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나에게 한 장의 전단지를 주었다.
집 앞 문고리에 걸려있었다며 보여준건 학습지 광고 전단지.
자랑할꺼리가 결코 아니지만 '나는 우리집 방바닥과 일체화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출산 후부터는 집에서 은둔생활을 영위하고 있어서 얼마전까지만해도 기껏해야
중국집이나 치킨집 자석이 붙어있을까말까했는데 이런 전단지라니.
좀 신기했다. 어떻게 이런 녀석(?)이 등장한건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 시판 이유식을 시작했었더랬다. 그 이유식 주머니가 걸려있는걸 찾아내어
이렇게 전단지를 붙여둔것이었군. 대단하다! 프로야!!
이런걸 할 나이는 아직 한참이잖아~ 하고 피식웃으며 버릴려고 했는데
눈에 들어온건 '베이비'라는 단어. 멈칫하고 버릴려던 전단지를 한번 더 보게되었다.
(결국 한번 더 보기만하고 버렸지만)
문득 조리원에서 접한 '프뢰벨'과 '몬테소리' 이 두가지 단어가 기억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보면서 남편은 물어보았다.
"근데 그런거 꼭 시켜야해?"
순간 머리가 딩-
아이를 가진 순간부터 어린이집은 계획에 없었으니 상황이 허락할 때까진,
최소 아이가 5살이 될때까지는 엄마인 나에게 오롯이 교육이 맡겨진 셈인데
갑자기 엄청난 중압감과 함께 베이비 교구를 보고있는 내 모습이 생소했다.
교구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교구가 있으면 아이가 걍 그것과 놀면서 학습할거라고
바보같은 생각을 한 내 자신이 생소했다. 더 바보같은 건, 남들이 하니까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내 아이와의 필요성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거다.
동화책을 읽어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놀이터에서 뛰노는 평화로운 장면.
나는 아이의 교육을 안일하게 그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교재에서 주워읽은 존 듀이의 구성주의는 멋지다며
다른 이들에게 주장하던 혈기왕성한 대딩이 아니라
한 아이가 행복하고 현명하게 자랄수 있게 누구보다도 강한 영향을 주어야하는 엄마구나.
한번 엄마가 되면 엄마는 계속되니까 무책임한 행동을 할 수는 없구나.
육아관을 재정비를 해야겠다고 느낀 계기였다.
조금은 계획적이 되어야겠고, 그렇지만 여유를 가져야겠고,
아이가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나부터가 유연해져야 되겠구나.
그렇지만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하진 않을거다.
엄마는 졸업할 수 없으니까. 애시당초 완벽이라는 기준이 아이들마다 각각 다르니까.
나는 나의 공주님을 위해 내가 생각하는 최선을 보여줄 것이고 혹 그게 잘못되었더라도
수정하고 다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할거라 믿는다.
그게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년에 생각하는, 또 내후년에 생각하는 모습의 엄마는 다를테니
심지는 굳힌채 끊임없이 유동적인 다가감의 여정을 시작해야겠다.
그 안에 함께할 우리 아가의 여정이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온 마음으로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