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빠의 61번째 생신이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했고 소주 하나와 맥주 하나를 주문했다. 반 병에서 한 병 주량의 아버지가 소주를 세 잔 정도 받으시더니 아직은 괜찮다, 아빠가 버팀목이 될 수 있다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본인의 일급을 말씀하신다. 아빠가 하루에 지금 이 정도 받아. 그전에 일하던 데서 보다 지금 여기서는 이 삼만 원을 더 줘. 도면도 보고 아빠가 다 알아서 하니까는. 아빠는 칠십까지도 일할 수 있어 건강만 하면. 나는 잠깐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들어 아빠의 눈을 본다. 나와 눈매가 비슷하다. 거울을 볼 때면 제일 익숙한 눈매. 더불어 일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잠깐 본 아빠의 눈이 빨갛다. 점심시간에 소주를 반 컵 정도를 마시고 일을 하면 자기에게는 딱 맞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신다. 동생의 주량을 묻고 나의 주량을 묻고 셋이 모두 똑같다고 말한다. 소주 반 병에서 한 병 정도 마시면 화장실에 간다 하고 집에 갈 때가 많다고 하시는데 그쪽 일판에서는 술이 세신 어른들이 많다고 하신다. 나는 말한다. 아빠, 주량도 유전인가 봐요. 그 말을 하고 눈매가 비슷한 사람 세 명은 건배를 한다. 아빠 회사 그만 두면 아빠 따라서 건설 현장 다닐까 봐요. 아빠한테 일 배우게요. 그래, 나한테 배우면 그래도 훨씬 낫지. 금방 늘 거다. 아빠도 그런데 이제 담배는 줄이세요 건강해야 해요.라고 나는 답한다.
나는 살면서 여러 번 핑계와 함께 동거했는데 그와는 싸울 일이 별로 없다는 게 이유였다. 편했고 꽤나 많은 부분들을 내게 맞추어 주었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을 때, 핑계는 모든 결정을 쉽게 내리도록 도와주었고 많은 부분에 있어서도 타협할 수 있는 합당한 이유들을 제공해주었기에 그와 나의 관계는 수지타산이 잘 맞는 편이었다. 영문학과를 진학할 때에는 영어를 4년 동안 배우면 그래도 말은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학과에 진학해서는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들이 많아서 나는 열심히 해도 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유학 같은 것을 가보고 싶어 아버지에게 말해 보았던 그 새벽 밤에는 우리 집에는 그럴만한 돈이 없다는 아버지의 대답에, 랩을 할 때에는 학교 공부를 다시 해야 하니 이것은 잠시 미루어도 괜찮다는 생각에, 또 막상 공부를 하려니 직장을 다니면 돈을 벌고 좋은 녹음장비를 산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여야겠다는 생각에, 다만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삶이다 보니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버릇이나 습관 같은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 듯하다. 다만 나도 잘 하는 것이 있어서, 그것은 단연 내가 눈썰미가 좋다거나 남의 흉내를 잘 낸다는 것. 그런 점들 하나로 아빠나 엄마의 핑계 없는, 성실한 삶을 흉내 내며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게을러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나도 악 중의 악이다. 최악. 이런 나를 알면 크게 꾸짖으셔야 함이 맞는데 심성이 착하신 분들인지라 나를 어쩌지 않으셨다. 그저 내가 한다는 것이 있으면 믿어 주시고 나는 못 배웠으니 너는 대학까지는 내가 보내겠다는 신념 하에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친구들에게도 누누이 몇 번을 말했던 것 같다. 학자금 대출 없이 부모님이 나와 동생을 대학교 졸업시킨 것은 이 두 분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나는 이 두 분의 삶을 곁눈질만으로도 알 수 있다. 죄송한 건 다만 어쩌다가 이런 아들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얼마나 게으르면 회사에서 부모님 환 갑년에 주는 돈도 신청하지 않아 받지 못하는 자식이라니 참으로 죄송하다. 회사를 그만 두면 아빠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겠다는 말도 내게는 농담 아닌 진담이었는데. 무엇이 앞에 놓이면 도망가고 싶고 회피하고 싶고 뒤로 미루고 싶어서 여러 갈래로 도망칠 길들을 만들어 놓는 것은 역시나 부끄러워해야 할 마음임이.
농담처럼 보였겠지만 아버지에게 더 아프시기 전에 보험 같은 것도 가입하시고 담배도 줄이시고 현장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울까 라는 농 같은 것들이 단순한 농이 아님이 참으로 부끄럽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