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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빠 Aug 19. 2019

Don't forget '93 - 상흔의 모스타르

아픈 역사를 간직한 희망의 도시

두브로브니크에서 2박 후 미리 예약한 렌트카로 스톤(Ston)을 경유하여 보스니아 '모스타르'로 이동한다.



참치샐러드와 '짜장밥'처럼 생긴 '먹물 리조또'
살짝 짜지만 푸짐했던 홍합 요리와 이곳 특산물인 생굴 요리
금강산도 식후경. 모스타르로 이동 중 스톤(Ston)에서 먹은 점심.
짜장밥처럼 생긴 '먹물 리조또'는 쌀이 조금 설 익은 듯한 식감이었지만 고소하고 든든한 '밥심'이었다.
'홍합 요리'는 살짝 짜긴 했으나 푸짐한 양과 신선함을 선사해 나쁘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 앉아 계시던 노부부는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 작은 마을에서 카라반을 끌고 이곳까지 오셨다고 했다. 그들이 맛있게 먹던 '생굴 요리'도 따라 시켜 먹었으나 익히 알던 맛과 크게 다르거나 특별하진 않았다.

노부부는 매년 아내와 단 둘이 카라반을 타고 유럽 일주 드라이브 여행을 다니신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한 모습으로 친구처럼 함께 여행 다니시던 두 분의 사랑스러운 노년의 여유가 부러웠다.
'카라반 유럽 일주 여행'은 우리 부부의 꿈이라고 하자, '한국에서 오려면 러시아 대륙을 횡단해야 해서 너무 멀다'고 하시며 활짝 웃으시던 노부부와의 유쾌한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국경 검문소

스톤에서 식사 후 얼마 달리지 않아 다다른 국경 검문소. 입국 심사가 까다롭지 않다. 조수석에서 아내가 미리 준비해 둔 여권만 제시하면 입국 도장 '꾸욱' 찍어 주고 통과~  

네레트바 강을 따라 모스타르로 향하던 중 화장실에 가기 위해 멈춘 곳이 계획에도 없던 포치텔(Počitelj)이었다.


모스타르로 이동하던 중 우연히 들린 포치텔(Počitelj)
모스타르로 이동하던 중 우연히 들린 포치텔(Počitelj)
포치텔(Pocitelj)은 중세 분위기의 오래된 마을로 언덕의 경사면에 전체가 석조로 지어져 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관광객이 붐비지 않아 여유있게 돌아 보았다. 주차는 마을 앞 빈 공터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네레트바 강의 맑고 시원한 물소리와 길거리에서 마을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 파는 체리 주스(단돈 1유로)의 상큼한 맛도 잊을 수 없다.  


모스타르, 첫 인상은 환대와 친절


두 달 전 예약한 모스타르 숙소에 도착, 주인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 주시며 주차 안내를 해 주셨다.

차에서 짐을 내리고 체크인을 위해 리셉션 들어섰다. 모스타르는 처음 방문한다고 하니 시원한 음료를 내어 주시며 무척 열정적으로 땀까지 흘리시며 모스타르와 보스니아 여행지를 소개해 주셨다. 주인 아저씨의 환대와 열정 가득한 친절함 때문일까 트립어드바이저 평점이 무려 9.8이나 되었던 곳이었다. 


숙소에 짐을 올려 두고 간단히 샤워 후 구시가지 구경에 나섰다.

전쟁(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곳곳에 아직 남아 있는 모스타르 모습

스타리 모스크가 있는 구시가지로 걸어가다 보니 건물 군데 군데 총탄의 흔적과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이 보였다. 회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한 '그라피티'가 작은 아파트 측면 벽 전체를 덮고 있는 건물도 보였다. 내전의 상흔이 남아 있는 거리 풍경과는 사뭇 달라 인상적이었다.

주요 명소인 '스타리 모스크'가 있는 구시가지로 들어서면 바닥이 온통 돌길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다녔는 지 돌들이 미끄러울 정도로 뺀질뺀질하다. 길 양 옆으로는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들이 빼곡하다.


