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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Aug 23. 2019

고통이 가져다 준 것

워킹대드 주짓떼로 2-5편

"오빠, 진통 견딜  한데? 조금 아프긴 한데,  진짜 무통 천국이라는 말이 맞나봐.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있던 아내의 말이었다. 무통 천국은 무통 주사를 맞으면, 심한 진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천국이 찾아온다는 뜻이었다. 나는 안심했다. 오후 11시가 넘었지만, 아내는 비교적 평온했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에 비해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아내가 호출하면 진통실로  심부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통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새벽 1. 아내의 갑작스런 호출에 진통실로 가보니 아내가 숨이 끊어져가는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급히 간호사를 찾았지만, 지금은 무통 주사를 놓아줄 수가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려면 지금은 힘들더라도 진통을 겪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아내는 들리지 않는듯 했다. 아내는 마치  겨울에 강물에 뛰어든 사람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예전에 산모 교실에서 배웠던 라마즈 호흡법을 했다.

 

“크게 들여 마시고 후우하고 천천히 내뱉고, 괜찮아, 지나갈 거야. 진통 수치가 내려가고 있어.

 

진통은 파도처럼 왔다 갔다. 거의 7,8 간격이었다. 아직 출산이 임박한  아니었다. 그런데도 고통이 이렇게 심하다니. 나는 의사 선생님이 봐주었으면 했지만, 새벽이라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도 비슷한 시간대에 분만실로 들어가는 산모들이 있어 아내와 나는 마치 섬에 남겨지듯 동그라니 서로의 손만 잡고 있어야 했다.

 

“오빠, 너무 무서워. 

 

 시간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도 진통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내가 울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간호사에게 아내의 상태를 확인해달라고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계속 거짓말을 했다.

 

“이제 거의  됐대. 호흡하고 있으면 괜찮아  거야. 크게 들이 마쉬고, 후우 하고 내뱉고. 지나간다.

 

하지만 나로서도 확신이 없었다.  진통이 언제 끝날지 언제가 되어야 분만실에 들어갈  있을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있는 일은 하나 밖에 없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호흡해주는 . 언제가   모르는 순간까지 함께 있는 .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간 것은  뒤로  시간이  지난 아침 8시가  되어서였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사상’ 보다는 ‘체험’  믿는 편이다. 그래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말하는  조심스럽다. 누군가는 쉽게 여성의 인권을 말하지만, 나는 여성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자칫 섣부른 행동이  수도 있고, 나아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일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 새벽을 기점으로 나는 출산이 죽을 수도 있는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종교에서는  고통을 ‘신이 내릴 징벌’로 받아들인다는 ,  생각에 동의하고 싶진 않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납득할  있을  같았다. 그건 도저히 사람이 겪어낼  있는 고통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도 아이를 낳는 잠깐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도   없는  시간, 길게는 수십 시간의 고통이었다.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출산 관련 영상은 순화 되다 못해 미화된 것이었다. 이런 것을 어떻게 영상에 담을  있겠나 싶었다. 무엇에든 의지하고 싶은  절박함을 어떻게.

 

 

**

 

아내는 우스갯소리로 ‘나는 남편과 아이를 함께 낳았다’고 한다. 실은 나도 거의 비슷한 감정이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의 곁에서 손을 잡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밖에   없는 상황에서,  상황을 어찌어찌 견디어 내고 결국  끝에 도달한 사람들이 느낄  있는 공감대가 우리에게 남았다.

 

지금도 사소한 일로 투닥대고 서로에게 토라지곤 하지만, 그때 일이 떠오르면 왠지 모든 것을 용서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지금 겪고 있는 불행 같은  얼마든지 견뎌   있을  같은 자신감이 솟는다. 그건 고통이 가져다   다른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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