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Aznavour
4월 24일은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의 날입니다. 태생부터 약소국의 운명을 타고난 아르메니아는 주변 국가의 침략 속에 많은 이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어서, 현재 세계 각국에 퍼진 아르메니아계인의 수가 아르메니아에 거주하는 인구의 수보다 더 많다고도 하지요. 1915년 4월 24일 지금의 터키인 오토만 제국에 의해 축출되고 학살당한 아르메니아인들의 혼을 기리고자 기념일로 제정되었지만, 학살의 가해자인 터키는 여전히 학살에 가담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중음악의 전설 Charles Aznavour는 아르메니아계를 대표하는 인사였죠.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피해 망명한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9살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프랑스에 정착하면서 코카서스 레스토랑을 개업하기 전, 프랑스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연명한 적이 있어 샤를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노래가 익숙했지요.
뮤지션으로서 그는 무려 1,000곡이 넘는 노래들을 발표하면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노래들이 많이 있죠. <La Boheme>이라든가, 영화 노팅힐 주제가 She의 원곡이 Charles Aznavour의 노래였고, 그 밖에 많은 영화들에서도 그의 노래들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영화 라빠르망(L'appartement)에서 모니카 벨루치와 뱅상 카셀이 함께 춤을 출 때 흐르던 Le temps, 그리고 지난번 소개드렸던 Benjamin Biolay와 Chiara Mastrioanni가 함께한 영화 <마법에 빠졌어요>의 초반부에 등장한 désormais가 가장 기억에 남구요.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쏴라"에서는 직접 주인공 피아니스트로 연기하기도 하였죠.
2018년 10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음악이 항상 그의 곁에 함께했는데요. 그가 죽기전 마지막 콘서트가 9월 오사카에서 진행되었으니, 마지막까지 음악인로서의 삶을 살았겠지요. 저는 아직도 이 때만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일본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갈까 말까 엄청 고민했거든요. 너무 가고 싶었는데, 마침 같은 해 7월, 겨우 두달전에 미셸 르그랑(Michel Legrand)의 공연을 보러 도쿄에 갔었고, 10월 초에 휴가도 예정되어 있었어서 아무래도 무리라고 판단, 다음에 볼 수 있을거라 믿고 가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런데, 휴가 중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죠. 겨우 몇 주전에 일본에서 공연까지 하셨던 분이 갑자기 이렇게 허무하게 가셨다니. 그날 이후로 여행일정 내내 그의 노래만 들었구요. 마침 제가 갔던 곳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곳이라, tv에서 그를 추모하는 프랑스 뉴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그가 커버로 실린 프랑스 잡지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곳에 대해서는, 또 노래와 연결지어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다음에 이야기할게요.) 그런데, 또 거짓말처럼 그 다음해 1월에 미셸 르그랑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지요. 두 거장 뮤지션이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는게, 참 사람의 인생이라는게 알수 없구나 싶었습니다. 미셸 르그랑도 할아버지가 아르메니아계였어서, 아르메니아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두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 애수어린 선율이 아름답게 요동치는 느낌을 받는데, 민족적인 특성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을 것 같아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는 단순히 뮤지션, 배우 등 엔터테이너로서가 아니라 프랑스인이자 아르메니아인인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에 잊혀졌던 아르메니아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100% 프랑스인이자 100% 아르메니아인이다. 커피와 우유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라고 말했지요. 2009년부터 2018년까지는 스위스의 아르메니아 대사관과 UN 제네바 아르멘아 대표부의 대사직을 겸임하는 등,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비롯해서 아르메니아가 처한 국제적 위기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자체가 인본주의자의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부모님이 학살로부터 도망친 것을 알고 있었기에,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유대인을 비롯한 나치의 박해자들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기도 하였구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직까지도 아르메니아 대학살 인정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고 있죠. 얼마전 Guardians 지의 기사에서는, 터키와의 관계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로지 유대인만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라는 지위를 내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작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 때 아제르바이잔에 무기를 지원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죠. 정말이지 이 나라는 참.....^^;;; 더 말하면 욕이 나올 거 같아 여기서 멈출게요). 1972년에는 Comme ils disent라는 노래를 발표하는데요. 지금도 이야기하기 조심스럽기에 그 당시에는 더욱 꺼내기 어려웠을,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한 가사입니다. 그 시기에 이런 내용의 노래가 나왔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 힘들지요. 주변에서는 자신의 이미지가 나빠질가 걱정해서 말렸다고 하지만, Charles은 힘들게 살아가는 자신의 친구들을 생각하며 꼭 부르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아이티 대지진 발생 시에도 아이티 대지진을 돕는 활동을 하는 등, 그의 인본주의적인 활동은 끝이 없었습니다.
