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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Nhere May 27. 2019

딸아이가 할머니처럼 대답한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치매의 기록

시어머니의 #알츠하이머를 비교적 빨리 발견한 우리 가족은 가벼운 약물 치료 부터 시작했다. 

불면증과 같은 가벼운 증상들은 자리를 잡았고 

감정 기복의 변화는 시시때때로 나타나는데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처신하며 지낸다.  

큰 사건이든 작은 사건이든 그 사건을 온전히 기억하시는 일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하루의 시간들을 대부분 집에서 보내시는데.. 

그것이 안쓰러워 여기 저기 활동을 제안해보지만 

그것도 성격이 맞지 않으셨다. 

누구나 좋아한다는 노래교실도 뒷산 체조교실도 한달 이상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들은 이 동네에서 10년 넘게 같이 살면서 친하게 지내던 이웃 할머니들.. 

그 중 한 할머니가 #치매를 앓으셨고 그 집엔 매일 요양사가 출근을 했다. 

그 할머니가 11층에 사신다고 해서 우린 그 할머니를 11층할머니 라고 불렀다. 


11층 할머니도 자녀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계셨다. 

11층 할머니네서라도 시간을 보내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요양사의 케어를 받기 시작하신 11층 할머니와 요양사 

거기에 옆 동에서 사시는 일명 '일할머니' 까지 모이시면 4분이서 

밥도 같이 해 먹고 tv도 같이 보고 가끔 나들이도 나가고 

시간 보내기엔 딱이였던 모양이다. 


그 당시 11층 할머니의 증상은 

우리가 #이쁜치매라고 말하는 정도의(물론 그 집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관찰한 적은 없지만) 상태셨다. 

인사를 드릴때 마다 환하게 웃으시며 반려견과 함께 지내고 계셨다.

11층 할머니와 요양사도 매일 2분이서 계시는 것 보단 4분이서 계시는 게 들 지루하실테니, 

11층은 그렇게 사랑방이 됐다.  

시어머니는 자연스럽게 그 집에서 점심과 간혹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고 오셨고, 

11층 할머니의 자녀분들도 그렇게 할머니들끼리 어울려 계시는 것에 감사해했다. 


그렇게 안정감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안정감에 금이 갔다.  

이번엔 큰 딸아이가 문제였다.   

그때 딸아이 나이는 5살이었고,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기고 다 컸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변화의 시작은 이런 생활을 시작한지 10개월쯤 됐었을 때였다. 


2살짜리 동생은 아직 말도 못 했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보육도우미 이모할머니(연세가 있으셔서 우린 이모할머니라고 불렀다)가 자신을 기다렸다. 

이모할머니는 동생 밥먹이고 목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고, 친할머니는 뭘 물어봐도 잘 모르시거나 깜박깜박하다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유치원에서 집으로 오면 딸이 하는 일은 손씻고, 밥먹고, 

엄마나 아빠가 올때까지 EBS 를 보고 있는 일이 전부였다.  

(* 이모할머니에 대한 불만은 없다. 내가 옆에 있었어도 TV를 틀어놨을 테고, 조금 더 어린 동생에게 손이 더 많이 갔을 것이고, 동생을 케어 하느라 첫째에게 손이 덜 갔을테니...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을 안다. 나의 선택, 우리 부부의 선택에 따른 작용 반작용 같은 일이라 여긴다.)

TV가 없으면 밥을 먹이는 일이 힘들어 졌고, 엄마 아빠의 말을 들어도 반응하지 않았으며,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딸아이는 점점 말을 하기 싫어했다

일찍 퇴근 하고 딸아이와 같이 있는 날이면 

"유치원은 어땠어? 친구들은 누가 젤 좋아?"

등 하루 일생에 대한 이야기 등 일상생활에 대한 물음에 딸의 대답은

"몰라, 기억이 안 나"

였다. 


처음엔 딸이 치매 걸린 할머니의 말투를 흉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또래 아이들이 어른들을 모방하듯 할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였으니 

그 말을 흉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얼 물어봐도... 

몰라... 

생각이 안 나...

그런 딸에 반응에 조금씩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싶어도 대답을 회피하거나 딴 짓을 하는 둥. 

좀처럼 유치원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기

억이 안나다고 하면 물어보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으니 회피용 대답인거 같기도 했다.  

그럼 생각날 때 얘기 해 줘.

조금씩 말수가 줄어들었다. 

또래의 현상인지, 뭔가 문제가 있는 건지, 알 수가 었으니 더 답답했다. 

계속 대답을 유도 하는 질문을 하면 입을 닫을까봐 두려워졌다. 

한 동안 대화를 피하던 딸은 급기야 유치원 등원 거부를 시작했다.  

유치원이 재미없어... 

다시 어린이집 가고 싶어...

유치원 가기 싫어... 

로 변했다


왜 유치원은 가기 싫은데 더 어릴때 다니던 어린이집엔 가고 싶다고 할까. 

알록달록 화려하고 친구들도 많고 놀이감도 많고 활동도 많은 유치원보다 

규모도 작고 친구수도 적고 활동량도 훨씬 적은 어린이집으로 다시 가고 싶다고 할까. 

생각이 많아졌다. 

여러 추측을 하다 '관심이 받고 싶은 건 아닐까'로 정리가 되었다. 

어린이집은 많아야 한 반에 7명이였고 선생님의 관심이 1/7은 딸에게 왔을 테니까 

집에서도 충분한 관심을 못 받고 있으니 더 그렇게 느낀건 아니였을까.. 


결국 또 일을 그만 두었다. 

한달 간 첫째와 시간을 보냈다. 

유치원도 안가고 집에서 붙어있으면서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계속 집에 있을 수는 없느니 천천히 아이와 동네 다른 유치원들과 학원들은 둘러 다녀 보면서 

딸의 성향을 파악했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모할머니와도 이별을 했고 

또 다시 시어머니 케어와 아이들 양육이 나의 일과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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