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wNhere Jun 12. 2019

본인에게 치매임을 알리는 시기

치매의 기록

신랑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육아와

시어머니 돌봄에 투입되면서 가정은 안정을 되찾았다.


시어머니가 처음 치매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신랑의 형제들은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시어머니의 남은 삶에 대해서...


이런 과정은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는 모든 가정에서 한 번씩 일어나는 절차 같았다


자식들 중 누가 시어머니를 모실 것인가

남은 여생을 어디서 지내실 것인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누구는 가능하고 누구는 불가능하며

그게 환자에게 좋을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

앞으로 벌어질 백만 가지 상황에 대해...

 

치매가 진행됨에 있어서 큰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일에 누가 주축이 될 것인지

나의 사정과 너의 사정을 다 고려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난 직계가족이 아니므로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걸 지금은 조금 후회하지만

그땐 가장 가까이 사는 며느리가 의견을 보태기엔

그냥 투정으로 보일 것이 분명하여...  

선 회의 후 의견이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큰아이가 고3인 큰 누나 네와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워킹맘에게 맡기고 주말부부를 하고 있는 작은 아들 집.

맞벌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언제든지 들여다볼 수 있는 우리 부부.


선택은 없었다

그냥 현상 유지

호기롭게 나서는 이도 없었고 적당한 대안을 제시하는 이도 없었다.


그때까지는 조금 불편한 상황이 연출될 뿐, 

꼭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기에 

현상 유지도 나쁠 건 없어 보여고, 

뚜렷한 해법이 없으니 슬쩍 대안 찾기를 미루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졌고 

결국 신랑은 회사를 그만뒀다. 


신랑이 회사를 그만둔 이유가 꼭 시어머니의 보살핌 때문만은 아니니 

치매로 인한 가족의 변화라고 말하기엔 과장이 없지 않으나 

그렇게 2년이 더 지난 지금도 신랑은 취업을 하고 않고 있으니 

이건 시어머니의 치매가 중요한 원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어떤 특정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그 심각성을 공유하기 위해 

형제들은 모였고 의논했으며 어떤 결과를 도출하기보단 

또 다른 보호 장치 들이 하나씩 늘려갔다. 


환자에게 본인이 치매라는 병을 앓고 있음을 알리는 문제에 있어서도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건 자식들이 느끼는 헛헛함과 공허함이 머리와 가슴을 따로 움직이게 하기에 

입 밖으로 "엄마가 치매야"라고 뱉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흔 살이 넘은 시할머니를 집에서 똥 빨래까지 손으로 해 가며 

봉양하셨던 우리 시어머니에게 치매란 

곧 씻기고 입히고 달래주었던 시할머니였으며

결국 본인도 힘에 부쳐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던 아픈 과거이고 

본인이 힘드셨던 만큼 주변인을 힘들게 하는 못된 질병이기에 

그 과정을 모두 보고 자란 자녀들이 

시어머니에게 치매임을 알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우린 한동안 시어머니의 치매를 본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냥 깜박깜박하는 거라고... 

더 심해지기 전에 약을 먹는 거라고... 

약 먹으면 좋아질 거라고... 


"더 늙기 전에 죽어야 하는데..."

"치매에 걸리기 전에 죽어야 하는데..." 

"오래 사는 것도 안 좋은 거야, 누구 고생을 시킬라고...' 

"자다가 그냥 죽었음 좋겠어..."


어쩌면 시어머니는 알고 계셨을 수도 있다. 

인정하기 싫고 인정할 수 없어서... 

누군가 알아차린다는 것이 더 무서운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손으로 봉양했던, 늙은 손으로 밥을 떠 먹여드렸던, 

싫으면서도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그 꼬부랑 할머니로 본인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이제는 너무 늦어 본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지금도 우리는 치매임을 알리면서도 모르는 척 생활한다.

입 밖으로 꺼내지만 전혀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또 한 번 물으시면 괜찮다고 말한다.  

그렇게라도 마음의 위안을 드린다. 


나의 경험치로 말하자면. 

물론 환자의 성격과 자라온 환경, 배우자의 유무, 보호자의 유무 등에 따라 

환자 자신에게 치매를 알리는 시기는 달라지겠지만 

환자 자신이 앞으로의 삶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을 때 

치매를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렇게 못 했지만, 

질병이 악화되면 거처를 어디서 지내고 싶은지, 누구와 지내고 싶은지, 

생활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자신의 의견을 담을 수 있을 때 

그때 치매임을 알리고 계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람들은 가족이 암 말기처럼 죽음을 바로 목전에 둔 무서운 병에 걸렸을 때도 

질병을 알릴 것이냐를 두고 고민한다고 한다. 

결국에 환자에게 알리고 어떻게 병을 치료할 것인가 플랜을 같이 짜고 

응원을 해 주며 널리 알려 더 좋은 정보를 구한다. 

하지만 치매는 숨기기에 바쁘다. 

그래서 환자 본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을 놓치고 

더 이상 어제와 오늘이, 내일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본인의 의지에 의한 내일이 더 이상 아니며 보호자의 의지에 의한 미래만이 남는 것이다. 

그렇게 보호자에게 모든 책임과 의무가 넘겨지고 

그 무게감은 상당해진다. 


만약 시어머니가 조금 더 정신이 또렷하셨을 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할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좋은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치매를 계속 부정하거나 오히려 화를 내거나 

더 우울해할 수도 있으니까 

아마 그런 것들이 두려워 이야기하지 못한 것일 테니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니 

더 좋아질 리 없는 병이니 무엇이든, 그 순간이 가장 좋은 상태였던 것이다. 

잠시나마 반짝 또렷해지고 활기가 생겼다고 한들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




치매 환자 가족으로 언제 환자 본인에게 질병을 알릴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면, 

그건 지금 이 순간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안 좋아질 수 있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니 새끼들은 니들이 챙겨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