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조각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수많은 선생님이 내 곁을 지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히 남아 있는 건,
그분들에게 배운 과목별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법에 대한 지혜였다.
어떤 선생님은 살면서 얻은 통찰을 나눠주셨고,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직도 내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은 네 분의 선생님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그분들의 가르침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깊은 영향을 주었다.
선생님은 늘 온화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생각이 많을 땐 집안일을 도와봐.
그럼 생각이 정리가 될 거야.
선생님은 설거지를 할 때 복잡한 머릿속이 정돈되곤 해.
스트레스를 받을 땐 단순한 노동을 해보렴.
엄마도 돕고, 생각도 정리되고, 일석이조잖니?”
그 말씀은 지금도 내 안에 깊이 남아 있다.
생각을 멈추고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정리를 찾는 방법.
그건 정말 큰 지혜였다.
나는 주로 운동으로 때로는 집안 청소로 그 말씀을 실천했다.
몸을 움직일 때,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지고 감정도 정돈되곤 했으니까.
지금의 나 역시, 마음이 복잡할 땐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 시작은 선생님의 말 한마디였다.
EBS 인강도 병행하시던, 바쁘지만 열정 넘치던 선생님.
댄스스포츠를 즐기며 자신의 삶을 멋지게 꾸려가시던 분이기도 했다.
어느 날 수업 중,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잠이 많아.
8시간은 꼭 자고, 12시간까지도 잘 수 있어.
대신 깨어 있을 땐 정말 밀도 있게 살아.
해 뜨는 낮, 한정된 시간에 일에 집중하는 이유는
순전히 잠을 자기 위해서야.”
그 말은 당시 내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라는 분위기 속에서,
잠을 삶의 우선순위로 두는 어른의 말은 참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후 밤잠을 줄인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낮에 어떻게 살아가냐가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지금 나도 잠을 포기하지 않는다.
충분히 자야 회복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낮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열심히 살지 못했다면 잠자기 아까워 잠도 잘 안 온다.
밀도 있게 살아야 잠을 자고 회복하며
또 다음 날을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언제나 조용히 배려해 주시던 따뜻한 분이었다.
당시 나는 집안 사정이 조금 어려웠고,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알고 계셨다.
더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도 있었기에 쉽게 도와주지 못하다가, 연말에 작은 기회가 생겼다고 하셨다.
선생님들 몇 분이 돈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했고, 그중 한 명으로 나를 선택해 주셨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전달받은 그 장학금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서 선생님의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지는 위로였다.
당시 나는 더 어려운 친구에게 그 기회가 못 가는 것이 아닐까.. 그 도움을 받아도 되는지 망설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해줄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다고 걱정 말고 받으라고 하셨고, 그 말 한마디에 담긴 따뜻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 나도 언젠가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은 시험 대비뿐만 아니라 진짜 영어를 알려주셨다. 영어로 글을 쓰게 하시고, 영어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히게 하셨다. 엄격하신 면도 있었지만, 그만큼 진심이 느껴지는 참된 교육자이셨다.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선생님.
하지만 그 덕분에 많은 걸 배웠다.
선생님은 학생을 정말 많이 아끼셨다.
본인은 아버지 같은 선생님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은 선생님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 애정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특히 신체 접촉에 예민했던 나는 선생님의 스킨십이 불편했다. 싫은 티를 내는 나의 눈치를 보시고 이후엔 조심해 주셨지만, 다른 친구들은 불편함을 표현하지 못한 채 감내해야 했기에 안타까웠다.
공부 방식에 대한 간섭도 있었다.
국어·영어를 공부하고 있을 때마다 그보단 사회탐구 과목을 집중적으로 하라는 조언을 지겹도록 하셨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공부하고 싶었고, 그 고민을 정중하게 편지에 담아 드렸다.
'선생님의 관심은 너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에겐 부담됩니다.
선생님이 추천하신 전략은 너무 좋은 방법이에요.
하지만, 선생님 말씀 듣고 성공해도 기쁠 것 같지 않고,
제 방식대로 해서 실패해도 후회할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내비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읽은 선생님은 나에게 박카스 한 병과 함께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 응원한다."는 쪽지를 주셨다.
그 뒤로는 거리를 지켜주셨다.
그 무관심이 오히려 나에겐 배려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남는 일은, 방과 후 활동 지원 서류를 받은 날이다. 야자 시간에 선생님은 그 서류를 사람들 앞에서 툭 건네주셨고, 나는 짝꿍 앞에서 움츠러든 채 부모님의 경제 상황을 적어야 했다. 또한 그 덕에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경제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때, 나는 큰 상처를 받았다.
그 후 TV에서 본, 아프리카에서 봉사 중이신 한 신부님의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르게 하는 것이 진짜 도움입니다." 그 말이, 선생님의 방식과 대비되며 나를 깊이 울렸다.
선생님의 열정 자체를 비난하진 않는다.
다만 진짜 도움이 되기 위해선 배려와 존중이 먼저여야 한다는 걸 그분 덕분에 배웠다.
학교에서 배운 학습 내용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치듯 들었던 선생님의 말 한마디,
관계 속에서 주고받았던 감정들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와 연결된 어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나도 그런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삶의 순간마다, 아이들의 마음에 따뜻한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으로.
여러분은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데
어떤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으셨나요?
그분의 말이나 행동 속에는 어떤 지혜가 담겨 있었나요?
오늘 한 번,
당신의 삶을 비추는 한 어른의 얼굴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