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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구슬픈 영혼

Baltas paukštis - Vytautas Kernagis

by Jacques

리투아니아는 두 번의 독립기념일을 맞이한다. 첫 번째는 1차세계대전 후 독일로부터 독립한 1918년 2월 16일, 그리고 두 번재 소련으로부터 자유를 되찾은 1990년 3월 10일이다.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은 서로의 손을 잡아 인간 띠를 만들고 합창하는 “노래혁명”을 통해 소련으로부터 가장 먼저 독립을 쟁취한 국가들로서, 에스토니아는 5년에 한번,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는 4년에 한번 씩 노래축제를 개최하여 국가의 소중함과 평화의 메시지를 되새기고 잇다.


작년 여름, 에스토니아의 노래축제인 Lauluupid를 보기 위해 발트 3국을 여행했는데, 발트 3국 모두 제각기의 매력을 지니고 잇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리투아니아였다. 예술작품에 스며 잇는 멜랑콜리의 정서, 1년에 한번 국가로 전환하는 우주피스 공화국, 아기자기한 구시가지, ‘아츄’라고 말하는 리투아니아어의 ‘감사합니다’ 등, 화려하지는 않아도 리투아니아에서만 접할 수 잇는 무언가의 정서가 나를 사로잡앗다. 그리고 한국과 함게 OECD 자살율 1위를 다투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잇어 그런지 더욱 신경이 쓰였고, 이들이 본질적으로 지닌 멜랑콜리한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엇다.


Vytautas Kernagis는 리투아니아 이외의 지역에서는 매우 생소한 이름이지만, 리투아니아에서는 리투아니아 대중음악의 산증인이자 선구자로 기억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사실 리투아니아 뿐 아니라, 발트3국 자체가 경제규모나 지리적 측면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뮤지션들 중, bard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bard는 영어에도 잇는 단어로서 ‘음유시인’이라는 뜻인데, 자신이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하고 시를 읊듯이 잔잔한 어조로 노래하는 음악장르이다. 비타우나스 케르나기스 역시 리투아니아의 bard로 싱어송라이터 분 아니라 TV 진행자, 영화배우 등으로 활약하며, 소비에트 시절 침체되어 있던 리투아니아의 대중문화를 활성화시키는데 기여하고, 그가 작사한 가사들에는 깊은 철학과 심오함이 담겨 있어 리투아니아인들의 자부심이 매우 높다.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 카우나스에서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아무런 사진이 없는, 그의 이름많이 새겨진 커버의 CD를 구입하면서 그의 음악을 처음 만났는데, 흔히 시인들의 낭송이 그렇듯이, 화려하지 않고, 부드러움과 거침의 중간에 자리한 목소리톤에, 담담히 기타 선율에 자신의 이야기를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 자체가 리투아니아의 정서를 대변하고 잇다. 아직도 그를 기리는 트리뷰트 콘서트가 1년에 최소 한두번은 진행되고, 그의 아들이 재단을 운영하면서 유산을 이어 나가고 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어린이 대부터 그의 노래를 듣고 배우면서 자란다고 하는데, Baltas Paukstis는 “하얀 새”라는 뜻으로, 1998년에 발표된 대표곡이다. 이례적으로 기타가 아닌, 신디사이저와 자연 음향으로 시작되면서 건반으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삶의 진리와 “하얀 새”로 비유되는 신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다.


백합들이 호수에 피어날 때
강에 아직 안개가 기었을 대
하얀 새가 하늘을 날 대까지
너와 나에게 노래하네.

밤을 이어 찾아오는 낮

비가 내린 후 나무의 향이 번지고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빛이 드리운다네.

리투아니아와 저 높은 하늘 사이에
저 위의 새가 우리를 향해 노래하네.


개인적으로 흥미로웟던 것은, 가사에 나온 “리투아니아”라는 단어엿다. 리투아니아어로 “Lieteva”로 발음되는 국가명이 대중가요의 가사에 등장한다는 건, 작사가 또는 가수가 자신의 터전에 대해 아김없는 애정을 담고 잇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지배와 억압 속에서 리투아니아인들은 20세기를 감내하며 나라의 소중함을 개달앗고, 그 정신을 오랫동안 이어오고 잇는 것이다.


리투아나아어는 인도-유럽어 계열의 언어로서 고대 산스크리트어의 흔적을 일부 지니고 잇는데, 알파벳 아래에 붙는 꼬리 모양의 부호, 어순 및 문법체계가 그 증거이다. 워낙 생소하고 어려운 언어이고, 케르나기스 자체도 영미권에서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뮤지션이기 때문에 관련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그의 노래를 들으면 비록 가사의 의미를 온전히 모르더라도 진심만은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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