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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운 Feb 25. 2017

말이라는 것은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이 많아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한 시간 십오 분에서 이십 분 즈음되다 보니 허기가 많이 들지 않아도 노량진에 내려서 무엇인가를 먹고 집에 돌아가고 요 근래 몇 번이나 그랬다. 노량진에 내려서 맥도널드를 끼고 들어가면 들어가고 싶은 음식점들이 제법 있다. 쌀국수며 핫도그며 라멘이며 이것저것을 파는데 음식을 보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음식을 사 먹으려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날이 꽤 추운데도 대부분은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있어 발이 추워 보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와플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같이 발을 동동 구르고 싶었다. 혼자서 와플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여기서도 몇 없었다. 다들 둘둘이 셋셋이 넷넷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와플을 기다렸다. 멀찍이서 갈까 말까 하다가 와플은 눈으로만 보고 돌아와 버렸다.

요즘에는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아끼는 편이다. 반대로 쓰고 싶은 글의 소재는 많이 없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랩을 한답시고 가사를 열심히 적던 때, 그때 말이다. 한껏 쏟아내고 나니 다음 말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멋있는 기교들을 다 부리고 나니 써야 할 말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몇 개월을 보내 버리고 나서도 좀처럼 무엇인가를 건져 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멋있게 모든 핑계를 동원해 막아보려 해도 그게 내가 랩을 접어야 했던 제 1번 이유였던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도 보면 나는 사실 말을 그리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내가 어떠한 상황과 주제에 잘 참여하지 못한다거나 그 누구도 이끄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면 나의 그런 천성을 깨고 말을 조금 더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알코올이 들어가면 말을 조금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첨언하자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의 특징은 주로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하고 또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단락에서만큼은 한번 인정을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최근에 간 영화 GV에서 장강명 작가님을 '또' 보게 되었는데(분기에 한 번은 뵈었던 것 같음) 내가 장강명 작가님의 실물을 뵌 것은 네 번 정도 되는 것 같다. 처음 보게 된 것은 장강명 작가와 임솔아 작가의 합동 신간 책 북 토크에서였다. 당시의 사회자는 허희 문학 평론가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앞자리에 착석, 앞자리에 앉았으니 갈구한 만큼 얻으리 몇 번의 아이컨택(착각)이 있었고 작가는 원래 이렇게 말도 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법 유쾌한 염세주의자의 느낌이라서 나는 사실 더 와 닿았다. 하하호호 밝은 이야기만 하는 것은 사실 꽤 많은 실언이 포함되어 있음을 모두 각자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으리.

북 토크가 끝나고 나는 처음으로 유명인에게 사인이란 것을 받아보기로 큰 용기를 내어 사인 줄 끝의 머리에 섰다. 줄이 줄어들 때마다 콩닥 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나름 팬으로서 던져야 할 의무적인 멘트들을 복기하고 있었다. "작가님 책 잘 보고 있습니다" "작가님 너무 잘 생기셨어요" "작가님 책 너무 좋아해요" 같은 모범적인 멘트들을 상기하고 있으니 내 차례가 되었는데 위에 멘트들은 고사하고 내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을 건네는 것도 엄청 떨려했더란 말이다. 좀 더 썰을 보태자면 전날에 나는 인스타그램에 김연수 작가님과 장강명 작가님에 대한 글을 적었는데 그 글의 서론에, 당시 쇼미 더 머니를 보고 너무 휠, 삘이 받았던 나는 "내가 지금 아마추어 작가이지만 프로 작가이든 누구든지 글대 글로 붙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망언 섞인 취지의 것으로 글의 서문을 시작을 했더랬다. 그 날의 개인적 사건은 사인을 받으려고 건넨 포스트잇에 적힌 '김재운'을 보시더니 작가님이 말씀하시길 "어제 인스타그램에 글 올리셨죠? 잘 읽었어요^^" 하며 웃으셨는데 그 "눈웃음^^"에 나는 심한 심장 폭행을 당하여 책을 받고 나서 무슨 말씀이신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더랬다. 하, 그랬더랬다. 그 망언을 읽으신 거였다. #장강명 을 타고 들어오신 거였다.

조금 창피하긴 했는데 조금 당당하기도 하고 그래서 친구에게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작가님이 내 글을 읽으셨다, 정말 대단해. 스고이 스고이 데스네. 베리베리 익사이팅 한 경험이었다.

사람과 친해지려면 밥도 같이 먹고 술도 같이 마셔보고 그래야 하는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기회가 있을 때에 나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어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속의 것들을 벗기어 보여줄 때에 상대방도 표면이 아닌 내면을 보여줄 마음을 품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날 때에 내가 말이 많다거나 하는 것은 사실 나는 지금 전력투구 중입니다. 전력을 다해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같이 밥을 먹을 일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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