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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Oct 08. 2024

무소식이 꼭 희소식은 아니더라

생일축하 했다 함께 울먹인 날


지난주엔 소식 끊긴 지 좀 되었지만 꽤나 친하게 지냈던 후배 동생의 생일이 있었다.


몇 주 뒤 주겠다며 나에게 돈 빌려가고선 안 갚은 지 이미 10년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 친구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으리라 생각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언젠가 같이 아는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있어 시내로 불러내 술 한잔 같이한 게 벌써 4, 5년 전의 일이다.

전화통화였던가,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때는 2년 정도 지나간 듯한데.. 그때도 동생의 상황이 좋지가 못하였는지라 내가 먼저 자주 연락하기도 좀 거시기한 상황이었다.


작년엔 깜빡하고 생일축하 메시지를 주지 못했었기에, 올해 생일은 축하의 말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과 함께 잘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하여 겸사겸사 안부 문자를 남겼다.


          “ 생일 축하한다 OO아!  

             살아있지?

             건강 잘 챙겨라 ”


너무나 오랜만이라 전화를 하기에는, 혹여 돈 갚으라는 채무상환 독촉으로 생각하거나 그 부분이 생각나서 전화받기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그냥 문자로 축하해 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러고 나서 잊어버린 채 며칠이 흘렀다.


오늘 문득 걸려온 전화. 마침 병원에 좀 갔던 참이라 전화 온 줄 몰랐다가 몇십 분 뒤에 부재중 전화 표시를 보고선 지금 병원이니 한 시간 뒤에 통화하자고 답을 보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결된 통화..  휴대폰 너머 동생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사람이 제일 늦게 늙는 부분이 성대(목소리)라더니..  괘씸한 구석도 조금은 있었지만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러려니 하고 빌려간 돈은 못 받는 것으로, 그냥 준 셈친지 이미 오래되었었고, 변함없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런데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한 후배의 말은 심상치가 않았다.  본인도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인데.. 최근에 아버님 어머님 두 분 모두 많이 편찮으시다고 한다.


어머님은 허리와 무릎이 안 좋고 최근 무릎수술을 하시고 회복하는 중이라 하는데 아무래도 거동이 많이 힘드실 듯하다.

더 걱정인 것은 아버님.. 8월경에 아버님께서 집을 나선 후 돌아오질 않으셔서 이 녀석이 아버님을 찾느라 그 뙤약볕에 동네를 2시간 넘게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생전 처음으로 생긴 일..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원에 모시고 가보니 알츠하이머 3기 진단이 나왔다는 것이다.


진단은 그러하지만 그나마 그동안은 다행이었달까, 그렇게 이런저런 증상을 통해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없었단다.  거동도 잘하시고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잘 몰랐다고 하는데.. 이렇게 큰 증상 없이 병이 진전되어 알츠하이머 3기 진단을 바로 받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도 이게 병원 진료 및 치료의 과정에서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최종 ‘치매’ 판정을 받은 상태는 아니란다. 퇴행성 치매이든 알츠하이머든 간에 그 경과와 정도에 따라 ‘치매’로 인정되는 단계가 다 다른가 보다.


분가해서 부모님과는 따로 떨어져 살고 있다가 최근 두 분이 모두 안 좋으셔서 후배 녀석이 바쁘게 양가를 왔다 갔다 하며, 거의 부모님 댁에서 지내는 것 같은 눈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태어나서 이렇게 아버지와 대화를 오래 나눠보는 게 처음이란다. 다행히 아직 스스로 거동하시는데 큰 불편함은 없고, 얼마 전처럼 집 나가서 못 찾아오신 것도 처음이었던지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속이 어떠할지.


그러면서 이러다 아버지가 자기 못 알아보는 순간이 올까 봐 겁이 난단다. 다행히 지금 수개월째 의료대란인 상황인데, 아마 기존에도 전공의 비중이 많지 않은 병원이었던 건지, 병원도 제대로 돌아가고 있고 의사 선생님도 좋은 분을 만난 것 같다고 하니 그나마 참으로 다행이다.  잘 치료받으면서 지금처럼만, 더 증상이 악화만 안되게 지금 정도 상태로 유지만 돼도 좋겠다는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님께서 알츠하이머 3기 진단을 받았을 때 제수씨가 이제 아버님 요양병원 알아봐야겠다고 했단다. 그 얘기를 한 뒤에 수화기 너머의 우리 둘 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 녀석 표정이 눈에 선하다.

