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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석 Oct 30. 2018

소심한 나와 너를 위하여

수백 개로 쪼개진 학교 안의 춘추전국시대

국경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환영받지 못하고 내팽개쳐지고
도피하고 밤을 새워 울고
사랑받지 못한, 아니 사랑조차도 받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스스로 정한 선에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고
홀로 선 영주가 되어 사랑을 구걸하는
누군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곳에 있는 줄도 모를 그런 사람들은
그 작은 선 하나 넘지 못할 사람들인 것이다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 문을 여시오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 벽을 무너뜨리시오



  2018년 여름에 쓴 시다. 6월쯤이었는데, 유난히 더운 여름이어서 학교에서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으면 10분만 있어도 온 교실에 땀냄새가 가득 차는 계절이었다. 나는 6월만 되면 공부에 슬럼프가 오는데, 이상하게도 매년 6월 모의고사는 어떻게든 망칠뿐더러 이어지는 1학기 기말고사도 성과가 썩 좋지 않다. 아마도 굳은 결심으로 시작한 공부가 1학기를 버티며 점점 힘을 잃어가는 때문일 것이다. 6월은 고등학생에게 무지 덥다는 점 외에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달이다. 각자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대회와 동아리 활동에 동분서주한다. 이때쯤 되면 어떤 애가 외향적이고 또 어떤 애가 내향적인지, 취미는 뭔지, 친한 친구는 또 누구누구인지 의도하지 않아도 두리뭉실하게나마 알게 된다. 


  자라면서 몸으로 배운 점은 어디에서든 외향적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객관적으로 나은 형편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면들이 모두 같다고 했을 때. 아마도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리라. 결국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많이 사귄 사람이 성공한다. 그래서 거상 임상옥의 스승이 자기 제자에게 '장사란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외향적이라는 특성은 종종 리더십이나 사회성, 대인관계 등으로 바뀌어 일컬어지기도 한다. 반면 내향적이라는 특성은 소심함, 외골수, 배타적 등등의 말로 대신된다. 왜 상호 대립적인 이 두 특성이 긍정과 부정의 관계가 되었을까.


    어른들의 사회 못지않게 학생들의 조그만 사회는 치밀하게 작동한다. 학생이 주도하는 교육을 표방하는 학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줄 서기, 이권 빼앗기, 이간질, 아부 등등의 다양한 '권력' 다툼과 편 가르기가 학생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중요한 점은 이 미숙한 존재들 사이에는 타협과 원시안이 없다는 것이다. 한 번 틀어진 교우관계는 이 정신없는 모략 속에서 점점 원수지간이 되어가고, 무리에서 배척받기 시작하면 소위 말하는 '왕따'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기 힘들다. 


    비교적 학년이 낮을 때는 관계가 순진하고 단순한 관계, 즉 내가 좋아하는 아이와 싫어하는 아이로 양분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작동하는 이 권력의 원리를 점차 모든 아이들이 깨닫기 시작하면서 고등학교의 인간관계는 훨씬 복잡해지고 다양해진다. 내가 상을 받고 싶은 대회에 능력 있는 아이와 함께 나가기 위해 친해지기를 택하기도 하고, 학생회 진급이 더 잘 보장되는 선배와 친해지기 위해 다른 아이들과 은근히 경쟁하기도 한다. 편애하는 학생에게 상을 더 쉽게 주거나 추천서를 잘 써주시는 선생님이 있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런 학교 환경에서 내향적인 아이들이 불리하다는 사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대인관계에 능숙하지 못할수록 학생 사회에서 배척받기 쉽고, 아무도 영향력이 작은 학생과 가까이하며 얻을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주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점들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하면서,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불가피한 위계질서 문화에 익숙해지고 저항하지 않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향적인 학생들이 학창 시절 내내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다가 졸업하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다. 개개인이 가진 자질과 가능성을 생각해볼 때 능력 있는 학생이 단지 조용하고 소심하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하고 배척받는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이 길을 잃는 것인가. 성격은 존중받아야 할 것이지 가늠해야 할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안다.


    학생 사회의 고질적인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 개개인의 생각이 변화해야 한다. 인기 많은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는 나의 능력과 성품으로 꾸준히 발전할 때 비로소 주변에 사람이 모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삼국지에서도 '사람을 모으는 성품'이란 묘사가 변변찮은 인물에게 주어진 적이 없다. 


    우리의 벽을 허물자. 그리하여 몇몇의 제왕이 다스리는 천하보다는 차라리 잘게 잘게 쪼개진, 당당한 하나의 성인이 되어가기를 나는 모든 학생들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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