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 2기를 열며
내 주변에 일 잘하는 기획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강사들은 다 남자일까?
2017년 5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창 콘퍼런스 및 포럼 연사들의 남녀 성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이기도 했는데, 대학생들을 위한 페스티벌의 '멘토'들도 모두 남자인 것을 보고 생각이 더 커졌던 것이죠. 물론 멘토는 성별을 떠나 개인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모든 멘토가 남자인 '구조' 속에서 영감을 받은 여성이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을까요? 그 구조 속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 만나는 질문에 누구나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20대에 내 진로나 일에 대해 궁금하던 순간, 강단에 서거나 콘퍼런스에 올라오는 선배들이 모두 남성이었던 것, 그리고 소개받은 여성들은 나보다 20년을 앞서가고 있는 여성 대표이거나 교수님들이었던 것도 역시 떠올랐습니다. 만나면서 가슴 뛰었지만, 그게 곧 내게 다가올 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돌아오는 길에 조금 헛헛하고 외로웠던 마음도요.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특히 기획자로서의 일을 궁금해하는 20대 중반 여성들이 자신보다 한 발자국 앞서 가고 있는 기획자들을 만나 대화하고, 동료를 만나 자신의 일과 삶을 기획해보는 학교.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는 이런 질문과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기획자였기 때문에 기획자인 주변의 일잘러들과 빨리 시작해볼 수 있었다는 것도 기획자학교가 시작되는 것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얼른 한 번 해보자'는 말로 시작된 학교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간단한 기획안으로 정리해서 주변 친구들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달꽃창작소의 흙쌤이 '대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예산을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시작해보자'라고 제안해주셨고, 그렇게 1기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 10월 12일부터 10월 30일까지 총 6회 차로 진행된 기획자학교에는 4명의 강사와 12명의 예비 기획자들이 참여했습니다. 3주 간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후암동 달꽃창작소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넓히는 워크숍을 했죠. 기획 예산을 세워보기도, 기획자학교 홈페이지의 와이어프레임을 짜보기도 했어요.
1기 수업이 끝나고 1기 수강생 중 몇몇은 획기적인 여자들이라는 기획자 그룹을 만들어서 후속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획기적인 여자들'은 수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네트워크하고 단단한 지지기반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예가 되어 2기를 기획하는데 참조점이 되었어요. 이렇게 초기 기획은 강사들과 참여자들에게 또 영감을 받고 살을 붙이며 더 나아간 기획이 됩니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더 용기 있는 기획을 하게 만들고자 하는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의 취지와도 맞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외로운'의 반대말은 '대담한'이 아닐까?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는 나만의 기획을 해보고 싶은 여성들이 이미 기획을 업으로 하고 있는 여성 기획자들을 만나 ‘기획자'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자신만의 기획을 해보는 교육 및 네트워크 프로그램입니다. 참여자들은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에서 앞으로 일과 삶을 함께 기획해나갈 동료들을 만납니다. 또 한 발 앞서가고 있는 선배들과 대화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던 '머리 속 기획'이 '실행 가능한 기획안'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걸 한 번 해보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는 여성들이 서로의 삶과 일의 참조 점이 되고 동료가 되어 일하는 여성이자 여성 기획자로서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합니다. 또한 이들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획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한 정규 교육프로그램과 네트워크 파티, 데모데이 등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의 영어 이름은 School of Bold Planners입니다. 학교의 로고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담당자가 저에게 했던 질문,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의 슬로건이 있으면 좋겠어요. 영어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요?"에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처음엔 '외롭지 않은'을 한 단어로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난감했습니다. '외롭지 않은'이라는 단어가 not lonely를 뜻하기만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외롭지 않으면 뭐가 좋지, 생각하다가 외롭지 않으면 용감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혼자 있지 않다는 감각은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혼자라면 절대 못했을 결정'을 해 본 순간과 '혼자라면 하지 않았을 시작'들이 떠오르면서 '외롭지 않은'은 '용감한/대담한'과 동의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는 '외롭지 않은 혼자'라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일은, 그리고 리더로서, 기획자로서의 일은 결국 혼자 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혼자 무언가를 해나가고 결정할 때, 이것을 상의하고 지지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이거 정말 별로야'라고 피드백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렇지 않을 때와는 다른 결정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외롭지 않은 감각을 가진 혼자, 그 기획자가 해나갈 대담한 기획을 기대하며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는 제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외롭지 않은 기획자들의
대담한 기획이 시작됩니다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2기는 5월 14일부터 3주 동안 진행됩니다. 이번에도 4명의 강사들, 12명의 예비 기획자들이 함께합니다. 1기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커리큘럼과 과정을 가지고 또 신나는 3주를 보내려고 합니다. 4명의 강사진이 기획자학교에서 풀어놓을 이야기들은 어떤 내용일지, 12명의 예비 기획자들이 가지고 올 이야기들은 또 어떨지 기대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2기는 아모레퍼시픽과 용산마을센터에서 함께 해주셔서 더 든든한 마음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여름이 시작되는 5월,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가 내딛을 또 다른 한 발을 응원해주세요. 그 응원을 등에 업고, 외롭지 않은 혼자들이 되어, 함께 성큼성큼 걷겠습니다.
by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 책임기획자 홍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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