아르메니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했던 만큼, 아르메니아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사랑하는 노래를 불렀는데요. 그의 주요 대표곡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있지만, 오늘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추모하고 국제사회에서 잊혀지기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르메니아에 대해 부른 노래들을 선곡했습니다.
1. Ils ont tombés
1975 4월 24일, 즉 1915년 같은 날 아르메니아 인들의 대학살 이후 정확히 60년 이후에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곡으로서, 아르메니아 대학살로 스러져간 영혼들을 추모하는 노래입니다.
Ils sont tombés sans trop savoir pourquoi
Hommes, femmes et enfants qui ne voulaient que vivre
Avec des gestes lourds, comme des hommes ivres
Mutilés, massacrés, les yeux ouverts d'effroi
그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무너졌지
그저 살고 싶었던 남자, 여자, 아이들이
무거운 몸짓에, 술취한 사람처럼
두려움에 뜬 눈으로 훼손되고 학살당했지
Ils sont tombés en invoquant leur Dieu
Au seuil de leur église ou le pas de leur porte
En troupeaux de désert, titubant en cohorte
Terrassés par la soif, la faim, le fer, le feu
그들은 신을 간청하며 무너졌지
교회 입구 또는 문 앞에서
사막에서 무리를 지어 비틀거리며 겉다
목마름, 배고픔, 철, 불에 덮여버렸지
Nul n'éleva la voix dans un monde euphorique
Tandis que croupissait un peuple dans son sang
L'Europe découvrait le jazz et sa musique
Les plaintes des trompettes couvraient les cris d'enfants
사람들이 피 속에서 썩어가는 동안
행복한 세계에 사는 그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
유럽은 재즈와 음악을 발견했고
트럼펫이 불평하는 소리가 아이들의 절규를 덮었지
Ils sont tombés pudiquement, sans bruit
Par milliers, par millions, sans que le monde bouge
Devenant un instant minuscules fleurs rouges
Recouverts par un vent de sable et puis d'oubli
그들은 소리를 내지도 못한 채, 서서히 스러져갔지
천만명, 백만명, 그럼에도 세계는 움직이지 않았지
잠시 붉은 꽃이 되더니
모래바람에 의해 다시 덮히더니 잊혀져 갔지
Ils sont tombés, les yeux plein de soleil
Comme un oiseau qu'en vol une balle fracasse
Pour mourir n'importe où et sans laisser de trace
Ignorés, oubliés, dans leur dernier sommeil
그들은 무너졌지, 태양빛으로 가득한 눈
총탄 한 알에 부서진 새처럼
어디선가 죽고 그들의 흔적을 미처 남기지 못하고
마지막 잠결 속에 무시당하고, 잊혀졌지
Ils sont tombés en croyant, ingénus
Que leurs enfants pourraient continuer leur enfance
Qu'un jour ils fouleraient des terres d'espérance
Dans des pays ouverts d'hommes aux mains tendues
그들은 무너졌지, 순진하게도
그들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지속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어느날 그들은 손을 내민 사람들에게
열린 나라에서 희망의 땅을 짓밟겠지.
Moi je suis de ce peuple qui dort sans sépulture
Qui a choisi de mourir sans abdiquer sa foi
Qui n'a jamais baissé la tête sous l'injure
Qui survit malgré tout et qui ne se plaint pas
나는 무덤도 없이 잠드는 사람들에게서 왔네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사람들
모욕 앞에서 절대로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던 사람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고 신음하지 않은 사람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 있는 학살 추모 기념관에서 부른 영상. 화질은 좋지 않지만 진정으로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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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endre Arménie
1988년 아르메니아에서 대지진이 발생하고, 약 5만명이 사망한 대참사로 기록됩니다. 샤를 아즈나부르는 이 노래를 통해 대지진으로 스러졌던 영혼들을 추모하고, 지진을 비롯하여 기구한 운명을 지닌 아르메니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노래 초반부 아르메니아 전통 관악기인 두둑의 선율에 귀기울여보세요.
