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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Aug 23. 2016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리한 스릴러

영화 리뷰: 나를 찾아줘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 그는 이제 스릴러 장르의 거장으로 칭송 받는다. 매우 어린 나이에 영화계에 뛰어든 그는 ‘소위 발로 뛰어 다니며 배운‘ 대표적인 감독이기도 하다. [루카스 필름]에서 첫 일을 시작했을때 그의 나이는 고작 10대에 불과했다. 그는 CF, 그리고 뮤직비디오 등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대표적인 스릴러 감독으로 자리매김할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초기작인 [세븐]과 [파이트 클럽]으로 연승을 거두며 헐리웃의 흥행 감독으로 등극하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 네트워크]등의 연출을 통해 스릴러 이외의 장르에서도 두각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2014년 10월, 그의 새로운 스릴러 영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찾아줘]라는 영화는 길리언 플린이 쓴 소설 원작의 작품으로 원작 소설 또한 출간 당시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출간 직후 30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매김했으니 원작의 여파 또한 상당했다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원작을 접하지 않고 영화를 만나게 된 관객들에게는 얼핏 뻔한 영화처럼 보일 수가 있다. 예고편만 봤을 때는 딱히 특별하다는 느낌은 받기 힘들다.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는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영화의 다이나믹한 전개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나를 찾아줘"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첫째가 매스미디어의 폐단, 둘째는 공권력의 무능함, 마지막으로는 남녀의 관계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 우선, 매스미디어의 폐단에 대해 살펴보자. 이는 극 중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각인된다.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미디어의 영향을 통해 주인공이 겪게 되는 고통은 정말 짜증스러운 일이다. 미디어는 완벽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단순히 화제몰이를 위해 닉 던이라는 인물을 희생시키기도 하고 영웅으로 만들기도 한다. 웃긴 점은 거의 하루단위로 몇몇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터지며 이러한 이미지 변화가 짧은 시간동안 계속해서 뒤집어진다는 점이다. 주인공 또한 그 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으며 극 중에서 이 부분을 직설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이리저리 휩쓸리는 시청자들 또한 비난의 화살을 맞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데이빗 핀처 감독의 완벽주의가 다시 한번 드러난다. 사실 일부 장면들을 통해 닉 던이 범인이라고 의심하던 자들은 극 중 TV를 통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뿐 아니라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기도 하다. 초반부에 비춰지는 닉 던의 모습들, 그리고 아내의 나레이션을 통해 들려지는 조작된 내용은 결국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이 접하는 왜곡된 내용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데이빗 핀처 감독은 미디어가 가진 위험성을 그들 스스로로 하여금 간접 경험 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에 들어 있는 반전 요소는 단순 흥미를 위한 요소가 아니라 감독이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둘째로 살펴볼 요소는 공권력의 무력함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매스미디어가 가진 위험성과 맞물려 그 진가를 드러낸다. 이 점은 경찰들의 무능한 수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경찰들이 에이미가 짜놓은 덫에 떡하니 걸려 닉 던을 범인으로 검거해버린 부분은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당시 정황으로는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기도 했다. 극 중 여형사는 꽤나 좋은 촉으로 무능한 부하 직원의 추측을 잘라내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단지 단서에 의해서 행동한 것이고 경찰로서의 본연의 의무를 다한 것뿐이다. 이 이야기는 그녀가 나중에 닉 던에게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작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경찰들의 수사가 아닌, 공권력이 결국에는 미디어에 굴복해 버린다는 부분이다.



          아내의 진면목을 알려야한다는 닉 던의 주장에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수사를 진행해 나갈 수가 있겠냐."라고 여형사는 말한다. 경찰 측과 법조계는 사망한 콜린스와 관련된 수사는 손을 댈 생각조차 안한다. 경찰 측에서는 미디어의 몰매를 맞는 것이 두려워서, 또 법조인은 자신들이 할 일은 다 마쳤기 때문에 에이미가 누구를 죽이고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에 대해서는 큰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형사의 경우, 에이미에게 심문을 통해 언질을 하긴 하나 주변의 시선과 무언의 압박을 느끼고 결국 중도에 캐묻는 것을 포기한다. 그들은 미디어와 여론에 전면적으로 붙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정확히는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권력은 자신의 의무에 대해 고개를 돌리고야 만다.


 



          마지막으로 부부의 관계이다. 닉 던과 에이미는 모종의 사건을 겪고도 부부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들의 동거는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지속된다. 에이미는 결국에는 닉의 아이를 임신하고 닉은 괴로워 하면서도 에이미를 떨쳐내지 못한다. 그는 에이미에게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서도 왜 이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어하냐‘고 질문한다. 그 질문에 에이미는 그게 결혼이라고 답한다. 결혼 초기에 환상적인 결혼 생활을 꿈꾸던 것은 다름 아닌 에이미다. 초반의 모습과 달리 극의 말미에서 에이미는 현실과 타협한다.



          지나간 일련의 사건들은 외도와 무관심으로 행동한 닉에 의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전에 ‘어메이징 에이미’를 강조하며 항상 환상적 이상향을 강조하던 주변인들의 탓일지도 모른다. 영화 초반부에 에이미는 어메이징 에이미가 항상 자기를 앞서간다고 말하며 동화속 자신과 현실의 자신은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이상적인 남편을 원했던 에이미만큼 닉도 이상적인 여자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에이미가 아닌 동화 속의 어메이징한 에이미를 꿈꾸며 말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환상과 결혼 생활에 대한 이상에 붙잡혀 현실에서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의 관계를 재차 고심한다. 닉은 결국에는 에이미에게 길들여졌고 그들의 관계를 수용한다.





          영화 제목인 [Gone Girl]은 "어딘가로 떠나버린 그녀"에서 "이상향으로서의 모습이 사라진 그녀"로 그 뜻이 변한다. Gone Girl이라는 부분도 결국 에이미를 제외한 이들의 시점에서 보여지는 제목인데, 그들은 어메이징 에이미 속의 완벽한 소녀로서 에이미를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동화와 환상속의 이야기일 뿐이며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조합은 없다. 서로 구속하고 얽매이며 그 사이에서 이해하기도 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2011년 연출 작품인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이후로 3년만에 영화판에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스릴러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뽐냈으며 솜씨 좋게 원작 소설을 요리해냈다. 2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는 이야기의 축을 두 번이나 뒤엎으며 관객들의 시선을 스크린에 집중시킨다. 자칫하면 방대한 원작의 분량 탓에 불친절한 영화가 됐을지도, 한편으로는 스릴러, 범죄 수사극, 법정물의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원작을 갖는 영화들 가운데 그런 작품들이 많기에 탄탄한 원작이라는 타이틀이 항상 환영 받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희대의 악녀이자 매력적인 캐릭터인 ‘에이미’를 성공적으로 연출해낸 데이빗 핀처 감독에게 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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