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는 복싱장에서

by 정작가

제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을 달리고 있습니다.

제게 20대와 30대의 삶은 꽤나 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친구들은 더 이상 꿈과 희망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30대가 되면 그간의 세월로부터 혹독한 명세서를 받게 되거든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라도 될 것만 같았던 20대와는 다른 것 같아요.

특히 저 같은 회사원들은 더욱 그렇죠.


이제는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로부터

앞으로 얻어낼 성취에 대한 예측이 비교적 뚜렷해집니다.

사회 초년생으로 직장에 들어가서 몇 년 대가리 박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대리나 과장쯤이 되겠죠.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보다 10년 먼저 입사한 선배를 보면

그 선배의 길이 곧 내 길임을 알게 됩니다. 그 선배의 연봉이 곧 내 연봉이 되죠.

정년까지 내가 얼마를 벌지 쭉 계산을 해보면 내 사회적 노동력의 가치가 얼마짜리인지 알게 되면서 ''아 나는 얼마짜리 인간이구나'하며 잠깐 현자타임이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들 부캐를 키우나 봅니다. 퇴근하고 유튜브도 해보고, 투자도 해보고, 인터넷 쇼핑몰도 해보기도 하고요.


그리고 대리, 과장 때쯤 결혼을 하고 부양할 가족이 생기게 되면, 더 말할 것도 없죠.

도전 같은 변화보다는 안정을 찾게 됩니다.

물론, 이는 지극히 제 주변에 대한 일반화입니다.

특히 저처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무직들은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는 친구들이나 지인 만남에서 삶에 대한 발전적인 화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됩니다.

미래보다는 과거에 행복했던 학창 시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 집니다.

그러나 추억팔이도 1절까지죠.

곧 인생 한탄과 공감의 성토장이 됩니다.

그런 뻔한 자리들을 몇 차례 겪다 보면 점점 모임을 피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싱장은 참 좋습니다.

왜일까요?

복싱장에는 모두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옵니다.

모두 복싱을 하러 오죠.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고민을 할 새가 없습니다.

딴생각하다가는 처맞으니까요.

단체 훈련을 하고 나면 다들 바닥에 나뒹굴어 있습니다.

온몸이 땀에 절여집니다.

누가 체력이 좋다느니,

이렇게 저렇게 훈련을 하면 좋다느니,

지난주 아이엠복서에서 누가 누구를 이겼는데 그거 봤냐던가

이야기의 주제는 대게 복싱입니다.


다들 복싱 실력을 늘리는 데에 관심이 있지

각자 누가 무슨 일을 하고,

누가 어디에 뭘 샀는지,

누가 누구를 욕했고,

정치가 어떻고, 사회경제가 어떻고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만나는 자리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입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현격히 줄어듭니다.


복싱장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옵니다.

우리 체육관에는 초등학생부터 50대까지 함께 운동합니다.

저는 특히 20대 초반 친구들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습니다.


군대에서 무엇을 하고 나올지,

얼마를 모아 올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놓고, 프로 선수 생활을 병행하는 계획도 들어봅니다.


잘 생긴 친구는 유튜버를 하겠다고 하고,

배우를 꿈꾸는 친구도 있습니다.

운동선수 매니지먼트에 관련된 MCN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녀석도 있고,

아직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녀석도 있습니다.

틈만 나면 이성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 녀석도 있고요.


띠동갑도 넘는 삼촌 격인 제게

이 녀석 저 녀석 찾아와 종종 조언을 구하러 옵니다.

이런저런 답을 해주다가도

괜히 꼰대짓 같아 혼자 섬찟하고

하던 말을 멈추기도 합니다.


그리고,

빛나는 녀석들을 보면서

저도 다시 한번 자극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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