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벤처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은?
새해를 맞아 페미뽕이 차올랐다. 올 해는 작년보다 더 확실하고 강렬하게 뭔가를 해보겠어,라고 스스로 다짐했고, 그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해외의 페미니즘 관련 프로젝트들의 인스타 계정과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한 것이다... 음?(뭔가 하기 전에 정보를 모으는 사람). 글자 기반의 트위터와 이미지 기반의 인스타그램은 그 활용 방법이 확연히 달랐고, 몇몇은 인스타그램을 더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이제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야 해'라는 얘길 들었지만, 그걸 활용해서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조직이나 제품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들의 인스타 활용법이 인상적이었다. 나이키나 반스걸즈처럼 제품을 라이프스타일에 접목시켜 보여주는 계정들도 있긴 한데 라이프스타일을 넘어 캠페인이나 무브먼트로 가져가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팔로우한 계정 중에 Girl boss나 Ladies get paid, WW club이 잘하고(활발히 이용하고,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뜻) 있다. All womankind도 열심히 팔로우한 덕분에 우먼스 마치하는 날 새벽에 캐나다에 있는 동생에게 부탁해 한정판 포스터를 받는 기회도 얻었다(액자 할 것임/잘하고 있다는 뜻... 음?). 오늘은 그중에 가장 인상적으로 인스타를 하는, 더 정확히는 인스타라이브/스토리를 하는 'the wing'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한다.
'더 윙'은 뉴욕에 있는 여성전용 코워킹 스페이스다. 신문에서 읽고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리서치를 하면서 멋질 뿐만 아니라 너무 잘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머지않은 미래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졌다. 코워킹 스페이스를 제공하고, 여성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다. 아래는 홈페이지.
1. The Space
현재 플랫아이언점과 소호 점 두 개가 있고 올해 안에 두 개의 지점이 더 생길 예정이다. 수유실과 샤워시설, 메이크업 룸 등 각종 시설을 다 이용할 수 있고, The wing 안에서 열리는 각종 이벤트 참여가 무료다. 음료와 음식도 제공된다는데 멤버십 비용으로 이 모든 걸 다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스태프들도 많은데 자금은 어디서 오는 것이야?!?!??!
2. Happenings
크게 코워킹 스페이스 제공 + 커뮤니티 형성, 이렇게 두 개의 일을 하고 있는데 코워킹 스페이스 운영보다 커뮤니티 형성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거의 매일, 여성들을 위한 포럼이나 강연, 커뮤니티 파티가 열린다. 배니티페어의 전 편집장과 현 편집장이 함께 강연을 하거나 DVF 수석디자이너가 일과 페미니즘에 대해 말한다. "Entrepren-hers", "Hack-Hers" 등 특정 분야에 타깃 한 주제로 모임이 열리기도 하고(저렇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 부분도 짱됨), '웰 리드 블랙 걸'처럼 파트너가 주관하는 독서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MA&POP-UP SHOP 같이 지역 여성 기업가들이 만든 물건을 파는 장터를 열기도. 아침 커피 모임, 점심 직군별 모임, 오피스 아워 등 일만 하는 공간으로 남겨두지 않고 모이고 이야기 나누고 영감을 얻어 그걸 일에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준다. 나는 이것이 The Wing의 존재 이유이자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만들어지는 커뮤니티를 통해 여성들은 더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이고, 포럼이나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이런 공간의 존재만으로도 임파워링 될 것이다. 내가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이유, 더 잘하고 싶은 이유가 무시되지 않고, 존중받는 안전한 공간. 그리고 그 기회가 만들어지는 곳. 멋지다.
+ 커뮤니티 매니저와 프로그램 매니저들이 할 일이 많겠고, 그래서 관련된 인력도 많다.
3. No Man's Land & SHOP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이 여기 있다. The Wing은 <No Man's Land>라는 자체 잡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자기 브랜드의 굿즈를 판다. 작년에 코워킹 스페이스 관련한 콘텐츠에 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책을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했었다. 잡지의 형태를 띤, 그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 100명의 이야기. 사실 어떤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 일을 지금 하고 있는 사람만큼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면, 그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 일하는 이유, 그리고 하는 일에 대한 노하우만 물어서 책으로 엮어도 굉장한 브랜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자체로 그 공간의 애뉴얼리포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한데, The Wing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잡지를 만든다. 잡지를 볼 수는 없어서 필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The Wing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어도 좋고, 또 아니어도 아닌 대로 좋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이를 통해 자신들이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자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기록해 나가는 곳이라는 전문성과 브랜드를 확보한다. 아 너무 멋있고.
또 누구보다 굿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굿즈 산업 흥했으면 좋겠다. 일반 제품과 달리 굿즈는 캠페인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그래서 다른 제품들보다 굿즈 자체가 가진 내러티브가 확실하다. 퀄리티 있는 굿즈를 만들어서 합리적인 가격에 팔면, 공급자는 그걸로 캠페인/브랜딩 해서 좋고, 사용자는 이야기에 동참했다는 뿌듯함과 양질의 제품을 사용할 수 있어 좋다. The Wing은 온갖 굿즈를 만들었는데, 나도 이런 거 만들어 보고 싶다. 심지어 손톱 파일도 있어ㅠ_ㅠ
+ 조만간 미국에 가실 분이 있다면 잡지와 굿즈 구매대행을 부탁드린다.
