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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석 Nov 07. 2018

기억을 찾아주는 노래들

그때, 그 노래

   부모님이 언젠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노래를 듣고 당신의 중학교 때 나온 노래라며 반가워하시던 일을 기억한다. 요즘은 나도 그런 노래들이 점점 생기는 걸 보니, 조금은 나이가 들었나 보다. 나의 고등학교에는 기숙사가 딸려있는데, 중학교 졸업하고 입학 전에 잠시 동안 예비학교라는 방학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왔는데, 아직도 그때 나왔던 기숙사 기상송을 들으면 예비학교 때 느꼈던 것들이 문득 생각나고는 한다.    


    자이언티의 <노래>,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크러쉬의 <Beautiful> 등이 있었는데, 이 노래들을 들으면 일반적인 노래를 들을 때처럼 가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기상송이 흘러나오는 기숙사 방에 누워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불속에 있는 푸근한 느낌과 함께. 친구들은 <노래> 가 어디서든 나오기만 하면 싫어했다. 아침마다 잠 깨라고 들리는 소리니 좋을 리는 없었겠지만. 그런데 친구들의 싫어하던 일마저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처음 야자를 하던 때의 긴장감과, 다른 친구들 다 하는 대회에 등 떠밀려 참가하던 기억들, 어쩌다 마음에 드는 기상송이 나오면 눈 감고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던 일들이. 그때의 기상송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초심을 기억하게 해 주고, 비록 잠깐이지만 다시 배울 의지를 일으켜 세워 준다.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느낀 떨림과 설렘 같은 감정들을 이 노래에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초심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고삼이 다 되어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하는 느낌을 말이다. 아마도 후배들을 보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젊음의 가치를 청년이 모른다고 한 것도 결국 자신이 바로 그 위치에 있기 때문이리라. 부족하지만 아직 순수하고 공부를 열심히 대하는 모습을, 내가 왔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후배에게서 보았다. 격려해주고 용기를 주고 싶다. 그 길이 힘듦을 알고, 앞으로 더 힘들 것임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좋을 때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문득 말을 걸어와 당신 인생을 굽이굽이 풀어내시는 낯선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노래가 내 인생의 일부와 결합되어 기억으로 남아있음을 이제 나도 느낀다. 나도 언젠가 이 노래를 듣고 내 자식에게 '이거 아빠 고등학교 기상송이었는데' 하지 않을까. 물론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오래된 그리움으로 그 노래들을 호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지금 바로 이렇게 '학생'이었던 적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기상송이 나오는 좁은 기숙사 방에서 눈 비비며 일어난 적이 있다는 것을. 나의 자식들도 아주 오래 뒤에 이렇게 깨달을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늙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저마다의 추억을 노래에, 사진에, 아니면 어떤 곳에 간직한 채로. 아주 많이 늙어도 슬프지 않을 것 같다. 늙는 게 이렇게 추억을 하나씩 주워 담는 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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