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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살사의 시인이 보듬는 라틴아메리카

Ruben Blades의 사회적 살사(Salsa)음악

by Jacques

쿠바, 푸에르토리코 등 카리브해 섬나라와 이에 근접한 파나마 등을 중심으로 번성한 살사음악. 1940년대에 태동하여, 1950년대 미국의 카리브해 이주민들에 의해 꽃을 피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사음악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파나마의 루벤(Ruben Blades)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곡가, 가수 뿐 아니라 배우, 그리고 정치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 살사음악의 대중화와 함께 단순한 춤곡이 아닌, 라틴재즈로서의 격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고 9차례 그래미상에 빛나는 아티스트이다. ‘04년에는 파나마 관광부 장관으로도 임명되어 5년간 장관직을 수행했으니, 가히 파나마의 아이콘이라고 할만하다.


작년 하반기, 내가 기획하고 진행하는 마포FM 월드뮤직 방송에서 중앙아메리카 특집을 다루면서 마지막 회차로 파나마 음악을 들어보았고, 시간관계로 파나마를 대표하는 두 아티스트인 다닐로 페레즈(피아니스트)와 루벤 블라데스 두 명만을 선정하였는데, 두 아티스트 모두 음악적 스펙트럼이 다채로워 선곡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루벤블라데스는 자신의 살사음악을 탱고로 재구성하기도 하고, 다른 가수에게도 자신의 곡을 선사하여 그 가수를 최고의 인기가수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등 무수한 명곡을 만들어냈기에, 이번 지면에서도 한 곡만을 소개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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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 블라데스가 파나마를 넘어 라틴아메리카 살사음악의 전설로 추앙받는 이유는, 음악적인 재능 뿐 아니라 가사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Paula C등 일반 적이 사랑노래들도 많지만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정치에도 관여하면서, 파나마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냉전기간 동안 미국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종속되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하였다. 파나마 역시 운하건설을 비롯해서 1989년 12월 20일 미국의 파나마 침공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깊게 얽힌 근현대사를 겪었기에 루벤 블라데스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종속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길 희망하였을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노래들 역시 무수히 많지만, 그 중 꼭 들어봤으면 하는 4곡을 소개한다.


1. Juan González

- 후안 곤잘레스라는, 가상의 게릴라를 소재로 정부군에 의해 결국 살해당하는 게릴라단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상의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정부가 민중에 대해 승리를 선언했다는 가사를 보면, 볼리비아 정부군에 잡혀 처형당한 체 게바라를 연상시킨다. 루벤 블라데스 역시 이 노래를 만들기 2년전 체 게바라의 처형 기사를 접하고 이에 영감을 받아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단, 어느 나라들 처럼 파나마 역시 정부의 정치적 검열이 심했기에 가상의 인물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일부에서는 이러한 그의 모호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_XLRtxiWkJc


2. Tiburón(상어)

- "상어"하면 피아졸라가 연상될텐데, 루벤 블라데스도 1981년 "상어"라는 제목을 곡을 발표했다. 난데없이 카리브해에 출몰하여 먹잇감을 찾는 상어는 바로 이 지역에 반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미국을 가리킨다. 루벤 블라데스는 인터뷰에서 "상어"는 반제국주의 노래라고 명백하게 말한 바 있다.


무언가를 찾는 상어

절대로 잠들지 않는 상어

숨어서 기다리는 상어

나쁜 운을 가지고, 태양과 지평선을 삼켜벅는 상어


Es el tiburón que va buscando

Es el tiburón que nunca duerme

Es el tiburón que va asechando

Es el tiburón de mala suerte Y se traga el sol el horizonte


https://www.youtube.com/watch?v=6iPz-3G3QOU


3. Buscando América(아메리카를 찾아서)

- 1984년 발매된 앨범 Buscando América의 동명 싱글로, 미국의 아메리카가 아닌 쿠바의 독립 영웅이자 반제국주의자인 호세 마르티(Jose Marti)의 아메리카 정신을 따르고 있다. 이는 보통과 달리, e 위에 악센트가 붙어 있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앨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앨범 전체적으로 80년대 이르러 혼란의 정국 속에 빠진 라틴 아메리카를 노래하고 있는데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으로 인한 실종자(Desapariciones), 엘살바도르 로메로 주교의 암살(El padre Antonio y su monaguillo Andrés)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동명의 트랙에서는 아메리카가 "어둠 속에서 상실된 지역"이지만 이러한 절망에 잠식되기를 거부하고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80년대 미국의 개입과 냉전 속에서 희생양이 된 라틴아메리카에게 위로를 건네는 노래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근현대사를 음악으로 느끼고 싶다면 이 앨범을 놓칠 수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D9_OEE4oEnM


4. 20 de Diciembre (12월 20일)

-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89년 12월 20일 미국의 파나마 침공을 이야기하는 노래이다. 쿠바 룸바의 한 형식인 "Guaguanco" 리듬 위에 결의에 찬 메시지를 노래하고 있는데 "베를린처럼 초리요(Chorrillo)에도 불길이 타오르네"로 시작,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12월20일에 산타 클로스가 폭탄을 가지고 내려왔다면서, 아기 예수에게 산타의 선물로 대체 몇명이 죽었는지 말해달라고 한다. 이 국가적인 트라우마는 회복되지 않은 채(Un trauma nacional aún sin sanar), 어제를 마주하지 않고서는(sin Que enfrentemos al ayer)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것이라 말한다(Nunca se podrá resolver). 노래 말미에 들리는 폭발음 소리가 그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감, 두려움을 생생히 전달한다.


미국은 파나마의 민주헌정 회복, 노리에가 대통령의 국제 마약밀매 혐의에 따른 체포를 명목으로 침공하였으나 민간이 300명이 침공한, 명백한 불법 침공으로서 국제사회는 미국의 무력 침공을 규탄하였다. 작년, 파나마 침공 30주년을 맞아 파나마 침공에 대한 다양한 노래들이 파나마 언론을 통해 소개 되었고, 그 중 루벤 블라데스의 이 노래가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노래가 수록된. 1999년 발매 앨범 Tiempos의 다른 싱글들도 파나마의 부패한 정치상황 등 사회적 비판을 다룬 노래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으니 기회가 되면 들어보길 추천한다. (아래 뮤직비디오에는 보기 힘든 이미지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2DewHuMAbbk


작년에 파나마 관련 방송을 준비할 때만 해도, 주로 파나마 운하에 집중하여 이야기하였고 작년이 파나마 침공 30주년인 것은 커녕, 파나마 침공 자체에 대한 것도 알지 못했었다. 파나마 운하를 제외하고 파나마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고 루벤 블라데스의 음악을 소개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생각해서 미처 관심을 주지 못했었는데, 이 사실을 방송을 준비할 때 알았더라면 방송 내용에 조금 더 깊이를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30주년에 맞추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오늘 여행할 나라로 파나마를 준비한 건, 어제 국제여성영화제에서 파나마 영화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제 영화는 파나마 Guna 원주민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기원을 찾는 실험적 영화로, 1925년 정부에 대항하여 일으킨 Guna 혁명 95주년을 기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비록 소재와 시기는 다르지만, 파나마 역시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처럼 지배와 종속의 관계 속에서 힘겨운 근현대사를 거쳐 왔고, 살사라는 흥겨운 리듬 속에 파나마,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와 실상을 노래한 루벤 블라데스의 노래들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낯선 나라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갈 수록, 그 나라를 표상하는 연결고리를 통해 좀 더 깊게 이해하게 될 때, 여행은 또 다른 끝없는 길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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