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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Jun 28. 2023

복싱과 웨이트 트레이닝의 차이

복싱 도전기 (2)


웨이트 트레이닝과 다른 운동과의 차이 

역설적이게도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이 좋아지면 몸을 더 못쓰게 될 지도 모른다. 


보디빌딩식 웨이트의 근본은 고립운동이다. 근육을 고립시킨다. 관절과 관절 사이에 있는 근육을 타깃하고 그 녀석만 혼내주면 된다. 이두나 삼두 운동을 한다면, 팔꿈치(관절)와 어깨(관절)의 동작을 최대한 제한해 근육(이두 or 삼두)만 이용해 들어 올리는 것이다.

다른 부위의 근육이 점차 개입될 수록 내가 노리는 근육의 자극은 저하된다.

내가 타깃한 부위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근육이 빨리 피로해진다.


무거운 덤벨을 들어 올려 이두 운동을 한다.

팔꿈치 관절은 0도~ 150도의 가동범위를 가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팔꿈치 관절을 20도~130도까지만 이용한다.

자칫 팔꿈치 전체 가동범위를 다 쓰다가는 어깨와 삼두의 개입이 커질 수 있다.

고립은 말 그대로 이두 근육을 외롭게 고립시켜 다른 근육의 도움을 ‘최대한’ 받지 않고, 이두만을 이용해 덤벨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만큼은 효율성이란 '내가 목표한 근육을 단시간 내에 최대한 피로하게 하는 것'이다.

'목표 근육' '단시간' '피로하게 만들기' 

반면, 이 세가지 키워드가 다른 운동에서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녔다. 

사실 이게 본래 몸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인데 말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제외한 다른 운동에서는 유연성, 지구력, 근력, 인지능력 등... 내가 가진 모든 요소를 활용해 최대한 몸을 덜 피로하게 해야만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오래 달리거나, 오래 매달려 있거나, 더 많은 라운드를 버텨내거나 더 적은 움직임과 유연함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하기도 했다.

고립 운동이 10년 이상 몸에 디폴트 값으로 세겨진 덕에 이를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이번 복싱 도전기 글을 통해 지금까지 겪은 다른 운동에서 웨이트 트레이닝과 달랐던 점을 적어본다. 

(1) 클라이밍

클라이밍은 기울어진 벽면에 몸을 가깝게 붙이고 홀드(손잡이)를 잡아 위로 올라가는 행위를 반복한다.

클라이밍에서는 최대한 힘을 아끼며 올가야 한다. 

근력만으로 올라가는데는 한계가 있다.

근육덩어리인 스캘레톤 금메달 리스트 윤성빈 선수도 클라이밍 센터에 가서 힘으로만 오르려 하다가 몇 미터 올라가지 못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마치 초등학생 시절, 구름사다리에 매달리는 거 정도로 생각하곤,

별거 아니겠지~ 하고 팔 힘으로만 오르기 시작하면 2미터~3미터 정도 올라가다 금세 지쳐 손과 발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그러다 괴성을 지르며 아쉽다는 듯 떨어진다.

하나의 홀드를 잡고 올라가는 데 5%의 근력이면 충분한데 20%, 30%씩 힘을 주고 올라가다보면 금방 지친다. 클라이머들은 올라가며 힘을 줄때와 안 줄 때를 조절하고, 한쪽 손으로 매달려 나머지 펌핑된 손을 털며 체력을 다시 돌리기도 한다. 그리고 손과 발, 상체와 하체의 무게 중심을 야무지게 바꿔가며 효율적으로 등반한다.


(2) 스노우보드

겨울철 스키장에서 한 번쯤 스키나 보드를 타 봤다면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보드를 처음 타면 이른바 '낙엽 타기'라 불리는 동작으로 내려온다. 초보자들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꽉 주고 탄다.

큰 활엽수 낙엽이 하늘에서 나풀나풀 떨어지는 모습과 비슷하게, 왼쪽 대각선으로 쭉 갔다가 다시 오른쪽 대각선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보드의 방향전환 없이 완만히 내려온다.


사람들이 초보자 때 넘어지는 이유는 전신에 힘을 꽉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갈대처럼 부드럽게 있어야 하는데 몸에 힘을 주고 있으니, 눈덩이에 살짝 걸리기만 해도 병든 닭 모가지처럼 픽픽 쓰러진다.

금방 지치고, 고목이 바람에 넘어가듯 휘청거리다가 중심을 잃고 이내 쓰러진다.


