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wNhere May 20. 2019

이러다 치매 걸리겠다

치매의 기록

조금씩 시어머니 본인도 깜박깜박하는 일들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셨다. 

물어본 말을 다시 물어보고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보면 

스스로도 물었던 말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드시는 듯했다.  

예를 들어 '무릎이 아프다 무릎 주사를 맞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면 

나의 대답은 '아직 시기가 안됐어요'였다. 

무릎 주사 맞으러 병원 가야겠다.
안된다.
가야겠다.
안된다.
왜 안되니?
6개월이 안됐어요. 

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 내가 물어봤었지? 내가 이렇게 정신머리가 없다...로 끝이 난다. 


그러다 그게 이내 마음에 걸리시면... 


'이러다 치매가 올까 봐 무섭구나. 누굴 고생시키려고,,, 

그전에 죽었으면 좋겠는데...

어디 아픈데 없다가 조용히 누워서 죽었으면 좋겠다.'


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래서 어머니 약 드시는 거잖아요. 기억력 좋아지라고..."



어느 날 아침 약을 드시다가 물으신다. 

"근데 애미야 내가 이 약은 왜 먹는 거니?"

"깜박깜박하시는 거 때문에요.  그 약 먹으면 좋아진데요."

"이러다 치매가 올까 봐 무섭구나....."


시어미니도 치매는 무서운신가 보다. 

치매를 앓다 94세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시어머니를 옆에서 돌보셨으니  

본인이 치매가 올까 두려우신 거다. 

그러나 치매는 오고 있었고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약으로 나마 천천히 오라고 치매를 달래고 있는 것뿐. 


하루하루를 똑같이 반복적으로 지나고 있었다. 

별일이 없으니 병도 멈춘 거 같았고 

같은 질문을 계속하시면 같은 대답을 강약을 바꿔가며 대답해주고 

한 번씩 기억력이 좋아지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의 둘째는 돌이 지났고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나는 오전에 늦게 출근하면서 두 아이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냈고 

저녁에 아이들을 돌봐 줄 보육도우미를 구했다. 

보육도우미 이모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가 2명인데 친할머니가 들락거리는 집이라고 하니 싫다고 하는 분들도 계셨다. 

어렵게 구한 도우미 이모는 매우 착하셨지만 나이가 있으셔서 

아이 2명의 케어하는 일은 쉽지 않으셨을 거다. 

저녁밥을 먹는 동안 핸드폰에서 나오는 만화가 아이들을 집중시켰고 

그 이후 퇴근하실 때까지 TV가 늘 켜져 있었다. 

신랑이나 내가 좀 일찍 퇴근해서 들어오는 날는 이모님을 일찍 퇴근시켜 드렸었는데 

그때 되면 만화 없이 밥을 먹이는 일이 쉽지 않을 만큼 아이들이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가 없을 때도 시어머니는 가끔 내려오셔서 앉았다 가시곤 하셨다는데 

보육 이모님도 시어머니의 증상을 느꼈다고 하니 약을 먹어서 좋아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사고가 났다. 


또다시 돌아온 김장 시즌이었다. 

요리를 접으셨으니 당연히 김장도 안 하실 거라  생각했다. 

나도 김치를 담그질 못 하니 우리는 친정에서 김치를 얻어먹고 

시어머니에게는 김치를 사드리곤 했다. 

작년까지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시어머니와 같이 김장 준비를 했고 

말씀하시는 대로 내가 비비고 무치고 해서 김장을 했었더랬다. 

때마침 내가 진행 중이던 프로그램도 끝이 나서 같이 고생했던 팀원들과 엠티를 가기로 했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신랑 없이 금 토 1박 2일 엠티를 떠났다. 

주변에서 신랑에게 휴가를 준거라며 신랑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열심히 운전을 해서 MT 장소로 가고 있는데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김장거리를 사 왔다는 전화였다. 

배추니 무니 하는 것들을... 

"김장 안 하는 거 아니었어?"

신랑이 내가 묻는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시어미니 집에 김장 재료들이 있더라는 거다. 

그래서 신랑이 나도 없다고 하지 말자 했더니 매년 하던 건데 며느리 없다고 안 하냐며 

혼자 하시겠단다. 

놀란 나는 어차피 오늘은 배추만 절이고 속은 내일 하면 되니까 

엠티 끝내고 2시쯤 올 테니까 그때 하자고 했다. 

그렇게 말씀드리라고... 김장날 엠티 간 며느리가 됐다. 

저녁때 다시 통화해보니 내일 동서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 걱정 말라고... 

걱정 말라니..  

다시 한번 '나 오면 시작해라.. 2시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를 채차 강조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조용하다..  이상하다.. 

집으로 출발하면서 전화를 거니 큰 며느리 없다고 김장을 못 하는 게 말이 되냐며... 

그냥 하면 된다고 김장을 시작하셨단다. 

마음이 바빠졌다. 2시간쯤 걸려 집에 도착해 보니... 

이미 다 끝나 있었다. 바닥은 정리 중이었고 김치들도 모두 김치냉장고 안에 들어가 있었고. 

동서와 도련님은 서둘러 짐을 싸고 있었다. 집에 간다면서... 


분위기가 냉랭했다. 

도련님 목에 긴 상처 자국과 일회용 밴드가 붙어 있었고 그 안으로 핏자국이 있었다. 

'김장도 했는데 점심이라도 드시고 가세요'라는 내 말에 '그냥 갈게요'라는 대답과 함께 

도련님 식구들을 태운 차는 출발했다. 

시어머니도 별말씀이 없으시고 김장이 잘 된 건지 왜 이리 일찍 시작했냐는 내 물음에 대답도 없으셨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분명 사고가 있었다. 


사건은 이랬다. 

안 하기로 한 김장을 준비하는 통에 

우리 신랑과 도련님, 동서가 아침부터 넘어와 준비를 했지만 동서도 애가 둘이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도련님도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을 텐데.. 그러면서 볼맨 소리를 좀 한 모양이다. 

안 하기로 했던 김장을 왜 하느냐. 내년엔 하지 말자 등등 

그러는 와중에 시어머니를 나를 계속 찾으신 거다. 

회사에게 워크숍 갔다가 오고 있다는 대답을 수 없이 했을 것이다.

'큰애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 갔니?'

'워크숍이요. 애들이랑 지금 오고 있어요.' 

'큰애가 있어야 잘 아는데... 언제 오니?'

'큰형수는 왜 그렇게 찾아? 우리끼리 해'

... '그러니까 김장은 하지 마'

의 반복... 



말이라는 게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면 좋은 의미의 말도 짜증 나기 마련이다. 

같은 말을 물어보는 것도 짜증, 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것도 짜증, 못 알아듣는 것도 짜증 

그러다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시어미니가 도련님의 멱살을 잡으신 모양이다. 


이제껏 시어머니가 욕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감정의 컨트롤이 안되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다운되고 그 감정을 겉으로 가감 없이 드러냈다. 

시어머니께 왜 그러셨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더 충격적이었다. 

"몰라"

본인이 아들에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유를 모르시겠다는 거다. 

싸우신 것 까지는 기억을 하시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였다. 


또 한 번 치매의 진행에 있어 큰 꺾임이 예상됐다. 


** 치매 발견 만 1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1. 시어머니는 4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습니다. 

2. 제일 처음 치매가 의심될 때부터 지금까지의 치매 행동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3. 저처럼 처음 치매를 겪는 가족 분들에게 "경험의 공유, 위로"라는 마술을 기대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츠하이머의 진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