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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Jul 31. 2023

파도와 모래가 만나는 부분처럼

강원도 양양으로 홀로 떠났다.

홀로 여행의 목적은 두 가지다.


1.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2. 자기 치유


매일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에 지쳤다. 아니 지금 당장 지쳤다기 보단 곧 마음이 고갈될 것 같다는 게 조금 더 정확하겠다. 이제 남은 하반기 몇 개월간 매달 대형 전시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 준비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과 연락하고 소통해야 하기에 미리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나는 가끔 이런 ‘연결’을 잠시 끊어 내고 컴퓨터 인터넷 사용기록을 비우고 쿠키를 지우듯, 슥 다 밀어버리고 메모리를 시원하게 비워주면 좋다고 생각한다. 메모리를 비우는데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행동하는 거다. 먹고 싶다면 먹으면 된다. 일행이 없어 혼자 고깃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면 그냥 뛰어들면 된다. 해변에서 미친 듯이 폐가 터질 듯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달리면 된다.

물론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이 과정에서 모든 행위의 중심에 내가 있게 된다. 때때로 이런 자기본위적 행동은 나를 기운차게 한다. 왜냐면 직장 생활, 사회 생활 그냥 저냥 살다 보면 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나도 모르게 모두가 가는 방향으로 등 떠밀려 살아가게 된다.

이게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이렇게 무리에서 벗어나 연결된 촉수들을 끊어내고, 다시 연결시키다 보면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늘 사람의 ‘자기 치유력’을 믿는다.

살다 보면 종종 아주 사소한 아픔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습적으로 아프다며 앓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을 혐오한다.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는 것까지는 괜찮으나, 습관적으로 어떤 아픔을 앓고 있음을 어필하고, 타인에게 그 감정을 전가함으로써 위안받거나, 상대로부터 정신적 치유받았음에 고마워하곤 냉큼 볼장 다 봤다는 듯 떠나는 사람말이다.

덧붙여, 그들은 아프다고 토로할 때 상대가 별 반응이 없다면, 왜 공감하지 못하냐며 속상해하거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거나 주변 사람에게 무심하다며 상대의 공감능력을 의심한다. “아유 나 머리 아파, 속이 안 좋아, 발 아파, 눈 뻑뻑해, 진짜 짜증나, 스트레스 받아!ㅜㅜ”를 외치곤 고개를 휙 돌려 옆사람의 눈을 쳐다보며 “자! 내가 방금 아프다고 했어 얼른 반응해! 날 위로해!’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 말이다. 그냥 아주 잠깐 혹은 길어야 몇 시간만 있으면 괜찮아지는데 말이다. 나로서는 당최 이해하고 싶지 않은 행동이다.

먼저 스스로 일어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다 안되면 그때 도움을 받으면 된다.



여행을 출발하기에 앞서 일단 책을 잔뜩 챙겼다.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에세이와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 박종대 애널리스트의 [K-뷰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the Old Man and the Sea]를 가방에 넣었다. 노인과 바다는 일부러 바다 여행 갈 때 읽으려고 샀다. 극한의 컨셉이다. 바닷가에서 읽으면 뭔가 더 다를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챙겼다.

브런치 작가들은 조금 공감하지 않을까 싶은데, 요즘 부쩍 책을 펼침과 동시에 생기는 글쓰기 욕구를 멈출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면 '나도 글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결국 책을 몇 장 넘기다가 이내 덥곤 아이패드를 열어 브런치 저장함에 글을 추가한다. 브런치는 참 잘 만들었다. 글쓰기 욕구를 굉장히 잘 자극하는 플랫폼이다. UX/UI 측면에서도 훌륭하게 설계됐다. 눈을 어지럽게 하는 광고 베너도 없고, 쉽게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수도 있고, 내 글도 쉽게 쓰고 발행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이키 러닝화와 무릎보호대를 챙겼다.

상상 해보자. 해질녘 노을과 모래사장을 옆에 두고 러닝을 하는 내 모습을, 그 해방감을.

매일 지하의 눅눅하고 어두운 복싱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 중랑천으로 나가 뛰어도 날아 갈듯 좋은데 바닷가 러닝이라니.. 장비를 챙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러닝화와 무릎보호대를 가방에 쑤셔 넣었다.




바다로 향하기로 마음먹고 장소를 검색했었다. 물리적 소음이 적고 사람이 없을 것만 같은 해변을 찾았다. 물론 이 시기엔 전국 바다에 사람이 없는 곳이 없다. 없는 곳을 찾는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만 사람이 있어도 대부분 가족단위인 곳을 찾아봤다. 상대적으로 조용해 보이는 해변을 찾았고, 다음으로 숙박장소를 찾았다.

내 숙박장소는 동해에서 흔한 구조인 1층엔 서핑샵을 운영하면서 4~6명이 함께 자는 도미토리 형태의 게스트 하우스와 그중 룸 몇 개는 개인실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 시기에 게스트하우스 이용객들은 밤새 술을 마시고 숙소는 아주 잠깐 눈만 붙이는 용도로 쓰기 때문에 시끄러운 게 당연하다. 20대 호르몬 그득한 청춘남녀들이 다 그렇듯, 게스트하우스는 밤늦게도 술 놀이에 밖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난다. 그래서 나는 비용은 조금 비싸더라도 개인실로 예약했다.