잘 타는 사람들은 무릎을 위아래 바운스 타듯, 몸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허리를 이용해 보드의 방향을 쉽게 바꾼다. 라이딩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바뀌는 지형과 갖은 저항에 부드럽게 대응한다.

몸에 힘을 주면 줄수록 넘어지기 쉬워진다. 다리 힘만으로 버티려 하면 안된다. 몸의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전신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3) 수상스키와 웨이크 보드

웨이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던 종목 중 하나다. 물을 정말 많이도 먹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시티드 로우 동작처럼 광배근을 꽉 조이는 후인하강 고립 자세는 수상스키에서 절대 해선 안될 동작이다.

수상스키의 준비 동작을 생각해 보면, 앞에 보트가 있고 내가 잡을 로프가 수면에 길게 늘여져 있다.

그리고 물 위에서 반쯤 누워 줄의 손잡이를 잡고 대기한다.

배가 출발하며 줄을 당기면, 내 몸이 딸려 올라가 자연스럽게 스키를 타게 된다.


 부분이 중요하다. 배가 출발하고 내 몸이 딸려 올라갈 때 엄청난 물의 저항이 생긴다. 

그 저항에 몸을 부드럽게 맞기며 자연스럽게 물 위에 올라서야 한다. 마치 비행기의 날개가 공기의 저항을 전면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꺾어 저항을 이용하듯 말이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몸에 저항이 생기자 광배에 힘을 주어버렸다. 마치 배의 모터 출력에 전면으로 저항하듯  몸에 힘을 주고 버티면 마치 몸이 물수제비처럼 수면에서 튕겨져 나갔다.


몸에 힘을 빼고, 마치 내 팔이 줄과 처음부터 연결되어 제작된 것처럼 부드럽게 큰 반발력 없이 수면 위에 오롯이 설 때까지 끌려 올라가게 두어야 한다. 줄을 붙잡고 있는 팔부터 어깨, 허리, 그리고 다리가 순서대로 서게 된다. 마치 말린 양탄자가 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서핑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보드에 엎드려 있다가 뒤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힘에 무작정 저항하지 않고, 파도가 보드를 밀어내는 힘을 느끼면서 부드럽게 몸을 세워 일으켜야 하는데 계속 몸에 힘을 주고 저항했다. 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계속 앞으로 고꾸라져 바닷물을 정말 많이 먹었다.


이정도면 그냥 운동신경이 없는 거 아닐까?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맞다. 사실 난 몸치다. 그냥 웨이트 탓하는 거다. 


하이라이트는 복싱이었다. 근육만 믿고 까불면 큰 코 다친다.

힘들다. 

복싱은 정말 차원이 달랐다.

운동을 좀 했다는 사람도 링 위에 올라서 딱 1분만 진지하게 스파링을 해보면 바로 알게 된다.

숨이 턱끝까지 올라오고 주먹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된다.


왜 TV프로그램 '아는형님'에서 정찬성 선수가 강호동에게 절대로 격투기로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격투기는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


기세 좋게 온몸에 힘을 주고 마치 오락실 펀치 기계를 치듯 1분 동안하고 나면, 그때부터 지쳐서 바닥에 주저 않고 싶은데 아직 이번 라운드는 2분이나 더 남았다. 심지어 이번 라운드가 끝나도 앞으로 몇 라운드가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이 절망적이다.


딱 이런 느낌이다. 50M나 100M 달리기를 측정하던 중고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쉽다. 

그 때는 죽어라 뛰고 나면 헉헉거리며 바닥에 주저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며 쉴 수 있었다. 


근데 복싱에서는 그때부터 누군가의 주먹이 내 얼굴로 마구마구 날아온다고 보면 된다.


숨이 차고, 더 이상 팔이 안 올라가는데 날 쓰러뜨리겠다는 주먹이 얼굴로 마구 날아오니 대응이 안된다.

이렇게 한 번 혼쭐 나고 나면 '아 이래서 힘만 믿고 까불면 안 되는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이래서 격투기 선수들이 문신 많고, 배가 터질한 뚱뚱한 양아치들 이른바 ‘문돼’, 깡패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구나 싶었다. 덩치나 힘만 믿고 까불면 정말 큰 코 다친다. 언젠가 복싱장에서 키도 크고 몸무게도 100키로가 훌쩍 넘는 문신이 그득한 사람이 50키로 남짓한 프로급 일반인에게 정말 복날 개 잡히듯 두둘겨 맞는 걸 본 적있다.

