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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01. 2018

문장을 먼저 떠올리는 기획자

요점정리 : 2기 4강 with 백희원(BIYN)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의 네 번째 수업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회원인 백희원님이 오셨습니다. '문장을 먼저 떠올리는 기획자'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의에서는 기획이 시작되는 지점과 그것을 끌고 가는 각자만의 방식을 찾아볼 것을 제안해주셨습니다. 일하는 사람에게 사이드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얘기해주셔서 딴짓을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기도 했답니다. 처음으로 조를 나누어 진행한 워크숍 덕분에 강의실의 온도도 조금 올라갔던 강의, 현장을 정리해봅니다.


본 포스트는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 기획팀이 재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BIYN의 회원이자, 희망제작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백희원입니다. 처음 섭외 메일을 받고 어떤 이야기를 해드릴까 하다가 기획자로서의 노하우를 전달하거나 기획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는 ‘나는 어떤 스타일의 기획자일까'를 생각해볼 수 있게끔 하는 질문을 던져야겠다고 생각하고 강의와 워크숍을 준비했습니다. 강의 제목처럼 저는 하나의 ‘문장'을 먼저 떠올리면서 기획을 시작하게 되는데 여러분은 무엇에서 기획을 시작하는 사람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 얘기를 들으며 공감과 차이를 느끼실 거예요. 그런 마음의 지점들을 잘 찍어놓으셨다가 본인에 대해 명료하게 알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다양한 일을 하는 지금의 나는 
20대의 나를 통해 만들어졌다


저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먼저, 사람들에게 어떤 사회적 이슈를 효과적으로 전할 만한 뛰어난 기획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하는 일은 BIYN 일이에요. 대신 좀 느슨한 리듬으로 일하게 되죠. 고민도 오래 하고요. 반면 희망제작소는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완결에 대한 책임감은 더 높아요. 이 두 가지 외에도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서 좀 더 책임감을 덜어내고 재미있는 일들을 시도해 보고 있어요. 


잘 해내고 싶은 것, 돈을 벌면서 책임감 있게 하는 것, 재밌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


이 3가지의 영역을 잘 굴리면서 일을 해요. 각 영역이 어떤 업무에서 겹치기도 하고, 또 서로에게 실험적 영역이 되기도 하고, 서로에게 회고할 수 있는 공간이 돼요. 이 사이클을 통해서 저는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감각을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예를 들면, 회사에서는 너무 급진적인 일을 바로 시도해 볼 수 없어 BIYN이나 친구들과 하는 모임에서 먼저 시도해봐요. 만약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그것을 다듬어 다시 회사로 가지고와 도전해보는 식이죠. 반면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일들을 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거기서 얻은 인사이트를 다른 일을 하면서 적용하기도 해요. 30대 기획자로서 저의 삶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이런 일과 저런 일을 동시에 하며 일의 정의를 다양하게 내리게 된 건 20대 때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먹고사는 일에 대한 대책이 없는 20대를 보냈고, 감성적인 자극을 극도로 즐기는, 나름대로는 시간 없는 삶을 살았어요. 그러다 황급히 졸업을 했죠. 느긋해 보였는지 주변에선 저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는 노동시장에서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늘 있었죠. 유일하게 자신 있는 것은 글쓰기와 말하기였는데 이걸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노동시장에서 찾으려고 하다 보니 기자나 작가, MC, 라디오 진행자 같은 직업들 뿐이었거든요. 그때 저는 이게 되게 대단한 직업이라고 느껴졌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요. 글쓰기와 말하기가 일반적인 일에서도 중요한 활동이라는 걸 몰랐던 거죠.


그러던 차에 기본소득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라는 지인의 추천을 받았고, 포트폴리오를 쌓을 생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어요. 기본소득이란 모든 사람에게 생활에 필요한 일정 금액의 돈을 사회가 제공하는 것을 말해요. 처음에는 공감을 못하고 있었는데, 활동하고 공부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기본소득을 주면 안 되지?”


대부분 이 세계는 서로 먹고 먹히는 정글이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제게는 각자가 자기의 모양대로 자라는 것이 더 효율적인 생태계, 식물이 울창한 숲이 먼저 떠오르거든요. 그럼 그 식물들이 각자의 모양대로 잘 자라도록 기본적인 자양분을 주면 좋을 텐데 주는 것이 왜 안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제 머릿속에 떠오른 심상을 날 것 그대로 털어놓는 것으로는 사회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때부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상상하기 위한 기획이 시작되었어요. 


