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 noches sin ti (당신이 없는 나의 밤들)
작년 7월. 파라과이로의 출장. 2주간의 휴가, 그것도 북유럽을 갔다온 후 바로 이틀 후 다시 인천공항으로. 유럽도 짧지 않은 여정이었는데, 무려 30시간을 경유하고 날아야 도착할 수 있다는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 인천에서 체크인할 때 수속 직원분도 매우 놀라워하시는 눈치였고 인천에서 파리-상파울로를 거친 다음 상파울로에서 다시 아순시온으로 가기 위한 수속을 거쳐야 한단다. 그리고 다른 출장에 비해 거의 2주나 가까이 되었던 기 출장기간.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다거나 부담된다거나 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에 부풀었다. 남들은 출장을 좋아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그 피곤하고 귀찮고 가서 놀지도 못하는데 뭐가 좋냐고 하지만. 나는 일단 낯선 나라에 가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개인 시간이 극히 적더라도 공항에서 도착해서 숙소에 이를 때 까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현지 관계자와의 만남 또는 현장방문을 통해 서류에서만은 파악할 수 없었던 맥락의 의미를 깨우치고 상대방과 가까워지는 순간을 좋아한다. 하물며 개인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도, 공식업무가 끝나고 곧장 숙소로 돌아와 쉬는 대신, 잠깐 짬을 낼 의지만 있다면 서점이나 음반가게를 방문하여 그 나라의 문학작품이나 그 나라에 대한 책, 그리고 그나라의 음악이 담긴 음반을 사면서 그 나라에 대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자 한다.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 나에게는 또다른 여행이 된다.
오랫동안 가고 싶었지만 지리적, 시간적 여유로 나중으로 미뤄야했던 남미. 대학생 때 가 본 멕시코 이후 두번째로 방문하는 라틴아메리카이자 첫 남미국가. 그 국가가 파라과이가 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다른 남미 국가들에 비해 주목을 덜 받기도 하고, 우선순위에 둔 나라들(특히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파라과이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남미는 여행으로 방문하리라고만 생각했지 출장을 갈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주변에서 휴가 간지 얼마 안되서 그 긴 출장을 가서 안타깝다고 걱정을 해 주었지만 나는 그렇게 안타깝게 느껴지진 않았다. 또 신기한 점 하나, 작년 2월에 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로 파라과이 하프 연주자 Ismael Ledesma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공연을 보고 약 5개월 이후에 파라과이를 가게 되다니. 이렇게 우연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많아질 수록, 사람의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나 생각한다.
약 열흘 동안 파라과이에 머물면서, 남미에서는 비교적 치안이 안정되어 있고 남미 자체게 관심이 많았던 터라 몸은 힘들어도 많은 것을 배우고 담고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출장 기간 중 그 호텔에서 머물렀기에 다른 출장들보다 더 선명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호텔의 이름은 <La Mision>. 영화 <미션>의 바로 그 미션이다. 지금 보면 제국주의적 시선에 대한 의혹을 떨칠 수 없겠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 <미션>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영화 속 과라니 족이 바로 파라과이에 주로 집단을 이루며 살았고,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파라과이에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과라니 족을 다루는 것은 당연하고, 파라과이 교육 과정에서도 공식 과목을 통해 과라니어를 가르치고 있다. 호텔은 이름에 걸맞게 로비부터 예수회와 과라니족 간의 교류를 표현하는 그림과 조각품 등으로 가득했고 각 전시물마다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어 그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이 나라를 좀 더 알고 싶어졌다.
호텔의 로비가 인상적이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지금 말하는 이 음악과 관련이 된다. 아침식사를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들리던 선율. 파라과이 노래 같은 느낌이 드는 소박하고도 잔잔한 선율의, 가사가 없는 음악이었는데 선율이 계속 귓가메 맴돌면서도 누군가에게 이 음악에 대해 물어볼 생각은 차마 못했었다. 출장 마지막 날 숙소 근처 쇼핑센터의 음반 가게에서 파라과이 음악 CD를 여러 장 구매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들어보니, 호텔 아침 식사때마다 듣던 그 음악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노래의 제목은 Mis Noches sin Ti, 네가 또는 당신이 없는 나의 밤들이고 가사가 있는 노래였다.
