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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Oct 02. 2019

뗏목

그때가 여덟 살이었는지 그보다 어렸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나는 뗏목을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널브러진 나무 때기 같은  많아서 재료를 모으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 집 맞은편에는 방앗간이 있었고,  옆으로 아주 좁다랗고  골목이 있었는데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그곳에서 삼일쯤 뚱땅거렸다.

 



완성된 뗏목을 들고 강릉에서 가장  하천으로 갔다. 초겨울이었는지 초봄이었는지, 강가에 살얼음이 얼어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들은 강에 뗏목을 띄웠고, 뗏목은 가라앉았다. 발을 디딜 새도 없었다.

 



거기서부터 집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기억이  난다.  자리에서 모두 흩어졌던 것도 같고,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 같은    몰랐던 우리는 망연자실했던  같다.


 

에디슨 위인전을 읽고 집에 있던 냉장고 속의 계란을 꺼내와 품었다가 요를 계란 바다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와 아버지의 황당해하는 표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뗏목 때도 그랬지만, 딱히 화를 내지는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기억에 별로 화를  적이 없는  같다.

 



아홉 살  구름사다리에 올라가 나는 슈퍼맨이다 하고 뛰어내렸다가 다리를 접질렸을 때도, 집에서는  말이 없었다. 나는 덕분에 자유롭게 이런저런 사고를 치고 다닐  있었다.



 

 번은 강릉에 폭설이 내려 아파트 옥상에 키보다 높이 눈이 쌓였다. 옥상은  열려 있었고, 동네 아이들끼리 모여서  안에서 굴을 파고 놀았다. 나도 집에 있던 쓰레받기를 가져와 열심히 굴을 팠는데, 파다 보니  밑이 허전해서 내려다보니, 난간 밖으로 몸이 나와 있었다. 하마터면 떨어질  했네, 하고는 다시 굴을 팠다. 이번엔 반대쪽으로.

 



확실히 예전엔 지금보다 겁이  했던  같다. 아파트 이층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공터에서 불을 피우기도 했다. 덩치  개가 사는 집에는 일부러 찾아가 돌을 던져 보기도 했다. 개에게 쫓겨서 엄청 달렸던 기억도 난다.

 



그때만 해도 벨을 누르는 장난은 불법이 아니어서, 마음 맞는 친구끼리 벨을 누르고 다녔다. 벨이 달린 집은 많았다. 외할머니 집도 그랬다.  주변에는 아파트 대신 단독, 혹은 이층으로  집들이 모여 있었고, 전부 현관에 벨이 붙어 있었다.  길을 지날 때면 설렘으로 가슴이 벅차곤 했다.

 



나는 하교시간이 좋았다. 집에 가면  뭐하고 놀지, 매일 그 생각을 했다. 놀아도 놀아도 질리지 않았다. 하교 시간이  이상 즐겁게 되지 않은 이후로,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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