질문과 문장에서 시작된 기획들


제가 한 기획들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기획이 시작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얘기해보려고 해요.

 

00그라운드


“선순환의 경로를 만들자. 개인은 공공에 기여하고, 공공은 개인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기반을 보장하는 순환, 우리는 그 흐름을 개인의 회복에서부터 틔워 보자고 제안한다.”


기본소득을 바로 얘기하는 것은 언제나 막막한 일입니다. 활동을 시작했던 2012년엔 더더욱 말도 안 된다고 아무도 안 들어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본소득보다 기본소득이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보여주는 자리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공공성이 무너졌다’는 사회적 진단이 많이 들렸었는데, BIYN은 공공성에 대해 제대로 논하려면 추상적인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개인들 각자가 처한 사회적 조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여기서 기본소득을 모르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공공성을 회복시키려면 그 안의 개인들이 먼저 바로 서야 한다' 이 문장에서부터 기획이 시작되었어요. 이 논리를 사람들에게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죠.


문장을 떠올립니다. 

타임라인과 연사를 기획합니다.

선언문, 인터뷰, 강의 등으로 분화시킵니다. 


이건 저의 첫 기획이었는데요, 그래서 경험이 적었어요. 한 마디로 연사 섭외 메일을 써본 적이 없었죠. 그래서 초대하고 싶은 연사의 강연을 찾아가서 듣고, 책에 사인을 받으며 얼굴을 마주 대하고 섭외를 했어요. 그리고 긴 기획안과 메일을 적어 보냈죠. 연사의 작업을 인용하며 이 자리에 와야 하는 이유를 썼어요. 다행히 섭외가 되었습니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확신이 없었는데, 이때 저를 밀어준 것은 논리적 구조의 완결성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을 어떤 모양으로 앉혀서, 어떤 정보들을 사전에 전하고, 당일 대담을 어떻게 설계하면 청중들이 우리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경험할 수 있을까, 글 한편을 완성하듯이 질문에 논리적으로 대답을 채워나갔어요. 누군가 여기에 와야 할 필연성이 기획자인 저에게 있었고, 그 필연성을 믿고,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구조가 있다는 든든함 덕분에 끝까지 할 수 있었죠. 같이 고민하고 먼저 설득시켜야 할 동료들도 있었고요.


경험이 없는데 시작해도 될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경험이 있어야만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면 세상에 시작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경험 말고,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완결성 있는 구조를 잘 설계한다면 처음이지만 해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돼요.


관객들


같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듭니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고 포스팅합니다. 


첫 번째 기획 이전에 함께 영화를 보는 모임을 친구랑 만든 적이 있어요. 옥상, 카페, 세미나룸 등등 여건이 되는대로 공간을 빌려서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모임의 전부였어요.  구조나 계획이 없어서 엄밀히 말해서 기획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요, 하지만 완전히 열린 대화모임을 수 차례 진행하면서 임의적인 상황 속에서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감각을 익혔어요. 제가 향후에 기획자로서 어떤 자리를 진행할 때의 감을 키워주었죠. 어떤 상황에든 유연하게 대화의 의미를 포착하고 이어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어요. 이게 00그라운드를 진행할 때 큰 도움이 되었고요. 아까 글 쓰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렇게 내가 유능감을 느끼는 부분을 이용해서 작은 기획을 하고 이를 발휘하면, 더 큰 기획에서 이걸 적용할 수 있어요. 



시니어 드림 페스티벌


“청년과 시니어가 수평적인 공간에서 동료 시민으로서 만난다면?”


저는 기본소득을 주제로 일종의 청년운동을 하던 사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 들어가서 첫 번째로 맡은 사업의 주제가 시니어였어요. 생소한 분야였지만, 이 경험은 전에 비해 큰 예산을 장기간 굴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어요. 회사의 일은 개인의 규모를 넘어서는데, 이걸 해내는 경험이 중요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룰 수 있는 규모가 커진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시니어드림페스티벌은 청년이랑 시니어가 한 팀이 되어 공모전을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시니어가 주가 되고 청년이 보조가 되어 시니어의 꿈을 이뤄주는 페스티벌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근데 저는 경쟁적인 공모전을 하고 주체의 주와 부가 나뉘어 있는 행사를 하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의 질문을 정리해봤죠. 따져보니까 청년과 시니어는 학교나 직장, 집에서 만나는데, 이 공간들이 수직적인 관계가 기본이 되는 공간인 거예요. 사회가 이상한 구조로 조직되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청년과 시니어가 동등한 관계로 만난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어요. 이게 우리 사회가 가야 하는 방향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죠. 

