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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Nhere Apr 15. 2019

민감한 이야기

치매의 기록


명절이 다 지나고 신랑과 난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난 어머니가 치매검사를 받아보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듣기에 불편한 이야기인 거 알아.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나에게는 시어머니고 당신에겐 어머니인데... 

이런 이야기가 기분 좋을 리 없지.. 

그래도 당신 누나랑 도련님이랑 상의해 보았으면 좋겠어."

"그냥 건망증 아니야? 노인들은 다 그렇잖아."

"물론 건망증일 수도 있어. 근데 내가 먹긴 먹었는데 뭘 먹었는지 기억 못 하는 거랑 먹은 거 자체를 잊는 거랑은 다른 거 같아."

"알았어. 고민해 볼게"




어떻게 사과 사건 같은 사소한 에피소드를 치매와 연결시켰을까 하고 궁금해 할 수 도 있다. 




여기서 나의 직업을 잠깐 이야기해야겠다. 

난 쉽게 이야기해서 프리랜서 피디다. 방송을 제작하고 있는 프리랜서 PD다.

지금은 TV만 틀면 100개가 넘는 채널에서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내가 이 쪽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공중파 3사와 교육방송, 몇 개의 케이블 채널이 다 였던 시절이었다. 그땐 낮 방송도 없어서 대낮엔 지지직 대는 무신호가 티브이에서 흘러나왔고 오후 4,5시가 되면 삐 소리와 함께 칼라바가 방송되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 쌍팔년도 이야기 같지만 2004년이야기 이다.


남들에게 직업을 소개하면 PD라는 단어에 높은 기대감과 관심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난 외주제작사를 떠돌아다니는 PD의 삶은 시간에 비례한 육체노동이 동반되는 고달픈 직업이고 방송사의 입김에 좌지우지될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이다.

단지 방송이 끝나고 흘러나오는 자막에 이름 석자 박히는 순간, 만족감과 성취감으로 고생을 지워버리고 다시 현장에 뛰어드는 멍청한(?)직업인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주제작사 프리랜서 PD의 삶은 그리 달라진 게 없다. 


모든 PD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PD들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취재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기 때문에 그만큼 사람에 대한 경험치가 다른 직종 해 비해 높다.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비협조적인 사람을 설득해 촬영에 임하기도 하며 

어떻게 하면 예쁘게 화면에 비칠까를 고민하면서 출연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재촬영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캐치하는 능력이 좋다. 

이런 능력이 처음부터 훌륭하다면 센스 있는 후배라고 칭찬을 많이 들으며 직업인이 됐을 것이고 좀 둔하다면 경험이 쌓이면서 그런 능력들도 같이 쌓이게 된다. 


예를 들면 

음식점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지금 촬영의 대상자인 앞에 있는 사람보다 저 멀리 구석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이 더 맛있게 잘 먹고 있는 거 같다'라고 생각이 들면 촬영 중인 사람을 잘 달래서 조금 더 촬영을 한 후 구석에서 식사 중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다가가 촬영을 요청하고 승낙받아서 그 사람이 먹는 모습을 더 자연스럽게 찍어내야 하는 것이 현장 피디의 역할인 것이다. 




그래서 난 어머니가 

"사과가 하나가 없다"

라고 하실때 머리가 쭈뼛했던 것이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오늘의 상황,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치매가 연결선상으로 보였다. 



그래도 내 친정엄마가 아니니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니까, 

공을 신랑에게 넘겼고 그의 형제들이 의논하길 바랬다. 






며칠 후 신랑에서 물었을 때, 


대답은 "아직은 아닌 거 같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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