Son sol n'est sillonné que par ses cicatrices
Dieu l'a mise à l'épreuve sans la ménager
Elle n'a survécue qu'aux prix de sacrifices
Le plus souvent trahie, le plus souvent violée
바닥에는 오직 상처만 남아있고
신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험에 내맡겼지
아르메니아엔 희생의 댓가만이 남았지
가장 자주 배신당하고 침입당했지
L'ennemi s'est toujours pressé à ses frontières
Elle a pleuré son sort pourtant s'est ressaisie
D'attaques meurtrières en tremblement de terre
Elle a vécu le pire, pauvre et tendre Arménie
적은언제나 국경을 압박해고
아르메니아는 그의 운명에 흐느꼈지만 다시 마음을 바로잡았지
지진 속의 죽음의 공격에서
최악의 나날들을 감내했지, 애처롭고 온화한 아르메니아여
Elle a connu la faim, le froid et la misère
Elle a serré les dents, elle a imploré Dieu
Elle a vu s'engager et ses fils et ses pères
Accompagné des mères avec les larmes aux yeux
아르메니아는 배고픔, 추위와 절망을 겪었지
아르메니아는 이를 꽉 깨물고 신을 한탄했지
아르메니아는 운명에 속박되고 아이들과 아버지들,
그리고 눈물이 가득찬 어머니들을 바라보았지
Elle a toujours été objet de convoitises
Perdue dans ses montagnes aux portes de l'Asie
À deux pas des nuages au coeur de ses églises
Elle a subi son sort, douce et tendre Arménie
아르메니아는 언제나 탐욕의 대상이었지
아시아로 향하는 관문인 산 속에서 길을 잃어
구름으로부터 얼마 멀지 않은 교회의 중심에서
그녀는 운명을 겪었지, 유약하고 온화한 아르메니아
Son histoire est tachée du sang de mille guerres
De siècles de douleurs comme d'espoirs morts-nés
Ses héros sont couchés dans des vieux cimetières
Couchés mais morts debout face à l'adversité
아르메니아의 역사는 수많은 전쟁의 피로 물들었지
태어나자마나 죽어버린 희망처럼 수 세기에 걸친 고통
영웅들은 오래된 묘지에 묻혀있지만
적 앞에 선 채로 죽어 있지
Elle a gardé sa langue et sauvé sa culture
Elle s'est accrochée pour sortir de la nuit
1000 fois ravagée elle renaissait pure
Pour tout recommencer, belle et tendre Arménie
아르메니아는 언어를 지키고 문화를 수호했지
아르메니아는 암흑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
천 번의 황폐함 끝에 다시 태어났지
모두 다시 시작하기 위해, 아름답고 온화한 아르메니아
Dans ce coin tourmenté du monde, elle s'accroche
À son destin cruel depuis la nuit des temps
L'arme à proximité de la faux et la pioche
Pour défendre sa terre et nourrir ses enfants
이 상처받은 세계의 모퉁이에서, 아르메니아는
암흑의 시간부터 참혹한 운명을 향해
낫과 곡괭이와 유사한 무기를 들지
땅을 지키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Indépendante enfin sur son sol légendaire
Elle se prend en main et respire et revit
La liberté conquise, il y a tout à faire
Avec l'aide de Dieu et la foi et l'envie
마침내 전설의 땅에서 독립을 이루어
숨을 쉬고 다시 살아가지
자유를 쟁취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신의 가호와 믿음, 열망으로
Sous la cendre des ans, sous les amas de pierres
L'espoir reste permis, jeune et tendre Arménie
수년에 걸쳐 쌓인 잿더미와 돌들의 무리 아래
희망이 자라고 있지, 젋고 온화한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의 지진과 관련, 더 잘 알려져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1989년 샤를 아즈나부르가 작곡하고, 당시 프랑스의 유명뮤지션들이 총 출동하여 <Pour toi, Armenie(너를 위하여, 아르메니아)>를 불렀죠. 노래의 수익금은 아르메니아 지진 피해자들에 기부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는 "샤를 아즈나부르 대로(Boulevard)"가 있고, 샤를 아즈나부르 재단이 설립한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19 직전 마지막으로 계획했던 여행지가 아르메니아였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 위기 이후 가장 먼저 가고 싶은 여행지를 묻는 질문에도 아르메니아라고 대답했는데요. 좋아하는 한 가수를 통해서 그의 나라와 역사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이 가고, 그 나라를 직접 눈과 마음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비록, 그의 목소리는 이제 직접 들을 수 없지만, 그의 삶과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요? 당장은 실현할 수 없어도, 지금 이 순 간 그 날을 기다리고 기대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