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wNhere Apr 15. 2019

언제가 시작이었을까...?(2)

치매의 기록


2번의 장례를 치르고 2014년이 됐다. 


둘째를 임신하고 배가 한참 불러오던 2014년 가을. 

시아버지의 장례식땐 돌도 안됐던 첫째가 3살이 되어 맞이한 가을, 

난 둘째를 임신한 채 전셋집 재계약을 앞두고 고민이 많아지던 시기였다. 


혼자 계신 시어머니는 아무 이유 없이 1년  6개월 사이에 살이 10kg이나 빠졌고. 

잦은 구토와 두통을 호소하셨다. 

첫째 아들인 우리 신랑과 둘째 아들이 돌아가면서 병원에 모시고 가거나 

건강검진을 받기도 했지만 별다른 이상 증상이 보이지 않았다. 

맞벌이를 하고 있던 나와 신랑은 그전까지 보육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계신 어머니도 근처에서 살필 겸, 이제 태어나는 둘째의 보육도 부탁드릴 겸 

어머니가 사시는 본가 주변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 이사로 인해 나와 신랑의 출퇴근 시간은 3배로 늘어났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적인, 경제적인, 정신적인 손해도 많았다. 

우스갯소리로 내 주변 모든 여자들은 반대했고, 내 주변 모든 남자들은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때가 둘째 임신 6개월 차였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시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비록 같은 집에 살진 않았지만 같은 아파트 위아래로 집을 잡았기 때문에 수시로 왕래할 수 있었고 

식사를 같이 하는 날도 많았다. 이사를 온 이후에도 

소화가 잘 안되시는 것 같다, 속이 불편하다, 머리가 아프다... 

몇 일을 앓으시더니 결국 입원을 해서 정밀검사를 받기로 했다.


결과는 똑같다. 문제적 소견 안보임 . 

원인이 알 수 없으니 신경성이라는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에게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 건망증이 아주 없진 않았다. 

명절이나 제삿날처럼 사람들이 북적이는 날이 오면 정신이 없어하신다거나 

냉장고에 시금치 봉지가 3개씩 들어있다거나 하는 일들이 일어나곤 했었다. 

간혹 노인들이 자주 까먹고 긴장하는 버릇이 있는 건 다 안다. 

그런 줄만 알았다.

 


첫 번째 '발견'은 구정 때 일어났다. 


배가 점점 불러오기도 했고, 때마침 방송 중이던 프로그램도 종영을 하게 됐다. 

프리랜서 피디의 장점 아닌 장점을 살려 출산 때까지 집에서 쉬기로 결정한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차례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명절이나 제사 때면 큰 시장에 가서 장을 보시던 시어머니는 

이날도 경동시장으로 장을 보러 가신다 했고, 난 큰 배와 함께 쫒아 나섰다. 

아마 그 이후로는 함께 장을 본 적이 없으니 그때가 마지막이었나 보다. 

한참을 장을 보고나니 시장 사람들은 내 배보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았지만

시어머니의 양손에도 검은 봉다리들이 한아름 들려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어머니, 택시비 생각하면 집 앞 마트에서 사는 거나 재래시장 오는 거나 똑같아요"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시어머니께 여러 번 말씀드리고 다음엔 오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음식 준비를 마치고 나는 아랫집 우리 집에 내려와 있었다. 

윗집 본가에는 각지에서 올라오신 친척분들과 우리 신랑만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이것저것 음식들을 꺼내서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사과 상자에 사과가 딱 한 개가 비어 있고 사과를 싸고 있던 포장지만이 덩그러니 있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누가 사과를 먹었지?라는 생각에 시어머니께 물어봤다. 

"어머니 어제 사과 드셨어요?" 

"아니, 왜 사과가 하나 없냐?? 누가 먹던 사과를 사 온 거 아니냐. 아님 처음부터 하나가 비워놓은 사과를 판 것이 아니냐!" 

"그럴 리가요. 사과를 파는 사람들이 하나만 쏙 빼서 팔진 않죠!"

"어제 아무도 먹은 사람이 없는데 하나가 없다니까 이상하지 않니, 분명 사과를 잘 못 산거야" 

사과 박스를 내가 샀으므로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다. 어느 사과장수가 하나가 빈 채로 사과를 판단 말인가?

그래서 신랑에게 물었다. 

"어젯밤에 사과 먹었어?"

"응! 엄마랑 어른들이랑 하나 깎아먹었어. 엄마도 먹었잖아!"

"내가 언제?"

"엄마도 먹어놓곤"

어쩌면 정말 사소한 에피소드다. 단지 사과 한 개에 해당하는 에피소드.

누구 욕 볼일 없고, 누구에게도 큰 피해를 주지 않은 에피소드. 


그런데 난 그 순간이 너무 또렷이 기억난다. 

설마... 하는 느낌과 함께 뒤통수가 찌릿했으며, 

어머니의 반응에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가족들이 이상했고, 

왜 나만 심각한가 하는 의구심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그렇게 구정 연휴가 끝났다. 

하지만 그 작은 사과 에피소드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결국 난 신랑과 식탁에 마주 앉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가 시작이었을까...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