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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Apr 04. 2024

어차피 오아시스는 없다니까

어린 시절에 정말 자주 듣던 말. 대학만 가봐라. 그 말은 딱 대학 가기전까지만 유효했다. 대학을 갔더니, 뭐 아무 일도 없던데? 그러고 나면 또 듣는 말. 취업만 해봐라. 그 말 역시... 그만하자. 이런 이야기는 이제 하도 들어 지겹다. 무엇무엇만 해봐라,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해하려고 애쓴 적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도 오리무중인데 타인의 마음을 어찌 알까 싶다. 어쩌면 그 말을 뱉은 사람들도 그저 어딘가의 누군가가 뱉은 말을 나에게 뱉은 걸지도. 마치 끝이 나지 않는 눈치게임처럼 최초에 말을 뱉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니 이제는 저런 말들을 되새김질해서 뱉어야 할 때가 아닐까. 대학 가보니 취업해보니 똑같더라. 사는 건 똑같더라라고.


마흔이 넘으면 인생의 지혜를 몇 개쯤 얻어서 술을 안 마셔도 절로 인생이란 말이야, 같은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꼰대가 되어 있을 거라 (왠지는 모르겠지만) 믿었다. 하지만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나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세상은 정말로 모르는 일 투성이다. 뭔가 잘 풀리는 것 같다가도 금세 꼬여버리고 꼬이는 듯하다가도 어처구니 없이 풀리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일희일비하는 내 자신이 우습지만 그렇다고 일희일비하지 않을 만큼 심지가 굳지도 못하다. 과거에도 피곤한 일은 지금도 여전히 피곤하다. 이십년 치 경험이 쌓였다기보다 그만큼의 피로가 누적되어 어디 멀리 휴양지로 훌쩍 떠나고 싶은 기분이다.


그러니 이제 조금 미래가 예측이 되기 시작한다. 오십이 넘고 육십이 넘은 사람들이 흔히 이 나이가 되어봐라, 하고 무게 잡고 하는 말이 사실 다 별 거 없는 말일거라는 예상이다. 예전에 내가 스무 살, 서른 살일 때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라더니 그 나이 되어 봤는데 뭐 아무 것도 없다. 그냥 별 거 없다. 예전처럼 여전히 사람에게 상처받고 치이고 위로받고 작은 일에 분개하고 기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여전히 모르겠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도 계획이 안 선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만 든다.


40년 동안 속은 기분이다. 어이, 저기까지만 가면 근사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라는 식으로 유혹하는 말에 홀랑 속아넘어갔다. 그런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 아닐까. 그저 모두가 사막을 걷고 있고 지쳐서 쓰러지지 말라며 그런 감언이설로 적당히 버티게 해주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런 가짜 희망으로 버틸 바에야 차라리 희망없는 진실이 나는 반갑다. '아 어디에도 오아시스는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사는 편이 마음이 느긋해진다. 오아시스는 어차피 없으니까 서두를 필요가 없다. 햇볕이 따가우면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얼굴을 가리고 잠시 쉬어 가련다. 그러다가 남들한테  뒤쳐져, 라는 말이 들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차피 오아시스는 없다니까.


남들에게 인정 받는 건 피곤한 일이다. 우선 그 '남들'이란 게 실체가 분명치 않고, 대충 그 실체를 정의해보아도 그 '인정'의 기준이란 게 날마다 바뀐다. 돈이 많으면 명예를 탐하고 명예가 높으면 돈을 탐하고 둘 다 있으면 이성에 빠지고 하는 식으로 그 고리가 계속 이어진다. 그것 역시 저것만 손에 넣으면 게임 끝, 이라는 유혹이다. 끝은 없다. 내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이 있을 뿐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있는 한 계속 갈증을 느낄 뿐이다.


이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세상일들이 두세발짝 쯤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처럼 느껴진다. 즐겁고 슬프지만 전처럼 강렬하게 즐겁고 슬프지 않다. 즐거운 일에도 슬픈 일에도 모두 끝이 있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즐거운 일이 마냥 즐거운 것만도 슬픈 일이 마냥 슬픈 것만도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의 내가 그렇게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인생은 마치 남이 끓여 놓은 라면같다. 옆에서 보고 있을 때는 세상 맛있어 보이지만 막상 한 입 먹어보면 그냥 똑같은 라면이다. 옆에서 바라볼 때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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