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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Oct 02. 2019

서른 살 난

엄마는 난초를 좋아했다. 우리 집에는 거실 가득 난초가 있었는데,  치고  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난은 서른  가까이 되었었다. 죽어가는 난도 우리 집에 오면 살아 돌아갔다. 엄마는  키우기의 달인이었다.

 




엄마가  난을 그렇게 열심히 키웠는지는 미스터리다. 내가 아주 어렸을  우리 집은  마당이 딸린 집이었는데, 마당에는 앵두나무도 있었고, 여러 가지 잡목들이 많았다. 엄마는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였던 걸까. 아버지의 사업이  안되고  작은 집으로 이사 가면서도 난은 꾸준히 우리  식구의 일부로 거실을 점유했다.

 




그런 난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을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난을 버린 건지, 다른 사람을  건지 집에는 난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베란다 한편에 주먹만 한 다육이들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난을 버리고 다육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가끔 나는 내가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삼십 년을 키워  난이 없어지고 다육이로 바뀌었을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냥 바꾸고 싶어서 바꾸었나 보다 했다. 기분이  좋을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것처럼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할아버지 댁에는 밤나무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종종  밤나무를 본인이 심었다고 자랑했다. 밤나무는  크게 자라 가을이면 커다란 밤송이를 뚝뚝 떨궜다. 벌어진 밤송이를 발로 눌러  뒤집어 쓸어 담아 오면 할머니가 쩌주곤 했다.  밤송이에는 벌레가 들어있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할머니는, 벌레 먹은 밤이  맛있는 , 이라고 알려주었다.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밤나무도 베어 없앴다.  이상 밤을  일도 없고 해서 나는 그곳에 가지 않는다.

 



엄마는 서른 살 먹은 난을 어떻게 했을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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