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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에 바치는 사랑의 찬가

En mi Pais - Guillermo Anderson

by Jacques

9월 15일은 온두라스의 독립기념일로,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이후 여느 중앙아메리카국가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종속되어 "바나나 공화국"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고 독재, 폭력 등으로 점철된 정국을 겪은 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가고 있다. 물론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의 이야기이다. 온두라스라고 하면, 언제나 옆나라 엘살바도르와 함께 묶여 치안이 극악하고 살인율이 매우 높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막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축구 때문에 이웃나라와 전쟁을 하는 나라라는 억울한 조롱에 시달리기도 한다. 작년 8월, 내가 속했던 팀에서 온두라스에 출장갈 일이 생겼고 나는 파라과이 출장 후 후속 업무 때문에 팀에서 혼자 남았었는데, 설마 그렇진 않겠지만 출장가신 다른 분들께서 위험한 상황을 만나지 않길 바랐고, 다행히 별 탈없이 무사히 돌아오신 기억이 난다.


나는 어차피 다른 업무로 바빠서 온두라스를 가지 못했지만, 내가 만약 온두라스를 간다면 어떤 노래를 들을지 상상해 보았다. 여행이든 출장이든 어느 나라를 처음 방문할 때, 그 나라를 대표하는 대중음악을 미리 조사하고 현지 일정에서 들으면서 이동하거나 잠에 들거나 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일종의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온두라스 뮤지션 Guillermo Anderson.



Guilleron Anderson은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났을 때, 온두라스 전역은 슬픔에 잠겼고 대통령인 Juan Ornando Fernandez는 "그는 영원히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있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그의 노래는 언제나 기억될 것이다"라는 추도사를 남겼다.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온두라스의 아동 인권 신장, 교육보장,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사회 참여형 아티스트로 기록되고, 무엇보다 그의 노래들 대부분이 자신의 국가 온두라스에 대한 사랑, 경의를 표현하고 있어 국가적으로도 청소년들이 그의 노래를 많이 들으면서 애국심을 고취시키길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그저 자신의 나라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아티스트였다면 온두라스인들의 가슴을 울리는 뮤지션으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2015년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온두라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통해 온두라스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예전의 어두웠던 시대에 대한 의식을 상실하지 않고 진정한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자신이 음악을 하는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생전 그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회활동들은 음악을 매개체로 하는 그의 신념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이는 단순한 애국심이 아닌, 자신의 나라가 더 잘 자라나기를 바라는 애정어린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1987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노래가 바로 En mi Pais, 나의 나라에서이다. 이 노래는 온두라스 제2의 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온두라스에서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영혼의 찬가이다. 기예르모 앤더슨은 "온두라스라는 나의 나라가, 모순으로 가득 찼던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난 La Ceiba라는 작은 도시는 바다를 면해 있는 곳으로, 그의 고향이 가져다주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감성의 그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로지 기타의 선율 위에 차분히 노래하는 단순한 구성임에도 그가 얼마나 자신의 고향과 나라를 사랑하는지,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의 나라에서는, 비옥한 땅과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삶의 얼굴에서 역사가 드러나 있지.

상처입은 갈매기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땅

빛이 너의 삶을 펼친다네


En mi país, de guamil y sol ardiente

Se ve la historia en los rostros de la gente

Hermosa tierra vuelo de gaviota herida

Tenés la luz que va repartiendo vida


기타와 마림바의 소리가 울리고

아코디언의 소리도 들리네

플룻과 카람바의 소리

드럼과 달팽이의 소리도.


SUENEN LA GUITARRA Y LA MARIMBA

LAS MARACAS CON EL ACORDEÓN

QUE SUENEN LA FLAUTA Y LA CARAMBA

SUENEN EL TAMBOR Y EL CARACOL


오렌지와 구아바의 향이 풍기고

지지 않는 꽃의 빛깔이 넘실대고

오후의 커피 내음이 풍기지


Están el sabor de la naranja y la guayaba

Está el color de la flor que no marchita

Está el olor a café en la tardecita


https://youtu.be/W5mGUTe4e5A



오랜 독재와 전쟁의 시름에 허덕이던 온두라스인들에게, 기예르모 앤더슨의 이 노래는 온두라스가 원래부터 그런 나라가 아니었음을, 천혜의 자연환경과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나라였음을 상기시켰고 언젠가는 이 절망에도 끝이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후 발표된 그의 노래들 대부분이 온두라스인들에게 희망과 자신의 터전에 대한 애정을 고취시키며, 특히 온두라스의 요리와 음식을 찬양하는 El encarguito라는 노래도 흥미롭다. Arroz con leche, ayote en miel y torrejas, ojuelas, rapadura, panela, zapotillo 등 듣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도는 음식들이 등장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16년 후. 온두라스는 여전히 불안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오래 이어졌고,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국정이 거의 마비 상태에 이르렀는데, 최근 몇주간 SNS에서 온두라스 인들이 빈번히 올린 해쉬태그가 눈에 띄었다. #Dondeestaeldinero. 즉 "돈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뜻의 메시지로, 코로나19로 보건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위기상태에 놓인 온두라스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조성한 기금마저 제대로 운용하지 않고, 부패로 날렸다는 의혹이 확산됨에 따라 온라인을 통해 울려 퍼진, 정부를 향한 외침이다. 정부에 대한 항의와 외침도 결국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속한 터전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대신,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고 더욱 올바른 사회를 구축하기를 희망하는, 국가에 대한 진정한 마음이 아닐까. Guillermo Anderson의 목소리가 저 짧고도 영향력 있는 해쉬태그 메시지에 담겨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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