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첫눈이 오는 날
하늘이 희다
오늘 아침에는
겨울이 마구 떨어진다
내 마음 몰라주는 겨울이
허공을 헤매이며 나풀나풀 나린다
이른 첫눈이다
제 생각 한 번 해 보았다고
고집 많던 겨울이 달음질한다
다시 한번 떠나려고
겨울이 온다
- <겨울비>
어제 쓴 시다. 첫눈이 오면 무언가 글을 쓰겠다고 어제 아침에 다짐했었는데,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정말 첫눈이 왔다. 11월의 첫눈이란 아주 드물다. 대구에서 눈발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눈이 아예 오지 않은 겨울도 많았다. 그럼에도 눈이 와 준 것은 나름의 뜻이 있어서가 아닐까. 이렇게 글을 써보는 것도 바로 답해준 눈을 향한 답을 쓰는 까닭이다.
시간이 자꾸만 빨라진다. 조금 더 움직이고 아주 조금 더 배웠을 뿐인데 일 년이 지났다. 가을이 온 것을 낙엽더미가 무성할 때 알았고 겨울이 온 것을 첫눈이 왔을 때 알았다. 첫눈이 어제 오지 않았으면 나는 겨울이 가고서 겨울이 온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수능이 지났고 누군가는 365부터 하나씩 숫자를 빼기 시작했다. 나 분명히 고등학교 처음 올 때 수능은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3학년 선배들은 아득히 멀리서 신선놀음이나 하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이제 내가 고삼이 되려고 한다.
이렇게 시간이 계속 빨라지면 나중에는 어떻게 지금을 잡을 수 있을까. 나는 '카르페 디엠'이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그저 좋은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당연히 현재를 잡아야지, 그럼 언제를 붙들고 있겠나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요즘은 정말 현재를 잡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도 이렇게나 붙들기 어려운데, 앞으로는 시간을 잡아둘 수 있을까 하는 불안마저 생긴다.
2학년이 갓 되었을 때 나는 2학년이 정말 길 줄 알았다. 동아리 선배도 되어 보고, 대회에서도 작년보다 더 잘해보고, 이것저것 할 것도 많으니 이번 일 년은 길겠다고, 그래서 좀 힘들긴 하겠다고. 그런데 벌써 이곳에 서있다. 하나둘씩 무너지고, 누군가는 수시를 포기하고, 누군가는 아주 아주 열심히 공부를 하는 이곳에. 좋든 싫든 이제 학교를 떠날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이번 일 년은 저번보다 더 짧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요즘에는 가끔 절벽으로 달려가는 느낌이 든다. 절망적인 게 아니라, 무엇이 되었건 이 땅이 끝나는 지점에서 뛰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허공이 땅을 대신하면, 그때부터는 내가 가진 게 무엇이든지 날려고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밑으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위로 날아가든지. 내 비행기는 지금이 아니면 만들 수 없겠구나, 사실 이제까지의 학교는 내 비행기를 만드는 과정이었구나.
나는 지금까지 이 땅을 너무 천천히 걸어와서 앞으로도 계속 땅만 있을 줄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계속 서 있을 수 있는 이 땅이, 누군가 계속 나를 지탱해 주는 이 땅이. 그런데 이제야 절벽을 보았다. 저 멀리서 나를 맞이하는 절벽을. 어떻게든 뛰어야 하는 그 지점을. 아직 조금의 시간이 남았지만, 내가 걸어오던 이 땅을 나는 점점 뛰어가려고 한다. 시간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추락하면서 동력을 얻을 수도, 안전하게 날 수도 있지만 그전에 먼저 뛰어야 한다. 바닥 없는 허공 위로, 혼자서 뛰어야 한다. 그리고 한 번 날아오르면 이 단단한 땅 위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애써 부정하려고 했던 올해 겨울의 방문을 첫눈이 부드럽게 내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다음 겨울에는 바로 네가 뛰어야 한다고, 뛸 준비를 하자고 첫눈이 내게 말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제는 뛰어야 한다. 저 멀리 도사리는 절벽을 본 이상, 차라리 빨리 뛰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점점 빠르게 나를 떠미는 시간을 순풍으로 맞이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