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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21. 2018

내 감각을 믿어보기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

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에코백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무작정 동대문에 찾아가서 원단을 보고, 인터넷을 뒤져 에코백을 만들어준다는 봉제공장을 찾아가 견적을 내보기도 했다. 다행히 좋은 사장님들을 만나서 첫 가방이 잘 나왔고, 이후엔 좀 더 수월하게 가방을 만들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지금 형태의 가방을 만들 수 있었던 건 ‘내가 메고 싶은 가방’을 상상하고 그걸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평소 아이쇼핑을 자주 하면서(대학 때 학교 다음으로 많이 간 곳은 신촌 현대백화점이었다. 시원하고 볼 게 많아서 좋았다. 대학 졸업하고도 심심하면 아이쇼핑을 하러 다녔다) 만져보고, 또 그 중 마음에 드는 건 사서 입고 메고 신어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와 디자인, 소재 같은 걸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쓸데없는 곳에 써버린 건 아닐까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미 써버린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이런 방식으로 내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가방이 예뻐도 어깨가 아프면 잘 안메게 된다는 것, 소재가 좋으면 빨면서 뒤틀리는 게 아니라 예쁘게 낡아간다는 것, 뭔가 제대로 알리기 위해선 우물쭈물 하는 것보다 시원시원하게 해내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 디자인의 작은 차이가 브랜드를 만들어낸다는 것. 경험(아이쇼핑과 잦은 쇼핑 실패)을 통해 알게 된 이런 것들이 가방을 완성시켰다. 단가가 올라가지만 어깨끈에 X자 처리를 하고, 벗겨지지 않고 천천히 색이 빠지는 염색을 하고, 라벨집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라벨을 주문해 만든 이유다. 내가 들고 다니려면 들고 싶어야 하고, 들고 싶으려면 나만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니까. 그리고 10개가 넘는 가방을 만들면서 내가 들고 싶은 가방은 다른 사람에게도 편하고 예쁘고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와일드블랭크 가방은 어깨가 편하다’, ‘소재가 좋다’는 후기를 보며 흡족했던 이유는 괜한 칭찬이기 때문이 아니라 만든 의도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뭔가를 만들어 보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쌓아나가다 보면 문득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다. 이거 별로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 때. 두려움은 발을 잘 떼지 못하게 하고, 때론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을 불러온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무서운 마음을 이긴다면, 두려움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다면, 그땐 그냥 가보는 수밖에 없다. 내 감각을 믿고, 내가 쓰고 싶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무언가를 만들면 되는거다. 지금까지 쓸데없다 생각했던 나만의 경험 속에서 도움이 되는 걸 길어 올리면서. 그러면 나만의 유일하고 특별한 뭔가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난 어떤 공간, 어떤 콘텐츠, 어떤 사람들을 만나기 원하지? 관점과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난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길 원하지?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질문 대신.




완벽함이라는 게 있다면, 내게 완벽함은 ‘최고’라는 단어보다 ‘유일하고 나다운’이라는 단어와 더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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