와이프의 말에 그래서 넌 뭐라고 했냐는 불안한 나의 물음에 동생이 답한다. 마음 같아선 때려 엎고 싶었지만 잘 참았다고. 그냥 ‘치매로 요양병원 한번 들어가면 사람 죽어서야 나오게 되는 건 알고 하는 말이니?‘  이렇게 한마디 하고 말았단다.


아.. 정말 잘했다. 칭찬을 해줬다. 제수씨를 탓할 문제는 아니니 잘했다고. 더구나 같이 도와서 부모님 보살펴 드려야 할 시기에 서로 감정 상하게 해서 좋을게 뭐가 있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화나고 섭섭한 말인지는 나도 안다고..


말을 별생각 없이 뱉는 사람들이 있다. 의도야 그렇지 않은데 단순히 부주의한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 인정머리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역지사지, 상대의 처지와 입장을 고려해서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고 말을 건네면 참 좋을 텐데.. 하긴,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잘만 한다면 인간 사회에 불화와 갈등, 싸움이 왜 일어나겠는가. 당장 나부터도 잘 못하고 있는데 말이지..


말이란 것이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당연히 안타까워하고 함께 슬퍼함이 먼저. 그리고는 아버님에 대한 치료와 생활케어에 집중하고 가사 일을 어떻게 분담할지 그런 걸 의논하고 그렇게 한두 달이라도 해보다가 정 힘들면 그때 가서 꺼내도 될 이야기를, 굳이 저렇게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친부모라도 그렇게 말했을까. 상대방으로서는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드는 법.

제수씨의 이야기가 가슴을 후벼 파, 매정하고 야속하게 느꼈을 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지금 심정으로는 아버지 모시고 산에 들어가서 나는 자연인이다 처럼 살고 싶단다.  저런 말을 하는 그 심정이 어떠할까.  그리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위독한 아버지를 모셔봐서 동생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 마음, 그 심정이 그대로 내게 전해진다. 얼마나 힘들고 무섭고, 또 후회가 밀려오고 있을지.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고 내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해 티를 내지 않으려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운전 중에 하는 통화였기에 닦지 못한 눈물 한 방울이 기어이 흘러내린다.


사람들과 연락 끊은 지 오래고 생일도 다 비공개로 해놨는데 어떻게 연락을 줬냐고 고맙다고. 당분간 계속 얼굴 보긴 힘들지만 형 목소리 듣고 통화하고 싶어서 연락했는데, 이런 얘기하려고 한건 아닌데 우울한 얘기만 해서 미안하단다.  오며 가며 혹시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형 사무실 근처에서 연락할 테니 커피라도 한잔 하자고..


지금 이 녀석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지, 얼마나 피곤할지 눈에 선하다. 그렇지만 하필 두 분 같이 아파서 사람 진 빠지게 한다고 불평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버지에 대한 회한을 얘기하는 착한 녀석이다.  아버님 모시고 산에 들어가서 둘이 지내고 싶다는 말에서 더 울컥해 버렸다.


바로 내가 15년 전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야 뒤늦게 그깟 직장이 뭐라고 다 때려치우고 아버지 옆에서 투병을 돕지 못했는지, 그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병원 편안히 모시고 다니고 약 타오고, 독한 항암제에 잘 버티시도록 맛있는 거 몸보신되는 거 잘 드시게 하고.. 별다른 게 아니더라도 옆에 붙어 앉아 아버지 말동무하며 그런 병구안만이라도 전념했더라면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후회.


“기운내고 너 몸 잘 챙겨라. 아버님 어머님 두 분 다 챙기느라 이 집 저 집 왔다 갔다 하다가 너까지 탈 나면 더 큰일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몸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데..  신체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고 방심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마음 잘 챙기길 바란다. “


휴.. 이놈의 세상은 좋은 사람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서 이럴 때는 정말 화가 난다.


아버님 어머님 두 분 모두 부디 건강해지시길..

OO아! 잘 버티고, 잘 이겨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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