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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ques Jan 23. 2022

크로이처 소나타/비밀편지

Leoš Janáče


드보르작, 스메타나에 이어 체코 음악을 꽃피운 작곡가 Leoš Janáček(레오시 야나체크)는 체코 제2의 도시 브루노(Brno) 출신으로 모라비아와 슬라브 지역의 민속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근대적 음악어법을 통해 독특하고 아름다운 음악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관현악에서 성악,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요. 특히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 지역 문학에 조예가 깊어 오페라 작곡에도 공을 들였으며, 체코 오페라를 넘어 20세기 오페라를 완성한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는 체코내에서는 이미 명성이 있었지만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창작열이 최고조에 오른 건 60대가 되어서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삶의 열정이 그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야나체크의 오페라와 현악4중주는 20세기 클래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들인데요. 특히 2개의 현악4중주에는 인생 후반기에 만났던 한 여인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부인과 이미 식어버린 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 야나체크는 1917년 온천 휴양지에서 37살 연하의 유부녀 카밀라 스퇴슬로바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1928년에 야나체크가 세상을 떠났으니, 약 11년간 그녀와 알고 지냈던 셈인데요. 이 시간동안 카밀라에게 무려 700통의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밀라는 이런 열정적인 그의 마음과는 달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카밀라는 야나체크의 뮤즈로서 창작에 무한한 영감을 불어 넣었습니다.


1923년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는, 불륜을 소재로 한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었습니다. 크리이처 소나타는 원래 베토벤의 작품이죠. 소설에서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와의 불륜을 의심한 남자가 결국 아내를 살해한다는 이야기로, 야나체크에게는 이 소설이 부정적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가뜩이나 도덕을 중시하는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겠지요. 그래서 이에 대한 응답으로 1번 <크로이처 소나타>를 작곡하였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피아노 3중주로 작곡되었다가 이 악보가 소실되고, 이것이 전신이 되어 현악4중주의 걸작으로 이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소설의 전개와 함께 악장이 구성되어 있는데요. 주인공 뽀즈드네이셰프가 기차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1악장, 불만족스런 결혼을 그리는 2악장,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와의 불륜을 의심하며 분노에 차오르는 3악장, 마지막으로 아내를 살해하는 4악장을 듣다보면, 듣는 것만으로도 이 욕망과 질투의 어리석음과 동시에 사랑을 위해선 무엇이든 던질 수 있었던 야나체크의 심정이 동시에 전해 옵니다. 아마 야나체크는 소설 속에서 살해당한 아내에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을 까 싶습니다.


1928년, 그의 생애 마지막해에 발표된 작품이자 생전 마지막 작품으로 기억되는 현악사중주 2번 <비밀편지>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카밀라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티브로 작곡하였으며 1번보다는 복잡하고 난해한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후 같은 해 8월에 초연되었다고 전해지구요. 특히 비올라를 통해 카밀라를 표현하고자 했던 만큼 1악장 비올라 파트가 카밀라의 선율을 도입하고 있고, 비올라의 비중이 높습니다. 역시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악장별로 템포가 시시가각 변하기 때문에 감상에 집중을 요하구요. 3악장의 경우, 결국 둘 사이에서 태어나지 못했던 "아이"를 위한 자장가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는 만큼, 상상력과 흥미를 고취시키는 작품에는 분명합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시구요.


http://naver.me/Gq15n8LJ


1번 <크로이처 소나타>는 야나체크 현악4중주단의 연주이구요.

https://youtu.be/FMPrhIPWtB8


2번 <비밀편지는> 한국의 칼라치 현악 4중주단의 연주입니다.

https://youtu.be/n2gHKRTKetw


야나체크라는 작곡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싶으신 분께 알려드리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압구정에 있는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에서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책과 발간물을 출판하고 있는데요. 그 중 비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잡지 <풍월한담>은 매 호별로 한 음악가를 선정해서 집중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 <풍월한담> 7호가 레오시 야나체크를 조명하였구요.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 오페라, 관현악곡등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는 생소한 작곡가에 대한 깊은 글들이 실려 있으니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 책은 서점이 아닌, 풍월당 매장 또는 웹사이트를 통해서만 구매가 가능합니다. 저는 풍월당 직원은 아닌데, 저도 좋은 기회로 이 7호에 야나체크의 음악에 대한 작은 기고문을 쓰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아마추어라 깊이는 부족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피아노소나타와 관현악곡 <타라스 불바>에 대한 글을 써서,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체코의 가장 유명한 작가 밀란 쿤데라 역시 야나체크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드러내었죠. 그의 에세이집 <배신당한 유언들>의 한 챕터는 야나체크에 대해 할애하고 있구요. 소설 <농담>에서도 주인공 중 한 명이야나체크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제목만으로도 설레게하는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베토벤의 작품이 주 테마를 이루지만, 국내에서는 <프라하의 봄>으로 소개된 영화에서는 야나체크의 음악들이 자주 등장하여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우아하게 직조합니다. 이 쉽지 않은 소설이 이토록 근사한 영화가 되었네요.


https://youtu.be/-sq7tbRHz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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