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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May 27. 2017

내 인생의 A컷

A컷이 되어버린 한 장의 사진

어디에라도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재워줄 방이 있다는 옛 친구의 말만 믿고 땅끝 해남까지 달려갔다.


금빛 남해바다와 진도대교의 야경, 

친구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다가 갓 떠주신 활어회까지 모든게 완벽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친구네 집 옥상에서 보았던 일출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위로 불덩이 같은 것이 불쑥 올라올때의 벅찬 감정.

그것은 도저히 잊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없을 아름다운 장면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나는,

화각과 구도, 카메라 설정 값을 여러 차례나 바꿔가며 쉴 새 없이 셔터질을 해댔다.

그리고 여행을 다 마친 후에 사진 작업을 하기 위하여 메모리를 꽂으면서도

나는 단연 그 일출 사진을 가장 기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메모리카드에 문제가 생겨 그날 찍은 사진 전부가 날아가 버렸다.

침착하게 복구프로그램을 돌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여러차례 시도 끝에 단 한장만을 살릴 수 있을 뿐이었다.


수 백장 이상의 사진이 모두 완벽하게 살아있었다면,

심혈을 기울여 A컷을 고르고, 보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살릴 수 있었던 사진은 단 한 장 뿐이었기에

그것은 그 자체로 A컷이 되어버렸다.

아니 그렇게 믿기로 했다.

수 백장, 수 천장의 사진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내가 결국 그 사진을 A컷으로 골랐을 것이라고 말이다.


.

.

.

.

.

.

채 30년도 안되는 짧은 세월을 살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비슷한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

인생은 태어나서(Birth) 죽을때까지(Death)의

수 많은 선택들(Choice)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살다보면 여지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무언가가 얼마나 많은가.


그때마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 애초에 주어지지 않은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면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내게 남아 있는 한 장의 사진이

날아가 버려 채 확인조차 못하고 지워진 다른 수백, 수천장의 사진보다

월등히 좋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앞에 무수히 주어진 길들을

삶의 A컷이라고 믿으며 산다.




해남, 2015. 12

그때 그 사진.


JACOBSPHOTOGRPA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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