기존의 행사를 나의 언어(질문)로 재 정렬하고 나니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어요. 행사를 과정 중심적으로 바꾸었고, 경쟁이 주가 되는 구조를 학습이 주가 되는 구조로 만들었어요. 같이 만나서 결과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베이스로 학습을 하는 거죠. 이 과정에서 목표점이 달라져도 상관없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모전이라는 형식을 페어로 바꾸게 되었어요. 단순하게 나와서 발표하고 심사를 받는 게 아니라 체험하고 전시를 하는 등등의 공간을 설계해서 시민들에게 프로젝트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다양화시켰어요. 전과는 다른 형태의 프로젝트가 되었어요. 

이 모든 과정은 시작을 가능케 한 처음 문장, ‘청년과 시니어가 동등한 관계로 만난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이 문장은 기획의 나침반이 되어주었어요. 이 기획을 통해서 ‘나는 메시지가 있으면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파일드 - 타임라인 어드벤처


‘파일드-타임라인’은 우리가 겪었던 역사적 사건을 아카이브 하는 온라인 그룹을 만들고, 2016년 한 해동안 나에게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는 프로젝트였어요. 10개월 동안 아카이빙 한 후에 그것을 기반으로 행사를 열었어요. 


여러 기획자/예술가들이 모여서 한 협업이었는데 기획과 실무의 중심이었던 신인아 디자이너 말고는 친분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참여한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는 퀄리티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이 프로젝트 덕분에 여러 사람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획하는 과정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어요. 사전에 대화를 준비하는 기획자와 그렇지 않은 기획자, 머리와 손이 붙어있는 기획자(기획과 실행이 붙어 있는 기획자), 계획되지 않은 것이 튀어나오는 것이 싫어서 대본을 만드는 기획자 등 자기만의 색깔과 시작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만난 거죠. 저와 다른 기획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방식이 가진 강점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자꾸 강조하게 되지만,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는 내 스타일이나 강점을 마음껏 발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돼요. 망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성공의 기준을 내가 세울 수 있거든요. 회사는 그런 것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기 때문에 좀 어려운 면이 있어요. 그래서 가능하시다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시길 권해요.



내가 그린 기본소득 기린 그림


이건 BIYN에서 최근에 하고 있는 프로젝트예요. 그동안에는 기획안을 쓰고, 전달할 메시지를 딱 정해서 설득하는 기획을 했는데, 이 기획은 조금 달라요. 어떤 이유이든지(그냥 재미로 오든지, 기본소득이 궁금하든지) 우리가 마련한 공간에 온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본소득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획을 설계했어요. 참가자가 와서 재미를 느끼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했고, 설득을 위한 특정한 메시지가 없는 경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생각해 본 이야기들을 수집하면 어떨까?”

이 문장이 이 기획의 시작이 되었고,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하게 되었죠. 재미있게 자기 얘기를 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 가는 거예요. 재미도 있고, 효과성도 높다고 자체 평가를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참가자 만족도도 긍정적입니다.


기획이라는 것이 나에게 뭘까?


제가 기획의 영원한 덫이라고 부르는 순환고리예요. 끝내려고 하지만 계속 기획이 시작되죠. 특히 처음엔 구현된 것이 붕괴되었을 때 심각한 멘붕에 빠졌는데, 요즘엔 붕괴가 된 지점에서 인사이트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침착해졌어요. 


강의를 준비하면서 기획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봤어요. 보니까 꾀할 기에 그을 획이더라고요. 


저는 20대에 많은 것을 받아들였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꾀할지는 몰랐던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기본소득]이라는 키워드가 삶에 우연히 주어지고 제가 설명해내야 할 것이 되면서 새로운 삶과 일에 대한 기준점이 되었어요. 이 점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제가 받아들인 것들을 꿰어볼 수 있는 선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무언가를 그을 수 있게 되었어요. 강도와 모양은 다르지만, 제 안의 것들을 꿰어보면서 저만의 선을 그어나가고 있어요. 


