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폭력.
팩트는 사실인데 사실이 때로는 폭력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팩트로 뼈 때린다'는 말, '팩트 폭격기'라는 표현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사실적인 이야기는 때로는 아프고, 아픔은 정확히 나를 겨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나에게 가장 큰 변화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이 길러졌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존재와 역할, 행동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예전에는 행동이 곧 나였고, 역할이 곧 나였다.
누군가 내 행동을 지적하면 '나라는 사람 전체'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꼈고,
어떤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은 불안이 따라왔다.
그러니 나는 늘 방어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뒤섞여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존재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존재와 역할, 행동을 구분 지을 수 있게 된 후에는
누가 지적하면 예전처럼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 내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구나.'
그냥 알아차리면 되는 일이었다.
자각이 시작되자 내 행동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고,
객관적으로 보이니 변화의 여지가 생겼다.
예전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었던 건
그 이유는 단순할지도 모른다.
사실 그대로를 인정하는 순간,
내 존재가 틀렸다고 느껴질까 두렵기 때문.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어야 한다는 마음도 강했다.
하지만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어떤 행동도 선과 악의 양면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것.
선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악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무리 행동을 조심한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또한, 모든 단어는 좋고 나쁨이 없다. 그냥 그러하다.
그런데 좋은 뜻 나쁜 뜻으로 받아들인 건 나였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만 봤던 내가
이런 사실들을 인정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난 단지 '더 나은 나'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 진실.
진실성 있게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모르고 저지르는 실수는 누구나 하며,
그 실수는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피드백을 들으면
예전처럼 멈춰 서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함이 먼저 든다.
"이걸 알게 되었으니, 나는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지.'
아프다고 버티거나 부정하면 성장은 그 자리에서 멈춘다.
하지만 '맞다, 내가 그랬다'라고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내가 있고,
그 지점에서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나는 어른들의 말이면 나보다 더 살았으니 맞는 말이겠지 하며 다 수용하는 편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어른들의 말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작은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사실을 받아들이는 힘은
인문학이 가르쳐준 기본 원리였다.
판단이 아닌 사실.
추측이 아닌 사실.
감정이 아닌 사실.
판단, 추측,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실을 들여다볼 것.
그 사실을 알아도
내 존재는 다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 곁에 있고,
나는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불편한 진실'도 두렵지 않다.
맞닥뜨리는 순간은 따끔하기만 하지만,
그 아픔마저도 내성이 생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근육의 성장도 고통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내면의 성장도 역시 아픔을 지나온 나에게서 온다.
세상의 원리는 어디든 통한다고 하니
잘 살기 위해 고통스러운 건 당연하다는 걸 받아들였다.
고통은 힘들고 어려우며 피하려고 한다면
고통은 더 크게 찾아온다.
고통을 삶으로 받아들이니 맘이 편해졌다.
심지어 알아가는 고통이 즐겁다.
더 나은 내가 되는 느낌,
더 단단해지는 내가 되는 느낌.
이 느낌은 정말 삶을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
살아가는데
타인의 말에
타인과의 관계에 많이 흔들렸던 나.
세상을, 인간을, 나를
공부하길 잘했다.