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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Oct 02. 2019

등교시간


중학생이  나를 아버지는 차로 등교시켜주었다. 우리 집은 3층이었는데, 아버지의 차가 등장하기를 나는 창문 밖으로 도로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아버지가  하고 클랙슨을 울리면, 나는 책가방을 메고 다녀오겠습니다, 외친 , 쪼르르 3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내가 조수석에 타면 아버지는 곧장 출발했다.

 



아버지의 차는 르망이었다. 은색이었고, 엉덩이가 컸다. 아버지는 운전에 능숙했고,  안에서는 조금 텁텁한 냄새가 났다. 아버지와 나는  방향을 바라본 , 별다른 대화 없이, 정해진 루트를 따라 드라이브했다. 천주교 성당 앞을 지나, 한국은행 건물을 돌아, 신영 극장 앞을 가로질러 철길 밑을 우회전해 가면, 남대천 다리가 나오고, 좌회전을 해서 남대천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학교가 나온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굳이 굳이 학교 바로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곤 했다. 걸어서 학교 정문으로 올라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기세 좋게 르망 조수석의 차문을 열고 내렸다. 나는 아버지에게 하는  마는   작별인사를 했다.

 



그게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났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나는 버스를 탔다. 아버지는 바빠졌고, 나는 버스에 익숙해졌다. 회수권을 스무   사서 다녔다. 회수권을 모양대로 뜯어내는  나에겐  어려웠다. 반쪽이  회수권을 넣다가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혼나면 어쩌지 하고 떨었다.


 

초등학교 때는 걸어 다녔다.  번은 비가 왔는데, 억수같이 쏟아졌다. 소나기였다. 엄마들이 하나둘씩 아이들을 데려갔다. 엄마는 오지 않았다. 나는 비가 그치기를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냥 비를 맞고 걸었다. 학교 담벼락을 따라, 서부시장을 지나, 세브란스 약국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길을 빠져나오면 태권도장이 이층에 있는 슈퍼 건물이 나온다.   5층짜리 아파트가 우리 집이었다. 


 

  대로 맞은편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이 있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종종 그곳에  청소를 도와주는 척하며 소파 밑에 떨어진 동전을 주웠다. 오백 원짜리를 건질 때도 있었다. 당구장 일층에는 사진관이 있었다. 사진관 딸이 나랑 동갑이었는데, 예뻤다. 사진관 주인아저씨, 주인주머, 딸아이가 가족사진을 찍어  액자에 담아  유리창에  보이도록 세워놓았었다. 나는 당구장을 들어갈 때랑 나올 때, 거기 멈춰 서서 사진  여자 아이의 얼굴을 보곤 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직장인이 되고 나서, 가끔 만원 지하철 안에서 아버지가 빵 하고 울리던  클랙슨 소리가 생각나곤 한다. 책가방을 둘러메고 계단을 뛰어내려 가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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