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bbel - Monica Zetterlund
여름이 가기 전에 다시 떠올리고 싶은 뮤지션이 있다. 노래를 통해 유난히 여름을 많이 이야기했던 뮤지션.
‘14년을 시작으로, 매년 8월마다 방문하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음악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다양한 음악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음악의 시각을 확장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특히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월드뮤직에 대한 영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세계의 음악을 알게 되었다는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스웨덴의 재즈 뮤지션 모니카 제털룬드(Monica Zetterlund)도 ‘14년 영화제에서 상영된 전기 영화 왈츠 포 모니카(Monica Z)를 통해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그녀도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 속에서 가수의 꿈을 이어갔고, 백인으로서, 흑인들의 고뇌와 애환에서 파생된 음악인 재즈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며 스웨덴을 대표하는 재즈 싱어로 성장했다. 뉴욕에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부른 후, 엘라 피츠제럴드의 한마디는 그녀가 콤플렉스를 마주하고 자신만의 노래를 향한 항해를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뉴올리언즈를 그리워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나요? 흉내내는게 아니라 진심을 담아야죠. 빌리는 진심으로 노래했어요.”
그 이후 그녀는 미국의 주요 재즈 스탠더드 넘버를 스웨덴어로 개사해서 부르거나, 옛 시절부터 전해져 오는 스웨덴 노래들, 또는 그 시절에 유행했던 새로운 스웨덴 노래들을 재즈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등, 스웨덴인만이 해석하고 그 느낌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는 Swedish Jazz장르를 정립해 나갔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은 자명하다. 여느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그녀도 때로는 기민함과 예민함에 잠식당하곤 했으니.
그 절망이 극에 달했을 때 불렀던 노래의 제목은 Trubbel. 이 노래는 1960년 스웨덴의 포크 싱어송라이터 올레 아돌프슨(Olle Adolphson)이 발표한 이래로 여러 가수들이 다시 불렀는데 원래 곡이 다소 투박하고 짖궂은 느낌을 가졌다면, 모니카 제털룬트의 목소리를 통해 좀 더 애잔하고 차분한 비극으로 승화되었다. 하지만, 곡의 중반부부터는 경쾌한 스윙 리듬을 차용하여 한없는 우울함에 빠지는 대신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관조적인 분위기를 더 깊게 풍긴다.
영화를 보았을 때는, 노래의 일부만 등장하였기에 제목이 의미하듯이 덧없고 허무한 인생을 체념하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사의 의미를 찾아 보니 생각보다 구체적인 서사를 노래하고 있었다. 원곡자인 올레 아돌프슨에 따르면, Trubbel은 그의 또 다른 노래 <아담과 베라의 발라드(Balladen om Adam och Vera)>의 후속 이야기이다. 스톡홀름을 배경으로 하는 이 발라드는, 공군 소속 공무원으로 무료한 시절을 여자들이나 만나며 방탕하게 살던 아담이 베라라는 여인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 둘의 인생은 동화처럼 영원히 행복한 엔딩이 아니었다. <아담과 베라의 발라드> 가사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다혈질적이고 저돌적인 아담의 성격은 이들의 사랑에 파국을 불러오고, 이 파국의 이야기가 Trubbel의 중반부부터 묘사되어 있다. 노래의 첫 번째 절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은 여름이지만 자신의 정원은 가을이고, 어둠고 춥기만 하다는 자조적인 인생을 묘사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Där ute doftar det av sommarens alla dofter.
Där är det sommar, men här inne är det höst
그리고 시작되는 2절의 첫 번째 문장과 끝을 맺는 마지막 문장.
“나는 여기서 너와 고양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
죄의식의 삶과 그 어느 구원도 찾아오지 않는...“
Jag levde lycklig här med dig och mina katter
ett liv i synd och utan omsorg att bli frälst
“이 모든 것은, 네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했어.
나보다 훨씬 더 낫다고 말했던 그 사람과 말이야.“
Det börja med att du bedrog mig med en anna
en som du sa mar mycket finare än jag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그의 절친한 친구가 아담을 베신하고 베라와 만나고 있었던 것. 아담과 베라의 사랑에 누군가가 끼어들었고, 행복했던 삶을 회상하는 아담의 시점서 비추어보면, 이미 그 행복했던 삶은 휘발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3절에서는, 베라가 아담에게, 그 친구가 아담보다 더 나은 이유가 잠깐 등장하고 아담의 증오는 극에 달한다.
