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의 단상

2014-04-07 10:11:19

by 바라문다

아침 9시 54분, 월요일이 밝았다.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든 덕분에 오늘은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루의 시작을 아트스타코리아 2회를 시청하며 열었다. 림수미는 참으로 매력적인 인물이다. 외모는 물론이고, 배려심 깊은 성품과 따뜻한 태도가 돋보였지만, 상황이 그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모습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매력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페이스북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페트병에 흰색 수성페인트를 칠한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너무도 평범한 물체가 낯설게 변모하며 새로운 의미를 얻는 모습이었다. 문득 아트스타코리아에서 한 아티스트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아들과의 추억이 담긴 장난감 로봇에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혀 금덩어리처럼 만들었다. 작품의 의도는 소중한 추억을 유물처럼 간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접근 방식이 매우 인상 깊었다.


디자이너로서 나는 항상 대중과의 소통과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술이란 설명 없이도 관객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라 하지만, 그 이해의 방향은 예술가가 어느 정도 의도하고 예상한 범주 안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뭔가를 느끼겠지" 하는 무책임한 자세로 임한 작품에는 가식이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진정성이 묻어나는 작업을 접하면 내가 놓친 무언가를 다시금 생각하며 작품을 음미하려 노력하게 된다.


다시 페트병 이야기로 돌아가서, 흰색 수성페인트로 칠해진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고민해 보았다. 어쩌면 도자기를 연상케 하는 미감 때문일까? 평범하고 흔하며 저렴한 물체인 페트병을 예쁘다고 느끼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우리의 관념 속에서 그 형태적 아름다움이 묻혀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페트병을 도자기로 구워낸다면 어떨까? 반대로 도자기의 형태를 투명 플라스틱으로 구현하면 어떤 느낌일까?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오브제를 인식할 때, 형태와 텍스처, 그리고 고정관념 중 어떤 요소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까? 과거 작업 중에는 도자기의 우아한 실루엣에 구겨진 종이와 같은 텍스처를 입혀 그 대조적인 조형성을 탐구했던 적이 있었다.


페트병과 도자기 역시 유사한 실험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페트병을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 텍스처로 재현하거나, 빗살무늬토기를 현대의 진공성형 방식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키샷 렌더링처럼 재질을 자유롭게 바꿔가며 조형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아트스타코리아를 보며 느낀 점은 결국 예술이 대중과의 공감을 넘어선 소통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을 하기 위해 디자인 분야에 대한 학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관록을 쌓은 뒤에야 비로소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는 말을 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생각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진정성은 예술의 핵심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을 울리는 진정성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논쟁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그 또한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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