처음 1분 30초 정도 까지는 기세 좋게 어금니에 힘주곤 ‘이 X만한 새끼’라는 눈 빛으로 힘을 주어 치더니 이내 금방 지쳐 헉헉거렸다. 그리고 몇 대 맞더니 금세 선한 양 눈으로 변하면서 남은 라운드 동안 두들겨 맞는 걸 봤다. 


복싱은 프로, 아마추어, 생활체육에 따라 라운드와 쉬는 시간이 다르지만 일단, 1라운드에 3분, 쉬는 시간 1분, 총 4라운드 하는 것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보통 체육관에서 훈련할 때는 이걸 기준으로 한다.(생활체육복싱대회 : 통상 1라운드 2분, 1분 휴식, 총 2라운드 진행, 프로 : 4라운드~12라운드까지, 아마추어 3라운드)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겠지만, 복싱을 잘하는 데는 근력, 심폐지구력, 유연성, 인지능력, 동체시력 등 다양한 요인이 반영된다.

근력만으로는 절대 못한다.

그래서 격투기 경기를 보면 몸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 선수가 복근이 선명하고, 팔도 두껍고, 어깨도 빵빵한 선수에게 이길 수 있는 게 크게 이상하지 않은 것 같다. 

한 번에 200KG을 들어 올리는 빌더가 있고, 한 번에 100KG밖에 못 드는 격투가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격투기 선수는 100KG밖에 못 들지만 보디빌더가 한두 번 내지를 때 피하고 막아주면 끝이다.

1RM 200kg을 드는 빌더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 버린다. 200KG나 들던 힘이 금세 80KG밖에 못 드는 힘으로 줄어든다. 격투기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힘이 세도 힘이 빠져버리면 장사가 아니게 된다.


특정 근육을 타깃 하는 ‘고립운동’이 기본인 헬스장 운동(웨이트 트레이닝)은 근육은 늘지만, 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잃어버릴 수도 있다. 

복싱에서 몇 라운드 동안 끊임없이 내지르는 펀치는 단순히 근력만으로 해낼 수 없다.

발끝부터 무릎, 허리, 어깨, 팔꿈치 그리고 주먹이 나가는 손끝까지 몸을 보다 효율적으로 써야한다.

그래서 경지가 높은 복서들은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몸의 중심을 잡고 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주먹이 안 나간다. 마치 술 취한 아저씨가 휘청거리듯 나간다.

길거리 싸움이야 한두 번 펀치로 끝나니 문제가 안 되겠지만, 복싱은 다르다. 100번을 쳐도 상대는 쓰러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주먹을 내질렀을 때 자세가 무너저 있으면 역으로 상대방의 주먹이 내 얼굴에 박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 중요한 것은 무너진 자세에서는 내가 다음 펀치를 내지를 수도, 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신나게 맞고 그대로 경기는 끝나게 된다.


나는 러닝을 좋아한다. 키로미터당 5분2~30초 대로 10KM를 뛰어도 전혀 숨이 차지 않는다. 여유롭다. 

웨이트도 벤치프레스 1RM 130KG을 들 정도로 힘이 없진 않다.

근데 복싱을 처음 접하고 몇 개월 동안 야무지게 처 맞았다. 물론 워낙 잘하는 사람이랑만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복싱러들과 주먹을 섞고 몸 싸움을 몇 번 하다보면 나는 힘이 쭉쭉빠지는데 상대들은 힘이 하나도 안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나 혼자만 무릎까지만 잠기는 늪에서 싸우는 기분이다. 

죽진 않고 꾸역꾸역 앞으로는 갈 수 있지만 힘은 쭉쭉 빠진다. 

지금에서야 내 옛날 스파링 영상을 보며 알아차릴 수 있지만 당시엔 몰랐다. 나는 근력만 믿고 휘두르며 까불고 있고, 그들은 몸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음을. 


지금은 선수 시합 영상을 보면 너무 재밌다. 어떻게 몸을 써야하는지, 선수들이 왜 몸을 그렇게 움직이는지 알고보니 영상이 배로 재밌다. 정말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게 사실이었다. 나는 그냥 격투기 하는 사람들이 마구 팔이나 휘두르는 줄 알았다. 



(다음편, 시 생활체육 복싱대회 참가 및 승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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