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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Nhere Apr 25. 2019

봄날의 시작,
그러나 봄은 오지 않았다.

치매의 기록


난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 앞에 어머니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의 얼굴을 한번 보고, 남산만 한 내 배를 한 번 보고

(그 시점엔 줄곧 있는 일이라 그 시선이 불편하지도 않았지만) 나에게 측은한 눈인사를 건넸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의사 선생님은 일반적인 질문부터 시작했다.

난 최근 있었던 '약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바로 언제부터 그러셨는지를 물어왔다. 


'언제부터라니....?' 

난 이 질문이 이해되지 않았다. 

언제부터 어머니가 아무 약이나 막 먹기 시작했느냐고 묻는 건지, 

언제부터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잊기 시작했냐고 묻는 건지, 

언제 처음 치매 증상을 의심했는지를 묻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달 전 있었던 '구정 사과 사건'을 답으로 내놨다.


대답을 하면서도 시어미니가 듣고 계신데 그냥 막 대답을 해도 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보호자라고 와 있는 며느리가 앞에 있는 의사 양반과의 대화를 하는데

'당신이 치매 같아요. 약을 아무 때나 먹고, 사과를 먹어놓고 기억을 못 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다 듣고 있을 시어머니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답을 듣고 의사 선생님은 이제 시선을 시어머니에게 돌리셨다. 

그리곤 어머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어르신 오늘이 몇 월이예요?"

"지금이 무슨 계절이에요?"

우리가 평소에 타인에게 지금 계절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본 적이 있던가.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던가. 

영어회화 초급에 나오는 계절이 뭔가요? 오늘이 몇일인가요? 

이런 질문은 말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하는 질문들 아니던가.

유치원생도 대답하는 질문. 


'그것도 모르실까? 그 정도로 정신이 없으시진 않은데....

의사가 너무 중증 치매 환자처럼 취급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기분이 나쁘질 꺼 같았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가. 지금이 무슨 계절인가. 

그런 질문을 받고 당황해하시는 시어머니 얼굴을 난 '어서 대답하세요~' 란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0.1초 만에 대답이 나올 거 같던 질문에 시어머니가 선뜻 대답을 못 하고 계셨다. 


'어??!!!' 

이것도 대답을 못 하신다고? 난 어머니가 질문을 못 들으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어머니께 질문을  반복했다. 

"어머니, 오늘이 몇 월이냐고 물으세요. 계절도요?" 

...

"애미야. 니가 알잖니 니가 대답해라"

그 순간 의사 선생님이 끼어드셨다. 


"어르신이 대답해 보세요. 어르신 오늘은 몇 월 몇 일인지 아세요?" 

...

"글쎄...내가 이렇게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겨울인 거겠죠. 

날짜는 핸드폰을 봐야 하는데... 핸드폰이 어딨더라. 애미야 핸드폰이 어딨니?"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처음에는 이걸 질문이라고 하시나 했는데 그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을 못 하신다. 


...

사과나 약 따위를 많이 먹었든 먹지 않았든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당하신 거다. 


"오늘 무슨 반찬을 드셨어요? "

"오늘 무슨 요일일까요?"

"지금 몇 시나 됐을까요?"


그밖에 질문들에도 어머니는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 하셨다. 


"지금부터 3가지 단어를 말씀드릴게요. 의자, 비행기, 사과. 잘 기억하고 계세요. 의자, 비행기, 사과!"


그리곤 의사 선생님은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바꿨다. 

가족 이야기, 아들 이야기, 옆에 서 있는 며느리 이야기.. 

그리 길지 않았다. 1,2분 정도 후에 선생님은 시어머니께 3 단어 중 기억나는 단어가 뭐냐 물으셨다. 

"...         의자...            비행기였나......." 


" 네, 괜찮아요 어르신." 


문진이 더 이어졌다. 

난 어머니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2년 전쯤 시아버지와 시할머니가 거의 동시에 돌아가셨고 

그 후로 혼자 지내시면서 살이 10KG 이상 빠지셨다고. 

몇 달 전 우리가 아랫집으로 이사를 와서 아침저녁으로 뵙고 있다고. 

그러다 보니 뭔가 달라 보이시더라고. 


"알츠하이머성 치매 같아요. 치매 검사와 MIR를 찍어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어요. 

MIR를 찍는 이유는 혈관이 막힌 곳이 있나, 뇌의 크기가 줄어들어 든 곳이 있나 찾아보는 것인데 

아마 뇌가 크기가 줄어든 게 MIR에서 보일 거예요. 그게 알츠하이머예요." 

  

치매 검사로 이어졌다. 

보호자와 당사자가 따로 진행되며 검사자가 묻고 우리는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보호자인 내가 먼저 진행했다. 

보호자에게는 평소 생활 습관에 대한 이야기, 깜박 거리는 경우의 빈도수 등 많은 문항(지금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몇 쪽에 걸쳐 있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환자에게는 간단한 더하기와 같은 숫자 계산, 집주소 등 생활 문제, 기분 등 감정 영역까지.

길게는 1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처음 하시는 분들은 많이들 힘들어하신다고 한다. 

갑자기 너무 많은 질문들에 대답을 해야 하니...  

시어머니도 머리가 아프시다고 잠시 쉬었다 검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검사는 1~2년에 한 번씩 이뤄진다. 추적 관찰을 통해 정도의 차이를 보는 듯하다. 

다음 MIR 검사 날짜를 예약하고 병원을 나섰다.

긴 하루였다. 




봄이 오고 있었지만 봄은 오고 있지 않았다. 







1. 시어머니는 4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습니다. 

2. 제일 처음 치매가 의심될 때부터 지금까지의 치매 행동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3. 저처럼 처음 치매를 겪는 가족 분들에게 "경험의 공유, 위로"라는 마술을 기대해 봅니다. 





참고 1. 

현재 병원이나 보건소 등에서 널리 쓰이는 치매 선별 검사는 숙련된 전문가가 실험을 안내해야 하는 데다 검사를 진행하는 데 1, 2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평소 접하지 않은 문제 유형으로 인해 실험에 참여하는 고령자들이 정신적으로 힘겨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센터를 방문해 치매 검사를 원할 경우 1단계로 선별검사(MMSE-DS)부터 시작한다. 이 검사는 기초적인 단계로 ‘올해가 몇 년도인가’ ‘지금 무슨 계절인가’ 등 간단한 질문들로 구성돼 있다. 1단계 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면 2단계 진단검사(SNSB)를 진행한다. 만약 2단계에서 치매가 의심된다면 치매안심센터의 의사가 소견서를 작성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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