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과부하 시대의 올바른 선택에 대하여
사무실에 도착해 에어컨을 켜려 리모컨을 들여다보다 이상한 장면을 마주했다. 액정에 표시될 수 있는 모든 기능이 한꺼번에 떠 있었다.
냉방도, 제습도, 절전도, 인체 감지도, 스마트 케어도 모두 동시에 켜진 상태.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채, 너무 많은 것을 켜버린 상태. 그 화면은 표시되어 있었지만, 실제론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기온이 너무 낮아서, 건전지의 성능이 떨어져서 생긴 일시적인 오류인 걸까. 마치 웹사이트 구축 제안서에 한 화면에서 전체 메뉴를 보여주는 사이트맵을 펼쳐 놓은 것 같다. 모든 기능 전체보기. 그 작은 액정 안이 꽉 차서 버튼별로 기능에 따라 뜰 내용 항목들이 한눈에 보이는 것은 낯설고 영 불편해 보인다.
모든 기능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 에러 상태란 아이러니. 그 순간, 이 리모컨의 상태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보는 넘쳐 나는데, 선택은 멈춰 선 시대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의 대홍수 속에 살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 학교와 학계, 국제기구, 언론과 미디어 등 모든 생산 주체들이 생산하는 보고서, 논문, 자료들. 문인과 작가들의 창작물, 예술가들의 회화와 조각 등 다양한 작품들, 가수와 연주자들의 노래와 음악들, 영화사와 OTT가 뽑아내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방송국이 만드는 뉴스와 시사, 예능, 다큐멘터리..
인류가 생산해 내는 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보 콘텐츠들을 쌓아 올리면 에베레스트산을 넘어 마리아나 해구까지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여기에 개인들의 차원에서 만들어 내는 각종 콘텐츠와 숏폼으로 생산되는 수많은 자극적인 영상들은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블로그 등 다양한 소셜 미디어 채널을 통해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보여지고, 이제는 AI가 생성해 내는 정보까지 흘러넘친다.
이미 AI가 만드는 정보가 인간이 만드는 정보의 양을 넘어섰다는 보도기사를 최근에 본 기억이 있으니 그야말로 정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보는 넘쳐 나지만 정작 무엇을 믿어야 할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정보가 늘어나는 만큼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음식배달 플랫폼에 들어가면 다 비슷비슷해 보이면서도 끝없이 나열되는 수많은 음식점과 음식 메뉴들 속에서 뭘 골라야 할지 고민된다. 별점과 리뷰 같은 평가를 참조해 고르려 해도 사용자의 의견이 다 제각각이고 순수한 리뷰가 아닌 동원된 평가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것도 무의미해진다.
나른한 휴일, 재미있는 영화나 좀 볼까 싶어 OTT에 들어가면 각종 콘텐츠는 끝없이 이어지는데 정작 볼만한 건 못 찾겠다. 이런 기분, 나만 느끼는 것일까.
모든 옵션이 켜져 있지만 그중 무엇 하나 확신을 갖고 누르지 못하는 상태. 리모컨 속의 에러 화면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머릿속은 종종 그렇게 정보의 홍수로 유발된 선택장애 상태에서 멈춰버리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다.”
"영화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뭘 봐야 할지 모르겠어, 프로그램이 많긴 한데 볼만한 건 없어"
"완전 맛있다고 하는 리뷰가 더 많긴 한데, 포장에 문제 있어 국물이 흘렀다.. 완전 별로다.. 이런 리뷰도 종종 눈에 띄니 어디서 배달을 시켜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정말 그럴까?
문제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기준의 부재’ 라 생각한다.
리모컨에 기능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능을 써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할 때 문제가 되는 것처럼, 정보의 핵심은 양이 아니라 선별 기준이 되어야 할 터.
기준이 없으면 사실과 의견이 섞이고 전문성과 선동이 뒤엉키며,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크게 말하는 사람’에 끌려가듯이,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기준을 제대로 세우지는 못한 채, 쉼 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현대의 미디어 환경은 거짓 정보가 힘을 얻기 딱 좋은 구조이다. 가짜 뉴스와 왜곡된 정보는 정보가 부족할 때보다 정보가 과도할 때 더 쉽게 퍼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피곤할수록 긴 설명이나 복잡한 검증보다는 짧은 단정, 간단한 결론을 원한다. 거짓 정보는 복잡하지 않다. 검증보다 빠르고 의심보다 시원하다.
그래서 정보가 많아질수록 진실은 더 조심스러워지고 거짓은 더욱 자신만만해진다. 자극적인 제목이나 확신에 찬 단정, 분노를 자극하는 문장에 눈이 더 가게 되고, 더 빨리 선택받게 된다.
독재에 대한 환상과, 마치 사고실험도 없이 비이커에 먼저 아무거나 들이붓고 보는 철없는 아이처럼,
잘못된 리더의 깽판 앞에 때를 만난 듯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사이비 종교세력, 극우의 탈을 쓴 극우조차 아닌 이상한 사람들, 돈벌이를 위해 이념과 신념으로 포장한 유튜버들..
그들이 목청 높이는 극단적이고 아무런 검증도 안된 막무가내식 썰들 앞에서, 그런 정보들은 더 이목을 집중시키고 어떤 사람들은 그 정보를 선택해서 심취하여 다른 정보들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모든 기능과 모드가 다 표시된 리모컨 앞에서 우리는 결국 아무 버튼도 누르지 못한 채, 알고리즘 기반으로 추진되는 자동 모드에 자신을 내맡겨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의외로 단순하지 않을까.
정보를 더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정제해서 덜 받아들이는 것.
정답은 새로운 버튼이 아니라 꺼도 되는 버튼을 알아보는 감각이라는 것을.
- 우리에겐 정보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모든 뉴스를 실시간으로 알 필요는 없으며, 일주일에 한 번 정리된 정보로 충분한 주제도 많다. 정보를 줄이는 일은 세상에 무관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는 일이 된다.
- 단순 출처보다 ‘과정’을 보자.
출처도 의미가 있지만, 출처 그 자체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말자. 결론의 내용보다 그 결론에 이르는 논리와 근거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올바른 정보를 취사선택하는데 근력을 키워준다.
- 내 삶과의 거리를 점검하는 것도 정보를 덜 받아들이는 데 있어 중요하다. 이 정보가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내 의사결정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지, 아니면 별 상관은 없는데 쓸데없이 불안만 키우는 것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나만의 판단 기준을 정리해 보자
“나는 이런 정보는 믿지 않는다”
“이런 방식의 말은 걸러낸다”
나만의 기준과 규칙을 언어로 정리해 둘수록 거짓된 정보나 불필요한 정보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리모컨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모든 옵션을 끄고 다시 하나씩 선택해야 한다. 혹은 건전지가 거의 다 닳아서 전원공급이 부족해 액정 오류가 난 것은 아닌지 건전지를 교체해 보는 점검도 필요하겠다.
이렇게 모든 기능을 끄고, 하나만 남기는 용기
근본부터 되새겨 보는 성찰,
우리의 삶에 대한 자세에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태도가 아닐까.
정보 과잉의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빠른 습득이 아니라 과감한 제거라는 사실. 모든 버튼을 다 눌러보려 하지 말고, 지금 나에게 필요하고 그에 적합한 하나의 기능을 찾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정보는 나를 뒤흔드는 소음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움직이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