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해주는 사람

고맙습니다.

by 정작가

나는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거나, 같은 식당의 같은 자리에 앉는 걸 좋아한다.

길도 익숙한 길로 가는 게 좋다.


루티너리한 삶이 좋고,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규칙과 의무를 만들기 좋아한다.

이런 성향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넓지 않은 내 인간관계를 깊게 만든다.


이전에 다니던 미용실에 4년을 다니다가 새로운 곳으로 시도했다.

새로운 디자이너 선생님께 '나는 똑같은 곳만 다닙니다. 이번에 마음에 든다면 앞으로 적어도 3년, 매달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디자이너는 젊지만 딱 봐도 느껴지는 기운이 자기 실력과 직업에 상당히 프라이드가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날 머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미용실에 들어갈 때는 삽살개로 였는데, 나갈땐 말티즈로 나갔다.


'앞으로 3년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웃으며 ‘또 뵙겠습니다’ 라고 했다.


그게 작년 여름이었으니 벌써 1년이 다됐다.

오늘도 머리를 다듬었다.

이제는 내 전담이 된 디자이너 선생님께 관리를 받으면 편안함을 느낀다.

내 스스로가 만든 규칙에서 오는 편안함과 디자이너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시는 것에서 오는 편안함과 믿음이 있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내가’ 편하다고 느끼면, 보통 '우린 서로 잘 맞는 것 같다'라고 한다.

근데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을까?

사람들은 상대방이 얼마나 나에게 맞춰주고 있는지 잘 깨닫지 못한다.

그게 상대방의 배려인데 말이다.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는 것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다.

내가 편하다고 느낀다는 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나를 그만큼 배려했고, 또 잘 맞춰줬다는 것 아닐까.

오늘 손질해주신 디자이너님께 손질받을 때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부족함이 없었다.

이 말은 디자이너님께서 나를 그만큼 배려하고 잘 맞춰줬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달리 내가 그들의 기호에 맞춰준 건 없으니 말이다.

(이런게 바로 프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친구관계도 똑같다.

물론 나와 비슷한 성향이니 우리가 친구가 되었겠지만,

아무리 친구라도 모든 면에서 나와 똑같을 수는 없다.


문득, 늘 내 얘기를 들어주고, .

내가 쓴 글에 대해 평을 해주거나,

좋은 일이 있을때 이야기하면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대단하다고 해주는 친구가 생각났다.

그냥 같이 있으면 편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친구가 늘 나에게 맞춰주고 있었다.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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