주
솔직히 이런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람의 착한 그 말투가 너무 싫어서 그가 적어놓은 글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고 기분마저 더러워졌다. 어차피 그저 그렇고 그런 세상에서 혼자 착한 척을 하는 것이 싫었다.
그냥 그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 가진 사람처럼 보였으나 없는 게 있다면 사실 뭐, 재수 정도일까?
중고 책을 파는 책방에서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사온 5권의 책들을 집에 있는 방 한구석 책장에 잘 꽂아 놓고 나는 새벽 3시까지 새로 알게 된 밴드의 음악만 들었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의 밤은 새로운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니 간직되지 못할 추억들만 양손 가득 검은 봉지에 사들고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흘러 갈 시간에서 건질 사람은 없는 듯 보였다. ‘굳이 내가 왜?’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히 차올라서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의 말들은 형상을 잃고 내 귓가에 오기도 전에 허공에서 떨어져 나가 버렸다. 조명은 따스했으나 나 혼자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그것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겠지.
이 정도면 적당한 것 같았으니깐.
3:7의 비율로 자존심과 바닥 친 자존감이 적당히 섞인 나의 패배자적 기질을 가득 담고 있는 하루 일상에 누군가 발을 들여놓는다면 나는 그 사람도 적당히 나쁜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내가 보기엔 너는 너무 잘 살고 또 살아 왔으니 같이 망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어떤 편견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며 나의 말투는 전혀 호전적이지도 않았다. 불안들은 오히려 숨기는 것이 미덕임을 알고 있으니 입 밖으로 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시간이 없어 읽지 못한 괜찮은 표지의 저 책들은 어김없이 잘 지내고 있다.
모국어이지만 한국어로 된 대화 속에서도 나는 마치 이방인으로서 표류하듯이 하루를 지내고 울렁거리는 감정들을 배 멀미하듯이 버티다 보면 저녁에는 겨우 어둠이란 목적지에 당도하여 쉴 수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하루 종일 메고 다녔던 그 무거운 짐을 잠시 동안은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저녁이 되면 어떤 여행자든 일용직 노동자든 숙소에 짐을 푼다. 혼자만의 시간도 갖는다.
외로이 타지에서 가진 사색의 시간은 어촌의 할머니들의 시간만큼이나 매우 느리게 흘러가고 있지만 그 뒤를 감기가 죽일 듯이 쫓아와 당신과 나의 기분을 아프고 나쁘게 한다.
오늘 밤엔 이런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람의 착한 그 말투가 너무 싫어서 그가 적어놓은 글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고 기분마저 더러워졌다. 어차피 그저 그렇고 그런 세상에서 혼자 착한 척을 하는 것이 싫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