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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운 Sep 19. 2015

중랑천

나는 항상 7호선에서.

다른 부서에서 근무 하고 있는 한 살 어린 친구에게 주말에 전화가 왔다. "형, 내가 회사 주변에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회사랑 위치도 가깝고 형이랑 나랑 반 나눠서 내면 저렴할 것 같은데 형은 어때?" 내가 제일 먼저 생각나서 전화했다는 친구의 말은 반가웠다.


오랜만에 동네를 떠날 생각을 하니 사실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꽤 오랜 시간을 나는 지하철에서 보내야 했다. 그건 대학교를 다닐  때부터의 일이라 지하철은 내 도서관이 될 때도 있고 단잠을 잘 수 있는 숙소가 되기도 하고 때론 생각을 정리하는 사색의 방이기도 했다. 아니 사실 지하철은 그리 중요한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은 얼른 벗어나고 싶은 공간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퇴근길에 전화를 걸어 부를 수 있는 동네 친구들과 동네 산과 강에서 불어오는 동네의 내음이 그리울 것 같았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비교적 일찍 주무시는 아버지가 안쓰럽기도 하면서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는 요즘에 우리 엄마는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 동생에게 타자 프로그램을 배워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누르고, 노트북을 킬 때마다 자동 로그인되는 내 카카오톡은 엄마가 언제 그 날의 컴퓨터 연습을 시작했는지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우습고 귀여운 상황들이 자꾸 일어났다. 요즘은 손가락 누르기에서 문장 치기로 넘어간 우리 엄마에게 나는 컴퓨터 박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손길이 간다. 뒤를 돌아볼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것들이 그리움으로 냄새를 피우며 내 옆을 떠나가질 않는다. 그런 어쭙잖은 것들을 생각하며 지하철을 환승할 때면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아릿함이 피어오른다.


우리는 소박하고 소소해야 했다. 항상 그래야 했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우리와 맞지 않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잘하지 못하니 악으로 버티고 성실함으로 덧칠하고 삶을 그렇게 흐릿하게 그려나갔다. 우리는 도시에 살지만 삶의 방식은 시간을 심고 마음으로 키워나가는 살구색 일상이었다. 지성으로 가득한 자랑스러운 우리 학교의 선배들은 항상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들을 고민하였으며 그것들을 가사로 적고 노래했다. 우리의 삶의 크기는 항상 작지만 치열했고 그만큼 따뜻했다. 


난 그게 싫지 않고 좋으나 가끔은 그게 그렇게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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