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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Nov 07. 2017

거기, 우리가 있었다.

남자 둘이 떠난 가을 감성 충만한 춘천 여행.

 유럽을 전전하며(?) 1년간 나름 긴 여행을 마친 친구가 귀국했다. 독일에가서 직접 만나고 온 뒤로는 거의 11개월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 둘 다 심각한 여행병 환자여서, 그리고 어딜가든 카메라를 놓치 못하는 사람들이어서 우리는 자주 어디든 함께 떠나고는 했다. 그래서 1년만의 해후를 가진 장소도 자연스럽게 기차역이 되었다.


 긴 인사도 나눌 시간이 없이 우리는 바로 기차에 올랐다.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하고 정든 풍경이 나타났다.


 사실 2-3년전만 하더라도 춘천은 나에게 있어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당시 교제하던 사람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 월화수목금, 밤 아홉시까지 일을 마치고 나면 다음날 아침 일찍 기차에 올라 주말을 꽉채워 보내고 막차에 다시 몸을 싣고는 했다.


 당연히 안가본곳이 없고, 안먹어본 음식이 없고 거짓말을 조금 더 보태 눈감고도 갈 수 있는 곳이 춘천이었다.


 2년만이었다. 춘천에 다시 온게. 평생 다시 올일이 없을 것 같던. 오래살았다가 떠난, 옛 동네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단골이었던 남춘천역 우성닭갈비 맛은 여전했고, 그 옆에 줄지어 서있는 싸구려 모텔들도 하나 바뀐게 없었다. (지금은 IPTV가 끊기지 않고 잘 나오는지 모르겠다.)

 밥먹듯이 오던 춘천, 자연스레 이번 여행의 컨셉은 추억의 발자취를 천천히 따라가는 것이 되었다.


 공지천을 천천히 걸어보고, 의암호를 끼고 있는 갤러리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 잔 하고. 저녁에는 구봉산 전망대에 올라 지는 해를 말없이 바라 보았다.

 2년만에 찾은 이 곳은 변한게 거의 없었다. 변한건 나와 그 사람 뿐. 모든게 그 자리에 있었다.

 가을 감성 충만한 데이투어를 마치고, 늦은밤 남춘천역 뒤에 새로생긴 수제맥주집을 찾았다. 서울의 여느 술집 부럽지 않게 예쁜 곳에서 오랜만에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니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알코올이 몸에 여기저기 퍼지고 나니 고질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우연히라도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 그냥 만나서 인사라도 나누면 좋았겠다는, 딱 그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나야. 잘지내니. 오랜만에 친구랑 춘천으로 여행을 왔는데 괜찮으면 인사라도 하고 싶다."

  여느 찌질한 구남친들처럼, 나는 메세지를 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술자리를 다 파하고 잠들기 직전에서야 1이 사라졌지만, 예상했던대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정이 많고, 나쁘게 말하면 미련이 많은 나는, 늘 멈춘 계절에 갇혀지낸다. 한때 많이 그리워했던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많이 그리웠던 곳에 다녀 왔으니 그걸로 됐다.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소 춘천을 다시 편한 마음으로 찾을 수 있을것 같은 마음이 든다. 끝으로 이번 여행에서 담은 여행 사진 몇장을 남기며 이야기를 맺는다.






JACOBSPHOTOGRAPHY

춘천, 2017. 11. 06

instagram: @jacobsf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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