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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Nhere Apr 19. 2019

시어머니의 하루

치매의 기록


며칠을 순조로히 지났다.

구정과 2번의 기제사를 치르는 동안 특별할 것이 없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시어머니는 직장을 다니고 계셨다. 

시집 살이 40여 년 동안 때로는 일을, 때로는 가사를 돌보며 지내시다가

시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시고 아직 벌이가 있는 시어머니가 경제활동을 이어 나가셨다. 

아흔 살이 넘으신 시할머니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자 

다음 날도 출근을 해야 하는 아내를 위해 시아버지가 할머니 간호에 나선 것이다. 





시아버지, 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으셨다. 

자식들도 말렸다. 

이제 남은 여생 즐기면서 사시라고... 

자녀들은 앞 다투어 어머니가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거리들을 찾았다. 

바쁘게 지내시라고 찾아본 주부학교.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바로 그 해부터 등록을 하고 어머니를 학교로 보냈다. 


1년쯤 지나서 어머니는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겠다 하셨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예습에 복습에 강의를 잘도 따라가는데 

엉겁결에 책상에 앉아있는 자신은 하나도 못 따라가겠다며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선언을 하신 거다.

본인의 의지보단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학교생활은 그리 쉽진 않았을 것이다. 

 

자녀들도 받아들였다. 

그 이후 동네 아줌마들 따라 복지회관이나 노래 교실을 찾아다니시다 

이제 그것마저도 흥미를 잃고 집안에만 계셨다. 

너무 하는 일이 없어 보여 걱정이 된 큰 누나는 어머니를 재촉해서 저녁 요가 수업을 등록했다. 

일주일에 2번. 한두 달쯤 잘 다니시는 듯했다. 

겨울이 오니 오고 가는 길이 추워지는 무릎이 아프다며 못 하겠다고 하셨다.

  



내가 시어머니 곁으로 이사를 갔을 때가 그 상태였다. 

그 나이 때 할머니들이 모두들 그러하듯이 어머니도 무릎 통증을 호소하셨고 무릎 주사를 맞고 싶다 하시길래 내가 모시고 다니곤 했다. 

퇴행성 관절염이 주사 몇 번으로 낫는 병도 아니고... 

큰 누나가 이번엔 근처 체육관 실버 수영 아쿠어로빅을 등록하고 수영복이며 수경이며 준비를 잔뜩 해 주고 갔다. 

내가 곁에 있으니 가는 길, 오는 길, 강습시간이며 꼼꼼하게 알려주었지만 

강습 첫날부터 결석을 하셨다. 가는 시간을 놓쳤다 하셨다. 

다음 수업 날엔 체육관 가실 시간에 맞춰 전화드리고 버스 타는 장소를 알려드렸는데 

그날도 결석을 하셨다. 이번엔 몸은 안 좋으시다고 했다. 


다음 수업 날 '오늘은 꼭 결석만은 막아야지' 하는 마음에 아예 어머님 집으로 올라갔다. 

가방이며 샤워 도구를 다 챙겨서 나가시는 거 까지 봤다. 

체육관 버스를 탔다고 통화까지 마쳤다. 

이제 수영장 가서 재밌게 음악에 맞춰 운동하고 오시기만 하면 됐다. 

그날 저녁 수업은 어땠냐고 물었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재미도 없었다고 하신다. 수영장보다는 샤워실에 있는 찜방이 더 좋았다고 하신다. 

그래도 며칠 다니시면 재미있으실 거라고 답을 드렸다. 

다음 수업시간에도 시어머니가 체육관에 갈 수 있게 도왔다.  그다음 시간에도... 

그게 끝이었다. 다시는 안 가시겠다고 했다. 

갔다 오면 더 춥고 으슬으슬하다고. 아직 2월이니 겨울이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아쿠아로빅도 포기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아쿠아로빅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셨다. 

처음 간 수영장에서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셨던 어머니는 

저쪽에서 음악 틀어놓고 아줌마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만 지켜보시고 

본인은 그냥 빈 레인에서 조금 걸으시다가 뜨뜻한 찜방에서 몸을 좀 녹이시고 집으로 돌아오신 거다.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뇌가 일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시어머니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반응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저 가끔 뒷산에 한 번,

누군가 불러서 노인회관에 한 번, 

아래 층 할머니들과의 수다가 어머니 생활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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