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하고 창피한 그 시기

by 정작가

원, 투!

잽 잽 투!

코치님이 말합니다.

"턱은 아래로 당기고, 시선은 살짝 위를 보듯 앞에 있는 상대를 응시하세요.

어깨와 골반을 돌리면서 뒷발을 축으로 삼아 주먹을 내지르세요."


머릿속에서는 영화나 유튜브 영상 속 복서의 움직임이 펼쳐집니다만,

체육관 전신 거울에 비친 제 자세는 한없이 하찮습니다.

세상에, 몸치도 이런 몸치가 없습니다.


링 위에 올라봅니다.

첫 스파링을 하게 됐네요.

인사불성 술주정뱅이 마냥 주먹을 마구 내질러봅니다. 허나 요리조리 잘 피하는 상대에게는 가소롭습니다.

신명 나게 두들겨 맞습니다.

몇 차례 스파링 경험을 하고 나니 혼자 쉐도우를 할 때 앞에 희미한 형상이 그려집니다.

엉성한 자세로 다시 열심히 해봅니다.

그런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럽습니다.

왠지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모습을 보고 비웃는 것만 같고,

멀리서 속닥 거리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는 건 아닌지 신경 쓰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제 실력이, 타고난 이 몸치의 몸놀림이.

허나 괜찮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찌질하고 창피하고 부끄러운 시간을 참고 견디면,

타고난 천재들처럼은 되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썩 괜찮은,

적어도 ‘중간 이상’은 가는 나름의 실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요.


4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턱을 당기고,

시선과 몸을 신경쓰며 원, 투를 날립니다.

사실 이제는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 중간 어디쯤에서 자연스레 신경 쓰이듯 합니다.


이제는 코치와 제가 체육관 중앙에서 미트를 잡을 때면

주변에 앉아 있던 회원들이 '우와'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덩달아 기분 좋아진 저도 코치도 더 빠르고 강하게 주고받습니다.


이런 경험은 비단 운동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새롭게 배워나가는 모든 분야에서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시기를 한 번쯤 겪고 이겨낸 사람들은 또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준 사람들을

사회는 쉽게 놓아주지 않으려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로 확장해 나가길 바랄지도요.

그들이 똑같이 그 시기를 이겨낼 거란 믿음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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