The wing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17만 8천 명. 페이스북 페이지(6천 명)의 3배 정도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요 소통은 인스타그램으로 하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the.wing/
1. 인스타 라이브/스토리 활용 : 우리가 '지금' 뭐하는지 보여줄게
매일 The Wing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스타 스토리를 통해 볼 수 있다. 강연 현장이나 짧은 커피 브레이크 현장들이 실시간으로 인스타 스토리에 올라온다. 24시간 이후에는 볼 수 없는 인스턴트 콘텐츠이기 때문에 아카이브의 기능은 전혀 없고 단지 '현장의 분위기를 팔로워들과 공유'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순간들이 있지 않은지. 현장을 쓱 찍은 걸 절대 아카이브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너무 존경. 아카이브 사이트가 아닌 이상,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에게 아카이브란 정돈된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이지 raw data 그 자체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안 되는 곳이 많으며...(먼산) 이 얘기는 다음에 좀 길게 하기로.
덕분에 나는 지난주 내내 The Wing에서 진행된 행사를 보고, 현장의 분위기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지난 한 주간 뉴욕에 더 가고 싶어 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를 전하며 자신들의 공간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일하고 싶은 공간으로 매력을 어필하는데 인스타그램이 적절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오늘 있었던 Women's March를 예고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인스타스토리에 그대로 담았는데, '내 정치적 소신을 말하고 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서 공간을 어필하기에 굉장히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같이 피켓을 만들고 The Wing에서 특별히 제공한 핑크색 모자를 쓰고 함께 거리로 나갔다. 보면서 부러웠고, 또 우리나라에 이런 행동에 자유로운 코워킹 스페이스가 존재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단순한 업무뿐만이 아니라 존재와 삶까지도 지지하는 곳으로써의 일터. 그것을 해내고 또 알리면서 보는 이들에게 호감을 주고, 때로는 누군가(나)에게 영감을 주는 일도 하고 있다.
2. '좋아요'가 저절로 눌리는 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연대 만들기
하루에 두 개 정도의 게시물이 올라오는데 운영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너무 웃기다. 공감 가는 짤을 올리고 거기에 핵심적인 문장을 쓱 곁들여서 올리는데 '좋아요'가 막 12,000개씩 눌려.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는 짤들이 대부분이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해결해나가고자 한다는 것을 어필한다. 뿐만 아니라 직접 행동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번주에는 DACA 법안을 지키기 위해 팔로워들이 행동할 것을 요청했다. 인상적인 것은 '동참하고 싶은데 혹시 전화해서 뭐라고 해야 해?'라는 답에 스크립트를 제공한 것. 자체적으로 캠페인 플랫폼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행동을 촉구하고, 그것을 혼자 하지 않도록 하며,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역할. 얼마 전 <Unrest> 홈페이지를 보면서도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치 플랫폼이나 전문 활동가들만 캠페인을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 오히려 전문 캠페이너들보다 대중들에 대한 접근성이 높고 행동을 끌어내기 쉬워지는 시대인 것 같다. 그런 시대의 흐름을 십분 받아들여할 일 하고 있는 The Wing의 인스타그램이랄까.
3. 이 외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과학자나 수학자, 유명 여성 정치인들의 사진을 게시하고 업적을 기록한다든지, The Wing의 협력사들에서 열리는 행사를 소개하는 등의 용도로 인스타그램을 쓰고 있다. 인스타스토리의 모든 기능을 다 이용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인데, 웹페이지를 바로 연결한다거나 인스타스토리 스티커와 글씨 쓰기 기능을 이용해서 사진을 예쁘게 꾸며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메모해두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모든 조직이 인스타그램을 사용해서 소통할 수는 없다. 완전 이미지 기반의 채널이기 때문에 보여줄 것이 많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광고성 메시지가 난무하는 사이에서 광고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야 본전 치기를 할 수 있을 것. 하지만 뚜렷한 취향이나 방향을 가지고 있고, 2030을 겨냥해 팬을 만들고 싶은 조직이나 무브먼트라면 시작해 볼 만 한 것 같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된 소셜벤처는 그 자체로 무브먼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변화를 위해 고객들의 행동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조직의 비전을 이루어 나간다. 이 무브먼트가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제대로 된 프로덕트도 중요하지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어떤 일인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나가고 있는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기업의 정보와 성과를 외부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캠페인의 역할도 함께 해야 한다. 팔로워들이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그것을 해결함에 있어서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메시지. 하지만 대부분의 소셜벤처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에 시간을 들일 여력이 없고, 인력도 없다. 마음은 있는데 지금 당장의 목표 달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제일 먼저 제해지는 영역이다. 담당자로서 안타깝기도 하고, 또 이 역시 변화해야 할 부분이라면 나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요즘의 고민이다.
The Wing이나 Ladies Get Paid처럼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콘텐츠/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캠페인으로 엮어가는 조직들을 보면 신난다. 배울 점이 많기도 하고. 늘 그렇지만, 뭐라고 시작해보고 싶어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