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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인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사랑의 노래

Getaran Jiwa - P.Ramlee

by Jacques

지난 8.31일은 말레이시아의 독립기념일. 1957년 8월 31일.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의 중심가에서는 Merdeka, Merdeka를 선언하는 가슴벅찬 순간이 펼쳐졌고, 지배자 영국의 국기의 자리를 말레이시아의 국기가 차지하며, 하강과 상승의 진풍경을 이루었다.

지금 그 곳은 Merdeka 광장으로 불리며,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역사적인 현장으로 방문객들을 반긴다. 2016년 10월,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이 불명확한 채 콸라룸푸르, 말라카, 페낭 세 곳을 여행했고,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려진 이 나라의 역사와, 다민종이 어우러진 사회와 문화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흔히 말레이시아 하면 대부분 휴양지 코타키나발루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던가.


메르데카 광장 주변에는 콸라룸푸르 도시 박물관이 있어, “진흙의 도시”로 불리는 콸라룸푸르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 처음 알게 된 이름, P.Ramlee. 말레이시아의 프랑크 시나트라로 불리며 50~60년대 동남아 지역의 연예계를 뒤흔들었던 인물로 무려 66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401곡이 넘는 곡을 남긴, 일생을 예술에 바쳤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순간에는, 그의 집을 방문했던 어느 방문객에게, 그의 처지가 측은해 보여 모든 재산을 건네 주었다고 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직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그의 곡 중, 가장 대표곡은 바로 <Getaran Jiwa>이다. Getaran Jiwa의 뜻은 “떨리는 마음.” 제목만 들어도 사랑에 애타는 주인공의 심경이 느껴진다. 오늘날에도 젊은 가수들이 끊임없이 리메이크하고 커버영상을 만들 정도로, 말레이시아인들의 마음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이 노래는 1960년 람리가 직접 연출하고 주연을 맡았던 멜로영화 Antara Dua Darjat(Between Two Classes)에도 등장하며, 계층의 차이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해야 했던 두 주인공을 애처로이 어루만진다. 영화 속에서 람리는 하층민 남성 Ghazali를 연기했고 상류층 여인인 Zaleha의 생일파티 때 연주를 하고, 그녀의 피아노 레슨을 맡게 되면서 점차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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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aran Jiwa 역시, 그들의 사랑이 계속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때, Zahela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Ghazali가 부르던 노래다.


내 영혼의 떨림이 나의 가슴을 떄리네요.

흐르는 선율, 리듬과 노래

단조롭더라도 괜찮아요

.......

조심해요, 리듬과 노래를

잃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

당신의 사랑은 이 생이 다할 때까지

계속될 거에요


콧수염의 친근한 얼굴을 띈 람리는, 모두를 홀리게 하는 미남형은 아니지만 영화 속의 람리는 언제나 진실된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가고, 그 순간에는 언제나 음악이 함께 했다. 옛날 영화의 노래이니만큼, 철지난 사랑 노래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시절의 애잔한 향수가 녹아 있어 오늘날에도 말레이시아 대중음악의 고전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 시절에는 전세계적으로 볼레로 장르가 유행했던 만큼, Getaran Jiwa도 볼레로의 선율 위에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한다. 60~70년대의 볼레로 음악은, 국적을 불문하고 언제나 나의 귀를 사로잡는다. 꽃향기가 피어오는 봄, 하늘에서 비가 조용한 리듬을 타며 내려오는 여름,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성적인 가을, 그리고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에 잠기는 겨울에 이르기까지, 4계절에 모두 어울리는 음악이 흔치 않은데 볼레로만큼은 언제 들어도 설렘과 낭만의 순간을 만들어준다.


페낭 근교에 그의 집이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다고 해서, 페낭 여행을 할 때 기회가 되면 한번 찾아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접근하기 용이하지 않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못내 아쉽다. 여행 초반 일정이었던 콸라룸푸르의 박물관에서 처음 그의 이름을 보고, 핸드폰으로 그의 음악을 검색해서 말레이시아 여행 일정 내내 그의 음악을 들었기에 더욱 생각이 나는 지도 모른다. 페낭에서의 마지막 날, 바투 페렝기 해변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는 길, 노천 시장의 한 가판대에서 CD와 테이프를 팔고 있었고, 마침 람리의 베스트 앨범을 판매하고 있어 반가운 마음에 구입한 것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방문하기 전에는 동남아에서 가장 희미했던 나라가, 람리의 음악을 들으면서 선명한 유화가 되었다. 그리고 2020년, 광주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작게나마 진행된 말레이시아 대중음악 전시회에서 람리의 흔적을 발견하며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람리의 말년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류를 빠르게 타는 연예계에서, Rock 음악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말레이시아에서도 그 흐름에 편승하면서 람리의 음악도 점차 과소평가를 받게되었고, 그의 자리가 점점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44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병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을 때, 그제서야 말레이시아 인들은 그의 음악을 좀 더 사랑하지 못한 후회를 느꼈다고 하니, 오늘날까지 생전 못다했던 람리에 대한 애정을 이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양 음악인들도 Getaran Jiwa의 아름다운 선율에 매료되어, 추억의 팝가수 Lobo도 Whispers in the Wind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곡을 만들고, 영국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John Duarte는 이 노래의 선율로 변주곡(Getaran Jiwa, Variations op.125)을 작곡하여 람리에게 헌정했다. 좋은 노래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국경을 넘고 넘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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