“네가, 그가 너에게 보트를 주었다고 말할 때까지
나는 그 친구와 철저하게 비교되었고
나의 정원은 죽음으로 가득찼지.“
그리고 다음 절에서, 그는 무언가 끔찍한 계획을 실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계획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나는 재킷 아래에 망치를 숨기고,
실크 스카프를 두른 그는 나에게 인사했지“
Jag hade hammaren beredd under kavajen
när han kom ut i sidenscarf och sa: God dag
“나는 말을 더듬거렸고, 무슨 말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해.
그가 코냑과 담배를 제안했고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지.“
Jag bare stammade, nu minns jag inte vad
Och jag blev bjuden på cognac och på cigarrer
och kunde inte få mig till att säga nej
“그리고 친해하는 사이였던 우리는 이혼을 했고,
네가 떠나며 놓고 나간 물건들을 챙겼지“
Och när vi skildes var vi bästisar och bundis
och jag tog saker som du glömt med hem till dig
결국 그들은 헤어지고, 마지막 절에서, 아담은 폐허로 가득찬 이탈리아의 폼페이를 거닐며,
이 모든 상처에도 불구하고 베라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폐허 속의 폼페이를 거닐며
우리의 지난 날의 흔적을 짓밟고 있어.“
Jag går omkring i mitt Pompeji, bland ruiner
jag trampar runt i resterna utav vårt liv
이 모든 사랑의 부재와, 균열과 휘청거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원히 널 사랑할거야.
Och trots all kärleksbrist och trasighet och fransar,
dig skall jag älska livet ut, dig har jag kär.
노래의 끝맺음을 장식하는 마지막 문장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하는데, 이 문장의 바로 앞에 나오는 구절에서 무언가 죽음의 잔상이 드리우는 듯 했다.
우리는 늙을 때 까지 크리스마스 화환을 걸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갈거야.
Nej, åt det gamla skall vi binda vackra kransar
och ta vårt liv och mina katter som de är
이 문장을 보았을 때 문득 한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로베르토 로셀리티 감독,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이탈리아 여행>. 불화로 인해 위기에 놓인 한 부부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폐허가 된 한 도시를 방문하는데 그 곳에서, 죽음 직전까지 서로를 껴안고 있었던, 커플로 추정되는 유해를 발견하고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화해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노래의 가사에서 왠지 크리스마스 화환으로 서로를 묶고 봉인하며, 고양이들과 함께, 영원히 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화자의 다짐이, 영화 속 유골을 연상시켜 죽음의 이미지로까지 확장되었던 것 같다. 이 영화가 1953년에 발표되었는데, 문득 이 노래를 만들면서 혹시 그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았을지 궁금해졌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올레 아돌프슨은 마치 이 남자를 한편으로는 안쓰러워하면서도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을 비웃는 듯이 이야기하는데, 모니카 제털룬트는 이 남자의 비극을 좀 더 진지하게 인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올레 아돌프슨은 남성 화자로 서술되는 이 노래가, 여성의 목소리로 재탄생했을 때 과연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모니카 제털룬트는, 4절에 망치가 등장하는 가사에서, 망치를 재킷이 아닌 코트에 숨겼다고 가사를 변경하여, 여성 화자로서의 설득력을 부여하고자 했고, 1971년 Monica 앨범에 이 곡을수록, 이제는 원곡을 능가하는, 모니카 제털룬트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시 영화 <왈츠 포 모니카>로 돌아와서. 모니카 제털룬트의 환생이라고 믿어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 낸 에다 마그누슨이 부르는 Trubbel은 모니카 제털룬트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처음에 올레 아돌프슨의 원곡을 들었을 때 그 분위기의 온도차에 놀랐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가사의 뜻을 보고 다시 놀랐던 이유이기도 하다. 여름이 찾아오지 못하는 잿빛 가을로 가득한 인생과 그러한 인생으로 귀결되게 했던 사랑의 이야기. 스톡홀름은 2011년 여름에 방문했을 때, 환한 햇살로 가득했었는데, 언젠가 초가을로 접어들고 바람이 마음을 시리게 하는 스톡홀름의 거리를 걸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