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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Jul 03. 2023

친구에게

꽃 같은 너,나

전화가 왔다.

죽겠다.

인간 족속이 싫다.


친구는 사업을 한다. 디자인을 하고 공간을 꾸민다.

20대 후반에 다시 대학으로 들어가 건축 공부를 했고, 대기업 건설사에서 일을 하다 퇴사를 하고 이제 창업한 지 갓 1년이 됐다.

그런데, 성공하고 싶어 죽어라 일을 했는데 오히려 빚이 생겼다.


최근에 친구의 친구가 동업하는 형의 매장 인테리어를 해준 게 화근이었다.(그냥 남이지 뭐)

대략 이런 이야기다. 5천에 하기로 한 공사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 잔금을 줄 수 없다며 난리를 친다.

어쩔 수 없이 원하는 것들을 추가해 줬다. 결국, 순수 자재값과 인력비만 8천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으나 처음 5천만 원만 주겠다. 배 째라 난 못준다. 이런 식인 거다.

초반에 계약서도 쓰고 안전장치는 다 해놓았지만, 이성적으로 대화가 안 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런 식으로 잔금일이 밀리고 밀리다 보면 이제 막 시작한 작은 회사에서는 다른 현장 진행에도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스트레스도 극에 치다른다.


친구 이미지는 연예인 하하 같은 스타일이다.

사람 좋아하는 내 친구는 사람 믿고 해 줄 때마다 크고 작게 이런 일이 생긴 듯하다.

친구가 생각이 없고, 일 경험이 없어 어리숙해서 그런 결정들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친구는 눈앞의 돈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지금 작은 손해라도 작업 포트폴리오를 쌓다 보면 더 큰 일을 수주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쌓이고 쌓이다 보니 다 내려놓고 싶은 모양이었다.   

당장 이 일을 때려치우고, 굴삭기 같은 중장비 다루는 일로 현장에 나가 빚을 빨리 갚고 그냥 죽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한 시간쯤 통화를 하고 카톡으로 마저 답변을 남겼다.


브로, 인생은 존버다. 버티다 보면 또 햇살이 비치지 않겠나.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누군가 시작한다면
네가 지금껏 해왔던 시간만큼 투자해야 할 텐데
그 길을 쉽지는 않겠지.
공부도 해야지, 현장 경험도 쌓아야지.
3년이면 얼추 따라 하고 4년 5년이면 비슷하게 할 수나 있을까?
너는 할 수 있다고 해도 너한테나 쉽지 누군가한테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는 사람도 있어

반대로 네가 지금 하는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간다면
너도 남이 했던 만큼은 열심히 해야 할 텐데 그 또한 쉽지 않겠지.
자신감을 갖고, 자부심을 가져, 자존감을 올려.
네가 했던 현장들
나는 그거 절대 못해
왜 스스로를 깎아먹어
지금 당장 인간관계에 환멸도 생기고, 열받고, 짜증 나고, 금전적 손해가 연쇄로 닥치니까 멘탈이 바사삭 됐겠지만
사실 당장 돈 한 푼 안 들고 처리할 수 있는 내면의 감정적인 것들을 빼고 나면
현실적으로 감당해야 할 건 금전적 손해만 있는 건데
5천~1억에 내 목숨을 갔다 버린다고 생각하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지 않겠어?
우리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 될까.

내 경우엔 예전에 주식으로 운 좋게 벌었던 것 중에 2억 정도 한 번에 날려보니까
그 시기에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당장에 잃은 돈보다 '이만큼 다시 벌려면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하는 생각이 더 크게 났었어.

나중에 '왜 내가 돈보다 시간을 더 생각했지?' 하고 고민해 보니까

당시에 나는 그냥 내가 빨리 성공하고 싶었던 욕심이 더 컸던 거 같아.

'빨리 성공'이라는 건 비교 대상이 있다는 거고, 그건 상대적인 거니까
 
결국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성공하고 나도 멋들어지게 살고 싶었다는 거지.

그러니 조급했던 거 같아.
네가 지금 힘든 건 5천? 1억? 때문일까
아니면 조급함을 못 견뎌서일까.
후자라면,
그것만 좀 내려놔 보자.
까짓 거 빚
1~2년이면 못 갚을까.
알잖아.
할 수 있다는 거.
성공까지는 조금 돌아갈 뿐인 거지.

조금 내려놓으면 또 괜찮아질 거야.


힘내자.


20대의 4년은 대학이다.

2년은 군대다.

금세 26살이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곤 통상 1년~2년 정도 취업준비 기간을 갖는다.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하는 경우엔 또 1~2년 정도 휴학 기간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나면 빨라야 28~29살에 취업을 하게 된다.

운이 좋아 대기업에 들어가 1~2년 정도 신입으로 일하면 수중에 큰 빚 정도는 없는 파릇파릇한 30대가 된다.


30대가 되고 주변을 둘러보면

슬슬 '사회적 격차'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부모님의 재력에 힘입어 일찍이 자리 잡고 신나는 20대와 30대를 보내는 친구도 있고,

20대 초반부터 열심히 알바를 뛰며, 장사하고 홀로 사업을 키워나가 대성해 30대에 드디어 두각을 나타내거나

대기업에 들어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기도 하다.

반면에 여전히 취업을 못하고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거나, 조용히 어딘가로 증발해 버린 친구도 있다.

이 와중에 SNS에는 연예인, 인플루언서, 이른바 잘 나가는 사람들이 '나 이렇게 잘 살아요'하며 포스팅을 하는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알 수 없는 조바심이 생겨나게 된다.

왠지 나도 저렇게 해야 될 것만 같은 기분 말이다.

스시 오마카세 한 접시 때려주고,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은 꼭 갔다 와야 하며, 줄 서서 먹는 맛집엔 꼭 들려서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은 기분말이다.


본디 나라는 놈은 지극히도 개인주의다.

타인에게 간섭 받는 것도, 간섭을 하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이라 남들이 뭘하건 별로 관심 없지만,

알게 모르게 스몄나 보다.

그래서 나도 은연중에 조급했는지 무리하다가 많은 것을 잃었다.

반성했고, 깨달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앞으로 살아가며 이루고 싶은 것들을 리스팅 했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내 페이스대로, 내 숨만큼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치유됐다.

조바심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국화꽃

겨울에는 동백꽃


꽃도 봄에 피는 꽃, 여름에 피는 꽃, 가을에 피는 꽃, 겨울에 피는 꽃이 다 다르듯.



우리도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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