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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Nhere Apr 15. 2019

언제가 시작이었을까... (1)

치매의 기록


2013년 전까지 나의 시어머니는 평범한 60대 인생을 살고 계셨다. 


시어머니는 첫째 며느리로 시집와 슬하에 자녀 세 남매를 모두 시집 장가보내고, 

두 내외분과 아흔을 넘기신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즉 시할머니가 함께 사셨다. 

시집살이가 곤하셨던 시어머니는 가끔 시할머니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으시곤 했는데 

그러면서도 시할머니의 걱정은 시어머니가 가장 많이 하셨다.  


시할머니의 치매가 점점 심해서 더 이상 집에서 생활이 힘든 상황이 오자 

시댁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요양원에 모셨다. 

가까운 거리에 매일같이 토마토를 갈아 한 손에 들고 요양원에 들러 시할머니의 얼굴도 보고 

말벗도 하며 서 정성을 다 하셨다.

그러다 주말이면 놀러 오는 손주들을 보며 즐거워하시는 그런 삶을 보내고 계셨다. 


그러던 2013년 초 구정이 막 지난 어느 날.

시할머니가 감기로 인해 폐렴이 걱정된다면 요양원에서 큰 병원으로 옮겨 입원하시게 됐고 

그 시할머니의 간병은 시아버지가 자처하셨다. 

고령의 시할머니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잘 모르겠지만 

시할머니는 온몸으로 치료를 방해하고 있었고 

시아버지는 그 옆에서 온전히 자신의 어머니를 말리면서 치료를 이어 갈 수 있는 돕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한나절을 보내고 저녁 무렵 시할머니를 체크하러 온 간호사가 시아버지에게 말을 건네었다고 한다. 

"보호자님, 얼굴빛이 안 좋으세요. 응급실에 한번 가보세요."

그렇게 시아버지는 본인의 발로 응급실에 걸어 들어가셨다. 


늦은 밤 신랑의 전화벨이 울렸다. 

시할머니 소식을 알고 있던 우리는 긴장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시어머니 목소리가 정확하게 나에게 까지 들리진 않았지만,

"아빠가?" 

라고 놀란 목소리로 대답하는 신랑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그 전화의 주인공은 시할머니가 아니고 시아버지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밤 평소 심장이 안 좋으셨던 시아버지는 돌어가셨다. 


"내가 간병을 하는 건데..."

시어머니의 자책 어린 한숨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같은 병원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고 가던 시할머니.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우린 할머니가 조금만 더 버텨주시기를 기도했다. 

줄초상만은 안된다고...

납골당에 시아버지를 모시고 돌아와 할머니께 상복을 보여드릴 수 없어 

집에서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시할머니를 만나러 일반 병실로 들어갔다. 


시할머니가 어제 보다 상태가 좋다는 말에 한숨을 돌렸다. 

이제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병실 문을 나섰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병원 정문을 지나갈 때 다시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할머니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우린 차를 돌려 다시 병실로 들어갔고 우리가 병실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호흡이 달라지셨단다. 

할머니는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그날 밤이 겨우 지난 새벽 시할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게 시할머니와 시아버지의 기일이 딱 8일 차이다. 



시아버지와 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는 그냥 혼자 사시겠다 했다.

그때 시어미니 나이가  65세도 안되셨으니 그 선택에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다. 

15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에 막내아들 내외가, 

비록 차로 50분 거리지만 그래도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첫째 아들 내외가 살고 있으니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니 그 전보다 자주 주말을 시댁에서 보냈기 때문에 

시어머니의 삶은 다시 평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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