예약 가능한 숙박 장소를 찾는 거 자체가 쉽지도 않았다.





여행 당일 아침 일찍 출발을 했다. 중간에 가평과 내린천 휴게소도 들러서 츄러스도 먹고 국수도 먹었다. 집에서 3시간 정도 운전을 하니 해변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가족단위 사람들이 좀 있었고,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해변이었다.


직원분도 책 읽는 걸 좋아하시는지 피크닉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숙소 1층 앞,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해변을 바라보며 크로스백에 가득 챙겨 온 책과 아이패드를 열었다.

무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였다. 그래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일단 여행의 스타트가 좋음을 느꼈다. 근처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와 마시면서 다시 책을 읽었다.

몇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기다리던 해질녁이다.

잽싸게 무릎보호대와 러닝화, 양말을 신고 달리기 준비를 했다.

아주 작은 해변이라 끝에서 끝까지 1킬로도 안 돼 보였다. 다만 해변 한쪽 끝에 작은 언덕배기 산이 있고 산책로도 있어서 몇 번 왕복을 하면서 산책로 나무 계단을 마구 오르면 땀이 흠뻑 날 것 같았다. 마구 계단을 오르고 제일 윗 봉에서 드넓은 바다 전경을 보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상의 탈의를 하고, 타이트한 러닝 반바지에 러닝화 그리고 이어폰을 끼고 미친놈처럼 달렸다.

평소보다 훨씬 오버페이스로 달려도 몸이 잘 버텼다. 분위기에 취한다는 게 이런 건가.

아마 해변에 있던 사람들은 웬 미친놈이 저리 뛰어다니나 싶었을 것 같지만, 내 기분이 좋았으니 그걸로 됐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가기 전에 상상한 내 모습은 나이키 광고였는데, 실상은 오랜만에 목줄 풀린 시골 개 같았다. 40분 정도 마구 뛰었더니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 해질녁에도 햇빛은 여전히 강해서 피부도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앉아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신발을 벗고, 시계와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이번엔 해변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해변엔 아무도 없었다.

'가족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모두 애기들 밥 챙겨주러 갔나?'라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알고 보니, 6시 이후엔 원칙적으로 해변 이용이 통제된다고 했다. 그 원칙을 누구 맘대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촌계(?) 안전요원들이 그 시간까지만 근무를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여하튼, 아무도 없는 바다에 들어갔다. 수심이 얕아서 무릎에서 허벅지까지만 잠겼다. 예전에 해안부대에 근무할 때 물에 빠진 선임 구하러 들어갔다가 나도 죽을 뻔했는데 그 이후로 나도 깊은 곳은 피한다. 딱 좋았다.

저 앞에 보이는 안전 라인선까지 마구 해엄을 치다가, 숨이 차서 배형으로 하늘을 보고 누웠다.

기대하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경관에 넉을 잃었다.

귀는 물에 잠겨 있어서 노이즈 캔슬링이 됐고, 하늘 위는 어쩜 그리 예쁘던지.

태평양 망망대해에 나 홀로 누워 둥둥 떠있는 기분이었다.

말로는 당연히 형용할 수 없고 비루한 내 글솜씨로는 더더욱 표현 못할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속으로 “이거 중독되겠는데? 와 진짜 중독되겠는데? 와 이거 진짜 중독되겠는데”를 연신 외쳤다.

배형 자세로 하늘을 보고 있으니, 공기를 머금은 상체는 떠있고 발 뒤꿈치 쪽은 얕은 수심에 살짝 바닥에 닿아 있어서 안전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해변으로 걸어 나가는데

파도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부분과 모래사장이 만나는 부분의 바닥을 맨발로 밟아보니 어떤 기분 좋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과장 좀 보태서 모래로된 판판한 비행기 활주로 같은 느낌이다.

발가락에 조금 힘을 주고 모래를 움켜쥐어야 파이는 정도로 달리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내가 박차고 나가는 출력에 버틸 수 있고 또 너무 딱딱하지 않아서 내 발에 상처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내 마음도 늘 딱 이 정도로 너무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게 적당하면 좋겠다.


"저 먼발치까지 전력질주로 달려볼까?"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일말의 주저 없이 진짜 100미터 달리기 전속력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러닝을 해도 주로 페이스 조절을 하며 달리기 때문에 이렇게 폐가 터질 듯한 기분은 자주 느끼지 못한다.

전력질주를 하고, 숨은 턱끝까지 올라와서 힘들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이 느껴졌다.


내 글에서 자주 언급하지만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만큼 주체적인 행위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달리고 싶은 만큼, 내 숨이 허락하는 만큼 달리고, 멈추고 싶으면 언제든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터질 듯한 숨을 머금고 다시 잽싸게 물로 들어가서 배형 자세로 하늘을 보며 물 위에서 둥둥 떴다. 역시 중독이 맞았다.


내 이런 모습을 해변에 있는 몇몇 숙소에 있는 사람들이 내려다보거나,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엔 혼자 미친 듯이 뛰었다가 마구 수영했다가 또 물에 둥둥 떠다니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진 모르겠다.


알게 뭐람, 난 너무 행복했다. 실금이 자글자글 간 마음이 탱글탱글하게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른한 몸을 이끌고 주문진으로 가서 우럭회와 오징어 물회를 사 와서 먹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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