모스타르 평화의 종탑과 성당
성당과 이슬람 사원이 공존하는 모스타르
[참고]
보스니아는 한반도의 약 25%에 해당하는 51,000km2의 영토에 약 380~390여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국가이다. 이 중 보스니아계(이슬람교)는 48%, 세르비아계(세르비아 정교)는 37%, 크로아티아계(가톨릭)는 14%로 복잡한 인구구성만큼이나 분쟁의 역사도 거칠고 길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예쁘지만 아픈 역사를 간직한 희망의 도시

자세히 봐야 예쁘다고 했던가? 하지만 보스니아는 자세히 알고 보면 아름답기만 한 여행지는 아니다. 동족 상잔의 아픔을 겪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분리∙독립∙내전의 슬픈 역사를 가진 유럽의 화약고이자 유럽의 킬링필드라고 불렸던 곳으로 아직도 실업률이 40%가 넘는 유럽의 최빈국 중 하나이다.


모스타르 거리를 걷다 보면 간혹 'give me one euro'라고 말하며 따라오는 유소년 아이들이 있는 가 하면, 갓난 아기를 품에 안고 거리에 앉아 구걸하는 여인네도 보였다.


다리 위 바닥에 늘어지게 누워 잠자는 강아지

다리 바닥에 늘어지게 누워 잠 자는 강아지. 너도 더위 먹었니? 아니면 먹은 게 없어 뻗은거니? 개팔자가 상팔자. 많은 사람들이 찝쩍대며 지나가도 꿈쩍하지 않던 녀석이 어느새 찔래찔래 따라와 몸을 비벼댄다. 난 뭐 줄 것도 없는데~


다이빙하기 위해 다리 난간 위에 오른 현지인

종종 이곳 다리 난간 위에서 강 아래로 다이빙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바로 눈 앞에서 순식간에 다리 아래로 뛰어 내려 멋지게 다이빙하는 모습을 담지는 못해 아쉬었다.(다리 아래에 있었다면 다이빙하는 모습을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을 듯...)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네레트바 강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반대편 네레트바 강
여행객들로 붐비는 '스타리 모스크'
스타리 모스크에서 내려다 본 네레트바 강
다리 주변, 강을 따라 자리 잡은 음식점들

유유히 흐르는 네레트바 강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식사를 즐기는 모습만 보자면 내전으로 총탄이 날아 다니고 수 많은 사람들이 피 흘렸던 곳이라는 게 감히 상상되질 않는다.

스타리 모스크 다리 아래
아래에서 올려다 본 '스타리 모스크'

1박 후 조식 전 이른 아침 시간, 모스타르 산책에 나섰다. 강물은 고요하게 흐른다. 전날 여행객들로 붐비던 활기찬 모습과 달리 차분하고 조용하다. 돌(석재)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많다 보니 차가운 느낌마저 든다.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열자마자 방문한 우리에게 히잡을 쓰고 수줍게 인사하던 점원은 우리가 관심을 보이자 한땀 한땀 손으로 떠서 만든 Hand Made 제품이라며 판매에 열을 올린다. 기념품으로 쿠션보 2개를 샀다.수제 쿠션보를 기념품으로 샀다. 2개에 우리 돈으로 약 1만 4천원. 이곳 물가가 싸긴 싸다.


형형색색의 천연꿀들과 과일주

규모가 크진 않지만 이른 아침부터 시장도 열렸다. 각종 과일과 식음료, 의류, 기념품들을 팔았다.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천연꿀과 과일주가 눈길을 끌었다. 



Don't Forget '93

차분히 마을을 둘러 보고 싶다면 여행객이 붐비는 낮시간 보다 이른 아침 시간을 추천한다.

숙박비와 음식값 등은 두브로브니크에 비해 1/2 그 이상으로 물가가 아주 샀다. 돌(석재)로 지어진 건축물이 많았고 사람들은 친절하였다. 낯선 이방인에게 수줍게 웃으며 기념품을 소개하던 점원과 땀까지 흘리며 열정적으로 보스니아 여행지를 소개해 주시던 숙소 주인 아저씨의 친절함 속에서 '희망'을 엿 보았다.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겪은 후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우리나라처럼 언젠가 '보스니아'도 내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보다 풍요로운 나라로 발전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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