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지금보다 북한에서 사람들이 자주 내려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잠수함을 타고 온 사람들이다. 어른들은 그 사람들을 무장 공비라고 불렀는데, 아주 위험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 사람들이 내려오는 바람에 우리 동네는 비상령이 내려졌다. 버스마다 군인들이 검문을 했고, 할아버지가 사는 동네에는 헬기가 뜨고 총소리가 났다. 어느 집 할머니가 송이버섯을 캐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나는 온 세상이 비상시국이 된 것 같고,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들떴다. 공비가 안 잡히고 오래오래 도주했으면 하고 기도했다. 사람은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한 달 만인가 비상령은 해제되고 내가 살던 도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장공비가 타고 온 잠수함을 신고한 택시 기사 아저씨는 포상금을 어마어마하게 받았다고 했다. 그 길은 우리 가족도 종종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우리에게 그런 행운이 오지 않은 게 나는 너무나 아쉬웠다.
나중에 시에서는 그 지역을 관광 명소화 한다고 했다.
깜깜한 밤을 환하게 물들이던 헬기의 조명,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타 다당 하는 발포음, 배를 까고 누워 머리를 받쳐주던 엄마의 무릎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무장공비가 다녀간 시간의 기억은 나에게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다. 아마 지금이라면 그러지 못하겠지.
그런 맥락에서 어린아이의 기억이란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