저는 지금의 제가 이도 저도 아닌 20대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꿸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그때 마련했거든요. 뻔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도 저도 아닐 수 있는 상태, 헤맬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충분히 헤매면서 깊이 흡수시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강연 후에는 최근에 본 좋은 기획을 가지고 와서 '내가 이 기획을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할까'를 고민하는 워크숍을 했습니다. 세 가지 질문을 바탕으로 조별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Question & Comment


1. 시니어 드림 페스티벌 과정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게끔 하셨다는데, 그럼 그 이후 행사의 KPI는 어떻게 달성하셨나요?


핵심지표가 그렇게 달성하기 어려운 건 아니었어요. 후원사와 합의된 내용은 30명의 참가자가 6개의 프로젝트를 해내는 것이었거든요. 저는 공익사업에서 애초에 취지를 해치면서 달성해야만 하는 무리한 목표는 설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표를 높게 잡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초반에 내 기획의 규모를 파악하고, 구성원들이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을 제대로 예측하는 것이 일을 제대로 하는 거죠. 안될 것 같은 부분은 안된다고 인정하고 파트너들과 그 부분을 공유하고 이해를 맞추는 것도 중요해요.  


2. 문장이 붕괴되었을 때 멘탈이 같이 붕괴되지는 않으셨나요?


항상 그렇습니다. (웃음) 기대를 너무 높이 하지 않는 게 저의 방어기제인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문장이 있었기 때문에 붕괴된 결과도 나올 수 있었다는 거예요. 오히려 이 붕괴된 결과와 과정을 재밌게 받아들여요. 새로운 의미도 얻게 되고요. 저는 기획의도와 다른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시작조차 못하게 되는 상태가 더 안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끝을 내면 끝을 냈다는 사실 자체를 기특해하는 편입니다.   


3. 일 기획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저는 자기 자신을 되게 의심하는 편이에요.(웃음) 저 자신을 의심하면서 일단 시작을 하고, 끝까지 가게끔 내버려 둡니다. 오늘도 강의를 하면서 이게 정말 이분들에게 의미 있는 내용이 될 수 있을까? 그냥 기획안 쓰는 방법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그건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문제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의심하면서도 일이 굴러가도록 해요.


4. 좋은 문장을 떠올리기 위해 평소 내 몸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저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인데요. 평소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있는 영역을 만들기 까지가 오래 걸리지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쌓인다고 생각해요. 저는 주변 사람들이랑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문장이 붕괴되더라도 여기서 받은 인사이트가 언젠가는 다른 기획으로 연결될 것이다, 라는 생각도 하고요.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것은 준비가 아니라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문장을 떠올린다'는 것은 이게 최고의 방법이라서 알려드린 것이 아니라 제 기획 스타일이기 때문에 사례로 설명한 거예요. 기획의 실마리는 각자에게 다르니 각자의 준비 방법도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5. 희망제작소, BIYN 등 다양한 일을 하시는데, 힘들거나 지치지는 않으신가요?


네, 힘들거나 지칩니다. 잠을 더 자고 싶어요. 이것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엄청 잘하려고 하지 않아요. 못하겠으면 못한 채로 둬요. 예전에는 눈에 띄게 잘해서 인정받고도 싶었는데 요즘에는 못하겠으면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일을 잘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저도 모르게 지칠 때여서 최대한 민감하게 저를 살피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리고 일주일에 몇 시간은 쉰다, 는 식으로 장치를 만드려고 노력합니다. 또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팀에 있기 때문에 일을 적절히 흘려보낼 수 있거든요. 그러니 평소에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6. 기본소득이라는 멀어 보이는 의제를 가지고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기본소득을 왜 지지하는가, 라는 글을 쓸 일이 있었어요. 멀었기 때문에 활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멀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간이 있거든요. 기본소득이 도입될까지 우리가 이 사회에 대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이 주제를 경유해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요즘엔 기본소득이 내일 당장이라도 도입해야 할 멀지 않은 의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해보려고요. 그리고 계속 활동하는 이유는 저도 늙었기 때문이에요.(웃음) 미래세대를 위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게 생기고 있어요. 이것도 동력이죠.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 2기 다섯 번째 시간은 PUBLY의 박소리님과 함께 합니다. "업무의 8할이 메일 작성인 기획자"라는 제목으로 진행될 다섯 번째 강의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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