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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리다

서른 살 난

by 자음의 기록

엄마는 난초를 좋아했다. 우리 집에는 거실 가득 난초가 있었는데, 새끼를 치고 또 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난은 서른 살 가까이 되었었다. 죽어가는 난도 우리 집에 오면 살아 돌아갔다. 엄마는 난 키우기의 달인이었다.




엄마가 왜 난을 그렇게 열심히 키웠는지는 미스터리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은 큰 마당이 딸린 집이었는데, 마당에는 앵두나무도 있었고, 여러 가지 잡목들이 많았다. 엄마는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였던 걸까. 아버지의 사업이 잘 안되고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가면서도 난은 꾸준히 우리 집 식구의 일부로 거실을 점유했다.




그런 난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난을 버린 건지, 다른 사람을 준 건지 집에는 난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베란다 한편에 주먹만 한 다육이들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난을 버리고 다육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가끔 나는 내가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삼십 년을 키워 온 난이 없어지고 다육이로 바뀌었을 때 나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냥 바꾸고 싶어서 바꾸었나 보다 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것처럼 큰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할아버지 댁에는 밤나무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종종 그 밤나무를 본인이 심었다고 자랑했다. 밤나무는 꽤 크게 자라 가을이면 커다란 밤송이를 뚝뚝 떨궜다. 벌어진 밤송이를 발로 눌러 까 뒤집어 쓸어 담아 오면 할머니가 쩌주곤 했다. 그 밤송이에는 벌레가 들어있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할머니는, 벌레 먹은 밤이 더 맛있는 밤, 이라고 알려주었다.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밤나무도 베어 없앴다. 더 이상 밤을 깔 일도 없고 해서 나는 그곳에 가지 않는다.



엄마는 서른 살 먹은 난을 어떻게 했을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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