이 노래는 파라과이의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파라과이 인이라면 누구나 즐겨 부르고 좋아하는 노래이다. 정확히 말하면 파라과이의 음악 장르인 과라니아(Guarania) 노래로, 호세 아순시온 플로레스(Jose Asuncion Flores)가 파라과이 인들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1925년에 명명하고 창조한 음악 장르이다. 느리고 우울하고 감미로운 리듬과 멜로디가 특징으로, 주로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널리 전파되어 이제는 파라과이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가 되었고, 호세 아순시온 플로레스의 생일인 8월 27일을 "과라니아의 날"로 제정, 매년 기념하고 있다. 참고로, 과라니아와 더불어 파라과이의 전통음악에서는 아르헨티나 등 다른 남미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체코에서 유래된 무곡 형식인 폴카(Polka)음악이 주를 이루는데, 지방 거주민들은 주로 템포가 빠른 음악을 선호해서 과라니아보다는 폴카를 더 즐겨 들었다고 한다.
Mis Noches sin ti는 Demetrio Ortiz가 작곡한 곡으로, 가사만 보면 이별을 했지만 너무나도 사랑하는 연인에 대해 노래하는 것만 같다.
우리를 갈라놓은 운명을 생각하며 괴로워합니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어요
당신과 나의 영혼이 함께 만들어지길 꿈꿉니다.
그리고 무한항 행복의 시간 속에서
내 노래 속에서 당신을 그리워 하고
행복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Sufro al pensar que el destino logro separarnos
Guardo tan bellos recuerdos que no olvidare
Sueños que juntos forjaron tu alma y la mia
Y en las horas de dicha infinita
Que añoro en mi canto
No han de volver
이 감미롭고도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는, 오르티즈가 어머니에게 헌정한 곡으로 1943년에 작곡되었다. 당시 심한 병세를 앓고 있었던 어머니는, 오르티즈가 브라질에서의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1946년 10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고 오랫동안 자신과 함께 살 수 있기를 기원하며 탄생시킨 노래이다. 이 사연을 알고보니 노래의 가사에 가슴 한 편이 더욱 아려진다. 어린 시절 일찍 부모님의 이혼을 겪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기에 그 심정은 더욱 애타고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당신이 없기에 태양도
나의 하루를 비추지 못하고
여명이 밝아올 때
나는 눈물을 흘립니다.
Porque sin ti ya ni el sol
Ilumina mis dias
Y al llegar la aurora
Me encuentro llorando
가혹하게도 그의 염원과는 달리, 어머니는 이 노래가 만들어지고 약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노래는 파라과이이 인들의 가슴을 울려 영원히 기억될 노래가 되었고 파라과이 뮤지션 뿐 아니라 Nino Bravo, Gilberto Gil 등 유명 뮤지션들도 이 노래를 불렀다. 그 중 파라과이의 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Luis Alberto del Parana와 그의 밴드 Los Paraguayos(파라과이인들)의 버전이, 파라과이의 고유한 음악색채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어서 들어보길 추천한다. 기타, 하프, 반도네온의 아름다운 음색을 감상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dMwA9noQyQ
이 노래는 코로나19로 고통을 받는 2020년에도 여전히 파라과이 인들에게 울려 펴졌다. Caacupe 지역 소속 오케르스타는 파라과이 인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고 자신의 집에서 음악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속 연주자들이 각자의 집에서 Mis noches sin ti를 연주하여 유튜브에 업로드하였다. 공간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선율이 되어 전례없는 불안과 공포의 시대에 잔잔한 감동을 안긴다. 그리고 이 노래의 사연을 생각해보면, 자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죽음의 위험에 빠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도 깃들여 있따.
https://www.youtube.com/watch?v=CqvYgy8BqAs&t=3s
코로나19로 모든 출장이 중단된 상황, 유달리 출장이 잦았던 2019년을 떠올린다. 고단했지만 그동안 책으로만 보아 왔던 세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는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스쳐지나갔던 사람들과 순간들이 그립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레 '19년 7월, 파라과이 아순시온의 La Mision 호텔로 나를 이끈다. 언젠가, 다시 가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